300, 그들은 왜 거의 벗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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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그들은 왜 거의 벗고 있나?

1 June™ 5 929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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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1799)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1825) 작<?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캔버스에 유채, 385 x 522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영화 “300”의 광고를 봤을 때 나는 자크-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이 그림이 떠올랐다. 이 그림은 페르시아 전쟁 이야기가 아닌 로마 창건에 얽힌 전설인데도 말이다. 왜 그랬냐 하면...



아, 그전에 이 그림이 나온 김에 잠깐 그림 배경을 소개하자면... 로마를 세운 젊은 로물루스 Romulus 와 귀족들은 적당한 배필이 없어서, 결국에는 이웃 사비니 Sabini 부족의 처녀들을 납치해서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화가 난 사비니의 남자들이 딸들과 누이들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로마인들은 이미 결혼을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버텼다는 것이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다가 한두 해가 흐른 후 마침내 사비니인들은 총공격을 감행했는데, 이미 로마인들과의 사이에서 자식까지 낳은 사비니 여인들은 어느 편도 다치기를 원치 않아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인들은 자식들을 들쳐 업은 채, 로마군과 사비니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제발 화해하라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결국 마음이 움직인 양쪽의 남자들은 화해하고 동맹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사비니 여인들이 전투를 중단시키는 극적인 장면을 나타내고 있는데, 가운데에서 양팔을 벌린 여인은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사비니 여인 헤르실리아 Hersilia 고, 그림 왼쪽에 턱수염 난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이며, 오른쪽에 창을 들고 있는 남자가 로물루스라고 한다. 화가 다비드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혼란 상황에서 혁명 세력들간의 화해와 안정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흥미로운 배경 전설과 화가의 엄숙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려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난 이 그림처럼 이상하고 웃기는 그림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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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투구, 근사한 칼과 방패, 거기에 근사하게 휘날리는 빨간 망토까지. 그런데 정작 그것들 빼고는 몸에 아무 것도 안 걸친 것이다. 정작 가려줘야 할 부분에도 말이다.. -_- 오른쪽에 있는 로물루스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투구와 샌들을 걸쳤는데 그게 몸에 걸친 전부인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가운데 있는 흰옷의 헤르실리아였지만 그 바로 다음은 로물루스의 (민망한) 엉덩이였다. 왜 갑옷 같은 걸 안 입은 거지? 저렇게 다 벗고 있다가 칼에 가슴 찔리면 그냥 죽을텐데? 그러면서 황당하게 투구는 또 왜 쓰고 있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렇게 투덜거렸었다.


나중에야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 화가인 다비드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추구했던 것 같은 이상적인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렇게 나체로 표현했다는 걸 알게 됐다. 기본적으로 나체로 표현하면서 더욱 폼나게 하기 위해 붉은 망토를 둘러주고 전투 중이라는 걸 나타내기 위해 투구와 샌들도 걸쳐놓은 것이라는 걸...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서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끄는 영화 “300”의 포스터나 TV 광고를 보면 다비드의 그림과 묘하게 닮은 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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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감 있는 투구와 군화, 멋들어진 빨간 망토를 걸친 전사들. 하지만 정작 웃통은 훤히 벗고 있다.. @o@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인 테르모필레 Thermopylae 전투에서 스파르타 전사들이 정말 저런 복장을 하고 있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Herodotos (BC484-BC425) 가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최후에 승리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리스군은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반면에 페르시아군은 방패를 사용하지 않았고 또 실크 의상을 걸친 이유라고 한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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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을 보니 페르시아군이 방패를 사용하지 않는 건 고증을 따른 것 같군...



그렇다면 페르시아 전쟁 중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도 스파르타 전사들이 갑옷을 입었을 확률이 크다. 물론 스파르타 전사들이 죽기를 각오해서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벗어던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더더욱 거추장스러운 빨간 망토는 왜 한사코 걸치고 있느냐 말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망토가 전투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의 에드나 아줌마가, 망토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당한 수퍼히어로들의 예를 들어 설명해준 적이 있다. ^^ 그래서 인크레더블 가족은 수퍼히어로의 단골 의상인 쫄쫄이는 입었지만 망토는 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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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결국 영화 “300”의 전사들이, 거의 벗은 가운데 빨간 망토는 걸친, 저런 비효율적인 전투복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고증을 따라서가 아니라 자크-루이 다비드 식의 미학을 실현하기 위해 – 한마디로 섹시하고 폼나게 보이기 위해 – 서일 것 같다. 그러고보니 다비드는 바로 영화 “300”과 같은 주제를 다룬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라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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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1814)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1825) 작
캔버스에 유채, 395 x 531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이 그림은 페르시아군과 결전 직전의 스파르타군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미 오른쪽 위에 있는 병사들이 전투 준비를 알리는 나팔을 불고 있어서, 맨 오른쪽에 있는 전사들은 나팔 소리에 황급히 나무에 걸어놓은 무기들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한가운데 앉아있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아직 명상에 잠겨있는 중이다. 레오니다스 옆으로 화환을 들고 있는 세 명의 전사들이 보이는데, 신들의 제단에 마지막 공양을 바치는 것이라고 한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부자의 모습도 보이고, 칼자루로 최후의 심정을 새기고 있는 병사도 보인다. 역사에 보면, 이들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은 다른 그리스 동맹군이 퇴각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끝까지 테르모필레를 사수하다가 모두 장렬하게 전사한다고 한다..이 그림은 다비드의 그림답게 장엄한 분위기가 감돌고.. 또 그의 그림답게 인물들이 투구와 샌들과 휘날리는 빨간 망토 빼고는 아무 것도 안 걸쳤다. ^^



