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기자시사회 후 간담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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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시간> 기자시사회 후 간담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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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사회 : 조성규 (배급/홍보사 스폰지 대표)
참석자 :  김기덕 감독
            성현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주홍글씨>, <첼로>, <손님은 왕이다>
            박지연 <여고괴담 3>, <돌려차기>

사회: 개봉 여부로 논란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준비하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무튼 힘들게 모신 자리인 만큼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감독님이 무대인사 때는 안 계셨기 때문에 먼저 간단히 말씀 듣겠습니다.

감독: (웃음)특별히 할 말은 없고요, 질문을 바로 받겠습니다.

기자: 질문 있습니다. 감독님, 영화 소개 좀 시켜주세요!
감독: …열두시에서 시작해서 열두시에서 끝나는 영화입니다.

사회: 오늘 굉장히 빨리 끝날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

기자: ‘시간’이라는 단촐한 제목을 정하신 이유를 듣고 싶고요. 한동안 언론에 노출을 꺼리신 이유가 무엇인지?
감독: ‘시간’은 단촐한 제목이 아니라 광범위한 제목이고요. 언론에 일부러 그런 건 없습니다. 다만 이미지 복사가 반복되는 게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서, 영화로만 표현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기자: 개봉할 뜻이 없으셨는데 하시게 된 소감 말씀해 주세요. 왜 개봉을 꺼리셨는지도요.
감독: 제 영화들 <빈 집> <사마리아> <활> <시간> 등이 다 20개국 이상 수출이 됐고요. 대한민국도 수출한 나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특별한 메시지가 있으셨는지요?
감독: 보는 분이 찾아야죠. (모두 웃음)

기자: 성현아씨께 질문 드립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감독이라고 일컬어지는 김기덕,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셨는데 스타일이나 차이 같은 걸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성현아: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행복이었던 것 같구요. 두 분 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독특한 작품을 많이 만드시는 감독이고, 스타일이 틀리세요. 하지만 다 좋았어요, 재밌었고. 이번에 <시간> 찍을 때도 여러가지 많은 에너지를 받고 그걸 활용할 수 있도록 연기로서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사회: 감독님이 네 번 답변하시는 것보다 길게 하셨습니다. (일동 웃음)

기자: 지금까지 작품에 대사량이 많지 않았는데, <시간>에서는 대사량이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감독: 시나리오를 쓰다보니 좀 많아졌습니다. (모두 웃음)

기자: 배우들에게, 역을 맡은 소감, 어떻게 연기했는지?
박지연: 저는 우선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시간>이라는 제목이 너무 좋았고요. 제목에 이끌려서 감독님을 만나뵙고 싶었고,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요. 감독님이랑 영화 찍으면서 오히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저는 쫓아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하고 이런 것보다 순간순간 느낌에 따랐었던 게 경험이 없는 저에겐 더 편했던 것 같습니다.
성현아: 홍상수 감독님께서도 하루에 많은 분량을 찍으시진 않지만 한 씬을 오래 찍으시는 스타일이셨어요. 사실 어떤 작품이든 김기덕 감독님과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같이할 수 있게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작업 방식은.. 감독님 스타일에 맞춰가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모든 걸 떠나서 배우의 감정을 중요시해 주시고, 작품 하는 내내, 빨리 찍어야하는 열악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배우가 감정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도록 주변상황을 충분히 통제해 주셨고, 또 그런데서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감독님께서 오케이 컷을 주실 때도 있고 어떤 이유로 NG가 나는 때도 있지만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배우의 감정을 중요시해서 편집해 주셨던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었던 것 같아서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기자: <사마리아> <활> <시간>을 보면서 작품이 부드러워지고 있다고 느꼈고, 전 인터뷰에서도 나이가 드니 좀 부드럽게 만들게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거 같은데 <시간>은 특별히 더 서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이번 작품 하시면서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낀 부분이 있으셨는지?
감독: (마이크를 들고 한참 고민. 놓았다가 다시 들고 한동안 생각한 후, 대답하기 힘들겠다고 다음 질문을 부탁)

사회: 제가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감독님이랑 식사하면서 감독님이 어떤 생각이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원하지 않으시면 억지로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래서 여기 와주신 것만 해도 굉장히 감사드리고요.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감독님이 언론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답변하시기 곤란해하시니까 죄송하지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천만 시대가 슬프다고 하셔서 반향이 있었는데요. 지금 <괴물>이 흥행을 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감독: 어제부터 내내 생각한 질문 중에 가장 무서운 질문이 이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대답을 준비했었는데, 어쨌든 가장 피 흘리는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 관객의 수준이 잘 만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자: ‘시간’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영화로 반영되어 나타난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실 수 있을까요? 성현아씨가 이 영화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배우라고 생각이 드는데, 캐스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감독: 참 말을 아끼는 게 지금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에 대한 정의는 제가 조금 더 살아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현아씨는 저희 PD가 캐스팅을 했습니다. (감독, 배우 모두 웃음)

사회: 한 두 질문 더 받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스크린쿼터 이후 걱정이 많았는데 8월 한국영화가 호재를 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감독: <괴물> 질문 때 간단하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기자: 성현아씨께 질문합니다. 영화를 하면서 느끼시는 바가 많으셨을 텐데. 성현아씨 개인에게 상처를 치유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성현아: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는데,(웃음) 저 스스로는 어떻게 규정짓진 않았어요.

