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 관한 얘기....새벽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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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 관한 얘기....새벽편지에서

1 나무그늘 7 4410 4

펌 글입니다.


가끔씩 아내는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대요...


제 마눌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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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3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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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1 룰루 ~  
  너무 사랑스러운 당신입니다...<BR>이세상에 우리나라 여인들만큼,,, 훌륭한 아내... 어머니는 둘도 없을것입니다.<BR><BR>모든것을 뒤로 미루더라도...<BR>저는 남자로서 우리나라에 태어난것을 진정 행복하게 생각합니다.<BR><BR>그런 사람을 만나, 나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군요.<BR>그런 사람과... 같이...

너무 목말렀던 모양입니다 제가... 죄송... ^^;<BR><BR><BR><BR>뜬금없이 일본영화 제목이 떠오르는군요.<BR>여기서 일본영화제목을 떠올린 내가 저주스럽지만...<BR><BR>으라차차차찻 !!!<BR>이땅에 사시는 모든 부부들이 행복하기를...
1 babyjune™  
  저와 비슷한 처지에 글이 올라와 있네요..^^;;<BR>이글을 읽고나서  얼마나 울었는지.........넘 마음이 아프네요.....저도 연애 시절에는 그렇게 사랑한다고 매일같이 했으면서 결혼후 사랑이라는 말을 몇번이나 했는지...아내를 떠나보내면서 사랑한다고..저도 말을 못했습니다. 가슴이 사무치도록 미안할뿐이죠..<BR>에긍.....자꾸만 눈물만 나오네요..<BR>그만 써야겠습니다.<BR>계속 쓰다보면 하염없이 처량한 글만 쓸것같고 마음도 안좋네요..<BR>즐건 주말 보내시고요.<BR>행복과 사랑, 웃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1 룰루 ~  
  이구....<BR><BR>쥰님... 사별 하셨습니까...<BR><BR>저는 그냥...<BR><BR>이별 하신줄 알았는데...<BR><BR><BR><BR><BR><BR><BR>나중에 회사 상사한테 전화오면...<BR>저한테 돌려주세요...<BR>찍소리도 못하게... 밟아드릴께요... ;;;<BR>(위로라고 한다는게 이모양이네... 젠장...)
1 babyjune™  
  ^^* 말씀 만이라도 감사합니다.<BR>이별이면 좋겠죠....아이한테도 엄마를 보여줄수 있으니...<BR>그만~ ㅎㅎ;;
1 룰루 ~  
  된장...<BR><BR><BR>4병먹고 왔는데...<BR><BR><BR>더먹고 싶네요 갑자기...<BR><BR><BR><BR><BR>왜... 우리 남자들은... 술밖에 없을까요...<BR>이 맘을 다스리는데... 다른 것도 많을텐데...
1 나무그늘  
  미안합니다...ㅠ.ㅠ<BR><BR>babyjune님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말루 몰랐어요...;;<BR><BR>이 글은 약 반 년 전에 읽었던 글인데...<BR><BR>그 당시 너무 가슴이 아팠고 오랬동안 기억에 남아있다가...<BR><BR>어제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이 글을 또 발견하고 여기에 올렸던 것입니다.<BR><BR>소중한 것들은 늘 주위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가...<BR> <BR>잃고 나면 그때 가서야 깨닫게 되죠.<BR><BR>후회하지 않으려면 있을 때 잘 해야겠죠?ㅎㅎ<BR><BR>근데요...쥰님 빨리 재혼하셔야 겠네요...<BR><BR>홀아비 생활 오래하면 금방 늙는대요.^^;<BR><BR>날 잡히면 청첩장도 게시판에 올려주세요...ㅎㅎ<BR><BR>
1 babyjune™  
  ^^;; 미안하기는요......사람들마다 아픈 상처가 있듯이 저에게 다가온 현실인데요.<BR>ㅎㅎ;; 재혼하게되면 청첩장 스켄해서 자게에 올리겠습니다..^^*<BR>얼릉해야 하는데 저의 사악함이 극을 달려서 그런지 쉽사리 재혼을 못하네요..^^;;<BR>되도록 빨리해서 축하 메세지 받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