그러고보니 영화 “300”의 헐벗은 빨간 망토 전사들은 다비드의 그림 속 전사들을 정말 많이 닮았다. 다비드의 그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팬츠는 입었다는 것뿐! (심의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만화를 그린 프랭크 밀러는 어쩌면 다비드의 그림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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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해서 강렬한 영상미에 초점을 둔 영화니만큼, 미적 효과를 위해 실제역사와 다른 스파르타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이 영화의 페르시아에 대한 이미지 왜곡은 그와는 다른 심각한 문제이다.



나는 예고편과 광고를 봤을 뿐 아직 이 영화 자체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짧은 예고편을 보는 동안에도, 그리고 내가 평소에 할리우드 영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가에 대해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페르시아군을 추하고 야만적으로 묘사한 영상에서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전체적인 잔혹하고 아름다운 영상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말이다.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영화 전체적으로도 페르시아의 이미지는 상당히 왜곡돼 있는 모양이다.



이 영화가 무슨 진지한 전쟁드라마도 아닌 마당에 페르시아군을 인간애와 존중을 담아 묘사할 필요까지야 물론 없다. 그리스 입장에서 본 페르시아 전쟁 영화니 페르시아가 부정적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그리스보다 야만적인 이미지로 나오는 것은 너무 심한 왜곡인 것이다.



당시 지중해 세계의 문명의 중심은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이것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도 인정하는 바였다. 헤로도토스는 "이러한 대제국의 오만과 압제에 저항해 그리스의 작은 나라 아네테와 스파르타가 자유를 지켜냈다"는 식으로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그리스의 시각으로 페르시아를 그린다고 해도, 그리스보다 야만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면 무식한 오류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300" 예고편을 보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페르시아의 이미지는 그 무식한 오류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군이 봤을 때 스파르타군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야만인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연약한 아이는 아예 죽여버리고 허구헌날 군사훈련만 하는 애들이니..




더구나 영화 속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 Xerxes I 의 모습은 특히 어이가 없는데... 무슨 원시부족 추장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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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실제 페르시아 왕은 이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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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리스도교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영화 "300" 속의 크세르크세스의 이미지가 더욱 당황스러울 것이다. 구약성경 에스테르서 Book of Esther 에 나오는 유대인 출신의 아름다운 왕비 에스테르 (에스델, 에스더) 의 남편, 위엄 있는 왕 아하스에로스가 바로 크세르크세스의 다른 이름이니까.



아하스에로스는 에스테르의 이야기를 다룬 유럽 회화에서 주로 이렇게 묘사된다. (에스테르 이야기는 여기를 참고) 기절하는 에스테르를 잡고 있는 그림 오른쪽의 남자가 아하스에로스, 즉 크세르크세스다.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와 너무 다르지 않는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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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델의 기절 (1704)
쿠아펠 Antoine Coypel (1661-1722)
캔버스에 유채, 105 x 137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페르시아 제국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도 결코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란 Iran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만 있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란 대통령까지 나서서 화를 냈다고 한다. (페르시아 전쟁 중 테르모필레 전투 이전에 있던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는 대승을 거뒀고, 한 병사가 40km 남짓한 길을 쉬지 않고 달려 아테네에 이 승리를 전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그를 기리기 위해 열리는 것이 마라톤 경기고 그래서 이란은 결코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



이 영화가 진지한 역사물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경우, 이런 이미지 왜곡의 악영향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더구나 그것이 오늘날의 상황과 미묘하게 닿아있을 경우는 말이다. 예고편을 보니 이 영화에서 페르시아군은 이슬람교도들을 연상시키는 터번 같은 것을 두르고 나온다. 역사에 무지한 단순한 사람이 (바로 미국 대중이 그렇다) 터번을 두른 추하고 악한 무리와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우리의 몸짱 주인공들을 보고 집으로 가서 그날 나오는 중동 상황 뉴스를 보며 어떤 인상을 받을지 생각해 보라. 나는 그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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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룰루 ~  
  엑박의 압박 ㅡㅡ !!!<BR><BR>엑박이 풀리면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BR><BR><BR><BR>일단 답을 달아보자면...<BR>그들이 벗고 있는 이유는 ???<BR><BR>옛날(고대) 이니까...<BR><BR>ㅡㅡ;
4 Sunny~☆  
  사진이 왜 하나도 안 보일까요 ㅠㅠ
1 삐루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기 때문이예요. 훗
4 Sunny~☆  
엄훠~ 왜 이리 잘 보일까~? ㅋㅋㅋ
1 룰루 ~  
  파일명을 한글...로 하지마세요...(한글로 됐다 안됐다 그럽니다)<BR>그리고 특수문자 같은것도 쓰지마시고...( '  이런것도 안돼요)<BR><BR>그런데 그림을 클릭하면 제대로 보이긴 하는군요 ㅡㅡ;<BR>클릭해보니... 파일명도 괜찮은것 같은데...<BR>- 때문에 그런가...<BR><BR><BR>삐루, 써니님은...<BR>... 국회로 가세요... ~ ~<BR><BR>훗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