기자: 다치신 이유가 뭔지요?
성현아: 집에서 방정맞게 돌아다니다가 톡 부딪혔습니다. (웃음)

기자: 여쭤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감독님이 말을 아끼시는데 그렇게 되면 이 질문밖에 드릴 수 없을 듯하네요. 오늘 말을 아끼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감독: (웃음)헤이리에 지금 중국예술페스티벌이 열리고 있거든요. 굉장히 좋은 작품들이 많이 와있고, 여러분들이 기회가 돼서 보시면, 굉장히 많은 새로운 현대미술에 대해서 좋은 경험을 하실 것 같습니다.

기자: 이번 영화 <시간>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작년 산세바스찬영화제에 갔을 때 영화를 보다가, 제가 두 여배우 얼굴을 계속 헷갈렸습니다. 그 때 이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사회: 네, 그럼 이상으로 기자간담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한 마디만…

사회: 네, 이제 감독님 드디어 직접 말하신답니다.

감독: 일단 제 태도를 너무 무례하게 보지 마시고요. 그런 뜻은 전혀 없습니다. 작년 <활>을 개봉했을 때, 또 거슬러 올라가면 <빈 집>을 개봉했을 때부터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이 가장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 시기가 <빈 집> 개봉 이후였습니다. 그 때 <빈 집>이 좋은 성적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 때 각오한 것이, <활>은 개봉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다음해 <활>은 결국 단관 개봉을 했지만 극장에서 어려움이 많았는지 일주일이 안돼서 순회상영도 스스로 중단됐고요. 그 후에 제가 마음을 먹은 것은, <시간>은 개봉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부산영화제에서 아까 기자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한 번 먹으면 절대 뒤로 돌아가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좋은 조건이 다시 주어진다고 해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늦었다고 저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죠. 제가 이 한국 사회에서 한국 영화계에서 한국 관객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든 없든, 이미 늦었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이 제 철학입니다. 앞으로도.
그런데 왜 <시간>을 개봉했느냐,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한국은 <시간>을 판매한 30개국 중에 한 나라일 뿐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제가 미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개봉했을 때 프로모션으로 기자회견을 했었기 때문에, 이 자리도 똑같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시간>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제 영화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결과에 따라서. 판매를 하는 것조차도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협박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만, 불평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소연으로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체에 따라서 하소연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불만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다양하게 표현이 되겠지요. 그리고 저는 더 이상 부산영화제에 제 영화를 출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어떤 영화제에도 제 영화를 출품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 다음 영화를 어떻게 찍느냐, 저는 제 스스로 지금 장애물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엄청난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저 스스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영화감독으로서 존재하지 않겠죠. 다른 직업을 찾아야 되겠죠. 왜 제가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이것이 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수없이 자문자답을 반복할 것입니다.
제가 안경을 쓰고 인터뷰를, 기자회견을 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안경을 벗고 제가 아는 분들을 똑똑히 보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안경을 쓴 것이고, 어쨌든 한국 영화계는 아까 제가 어떤 분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지만,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 관객의 수준이 만난 최고점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해석이기도 하고 부정적인 해석이기도 한데, 듣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열세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들 대부분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관객 숫자의 부가가치가 아니라 한국 영화관객들이 제 영화를 받아들이는 이해의 부분에서 제가 부가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 자리가 김기덕의 제사 같은 느낌이 사실은 듭니다. 그래도 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미 늦은 거죠. 저는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배우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같이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영화가 스폰지에서 수입을 해서 개봉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제 마음에는 이 영화에 참여했던 배우들에 대한 마음 때문에 스폰지에 수출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다음 영화들이, 만약 장애물을 극복하고 만들게 된다면 그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지 않는데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은, 그 배우들이 제게 많은 것을 양보해야 되기 때문에 가능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까 <시간>이란 영화의 의미에 대해서 어떤 분의 질문에 답변을 못 드렸는데, 속으로 많이 미안합니다. 왜냐하면 제 영화는 충분히 설명되어졌고, 수없이 인터뷰를 했었고, 수없이 해석을 반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어떤 대답을 해야할 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못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수입해주신 스폰지 대표님에게 너무 감사드리고, 그래도 희망하는 것은 이 영화가 한 20만명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32만명이 들었고, 프랑스에서도 <빈 집>이 20만명이 들었고 이태리에서도 15만 이상이 들었고, 독일에서도 20만 이상이 제 영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만은 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이 조금 바뀔 수도 있겠죠. 어쨌든, 호기심에서든 관심에서든 애정에서든 그냥이든 이 자리에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회: 한꺼번에 말씀해주셨네요. 저도 감독님에게 감사합니다. 간담회는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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