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워스 이해 않가신분 완벽한해설 퍼왔습니다(완전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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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워스 이해 않가신분 완벽한해설 퍼왔습니다(완전스포일러)

1 박상현 1 19274 0
소녀시절부터 신경증을 앓아온 여자는 줄기차게 자살을 시도한다. 남편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자는 결심한 듯 유서를 남기고 6월의 세찬 급류가 흐르는 강으로 향한다. “삶을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는 여자의 희끗한 머리를 천진한 물결이 뒤덮는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의 중심에는 버지니아 울프(1882~1941)라는 강이 흐른다. 그녀의 자살로 시작한 영화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통해 ‘머묾’과 ‘떠남’, 그것들에 남는 ‘상처’를 비춰보인다. 강은 1923년, 대표작인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는 젊은 ‘울프’(니콜 키드먼)에서부터 1951년에 임신 4개월인 주부 ‘로라’(줄리안 무어),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사 편집장 ‘클래리사’(메릴 스트립)에까지 관통한다.
여인들 사이에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키워드가 자리해 있다. ‘댈러웨이…’는 한 여자의 일생을 하루를 배경으로 압축해 놓은 작품. 영화는 시대배경이 다른 세 여자의 각기 다른 하루를 교차해 전개된다. 70년의 세월이 소용돌이를 그리듯 한 덩이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세 여자는 이상할 정도로 닮아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시대를 사는 여인들은 즐거운 저녁모임을 준비하다가 자의식 붕괴에 빠진다. 울프는 기다렸던 언니와의 재회가 어그러진 뒤 전원주택에 ‘갇혀 사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로라는 다정한 남편과 세살배기 아들을 등지고 자살을 시도한다. 클래리사는 에이즈에 걸린 옛 연인 ‘리처드’가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당신 인생은 어디에 있느냐”는 리처드의 질문은 다른 두 시대의 여성에게도 해당된다.
‘디 아워스’는 “모든 인생은 서로 연관이 있다”는 ‘댈러웨이 부인’의 작품정신을 계승한다. 울프는 집필을 통해 자살에의 유혹을 견뎌낸다. 자살을 포기한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난 뒤 울프가 하지 못했던 ‘가출’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로라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내내 버림받은 상처로 고통스러워한다.
영화는 세 여인의 삶이 ‘선택’ 또는 ‘숙명’이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이들의 운명은 폭풍 속에 나부꼈지만 이들은 또한 폭풍이 일도록 날갯짓을 하는 ‘나비’들이었다. 나비들은 서로 얽혀있다. 살기 위해 날개를 파닥이는 것은 ‘숙명’이지만, 그 폭풍 속에서 버텨나갈 것인지는 분명 ‘선택’의 문제다. 세 여인의 삶은 그것의 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마이클 커닝햄의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을 소설로 표현해낸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커닝햄은 ‘댈러웨이 부인’에다 울프의 전기, 그리고 가상의 두 여인 이야기를 절묘하게 뒤섞은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연출은 ‘빌리 엘리어트’로 주목받은 스티븐 달드리가 맡아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춘 다층적인 이야기들을 절제된 회화처럼 그려냈다. 울프의 시신을 무심하게 실어나르던 강물을 묘사한 듯한 피아노 음악은 작품 전체에 유기성을 더해준다.

동공의 초점을 잃은 채 ‘자기만의 방’에 빠져드는 울프 역의 니콜 키드먼은 올해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수상, 아카데미상 수상에 한발 다가섰다. 울프의 매부리코를 묘사하느라 보형물 분장을 한 탓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연기파 세 배우 외에도 에드 해리스, 토니 콜레트, 클레어 데인즈 등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21일 개봉.
☆밑에 글은 평론가두명의 상반된 평가입니다  (바로 밑에 글은 별네게 그밑에 글은 별하나)
살다 보면 영원같은 하루가 있기 마련이다. 죽음의 시간이 삶의 시간과 겹치고, 파티를 위해 사온 꽃이 장례를 치장하는 장식이 되는 시간. 가능성의 사건이 현실이 되는 순간.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이 ‘하루’를 통과하는 세 여성의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시간의 카펫을 짠다.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되풀이하듯 하루는 전 인생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복잡한 일이 어떻게 한 화면 안에서 가능한 일일까? ‘디 아워스’는 모든 영화적 요소의 ‘어우러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데이비드 헤어의 군더더기 없는 각색, 줄리안 무어와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의 내면 연기, 무엇보다 피터 보일의 편집과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차분한 연출까지. 카메라는 인물간의 심리적 거리를 정확히 감지하고, 컷과 컷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유롭게 넘나든다.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의식의 서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면, ‘디 아워스’는 편집이 시간을 만들어 내고, 시간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영화 교과서의 가르침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디 아워스’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1951년을 살았던 평범한 가정 주부 로라는 1923년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가 가질 수 없었던 아이들이 있다. 또한 2001년을 사는 클라리사는 로라가 가질 수 없었던 동성애 애인과 동거한다. 그러나 이들의 처지는 왠지 데자 뷔(Deja vu) 현상이 일어나듯 엇비슷해 보인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위해 온 종일 파티 준비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것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본다.



윤회를 거듭하는 듯한 여인들의 삶 속에서 영화는 세월의 손을 들어줄 뿐이다. 모든 것은 순간 위에 입을 맞추고, 삶이 지속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도도한 시간의 줄기인 워즈 강에 몸을 내어 맡긴 순간, 관객들의 겨드랑이 밑에는 실존의 푸른 날개가 돋을 것도 같다. 여인의 고통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사색으로. 그 한 순간을 위해 스티븐 달드리는 천 번 가위질하고 한 번 이어 붙이는 시간의 점프 컷에 승부수를 던진다.



‘디 아워스’가 지루하다거나, 타임지처럼‘여자들의 희생에 대한 감상적 접근’이라고 폄하한다면 이는 영화로 혹은 여자들이 사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부류의 의견일 것이다. 살아온 시간을 직면하는 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될지라도 좀 보라고. ‘디 아워스’는 그렇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지적인 친구같은 영화였다.



심 영 섭 영화평론가



★☆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선입관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영화에서도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이려는 노력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예술이 오락보다 훨씬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상을 줄 때다.



칸 영화제가 재미있고 경쾌한 영화에는 도무지 점수를 주지 않는 점이나, ‘재미있는 영화가 최고’라는 신념을 금과옥조처럼 가진 미국 영화계도 아카데미 상에서는 ‘진지한 예술성’과 ‘우아한 품격’을 가진 것같은 영화를 고른다. 이런 두 얼굴은 모두 ‘예술 콤플렉스’의 드러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때로는 문학이나 연극의 모습으로 변장한 영화가 ‘좋은 영화’로 칭송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디 아워스’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 여자의 고통스럽고 우울한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쓴 작가 버지니아 울프, 그 소설에 매혹된 로라,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사 편집자 클래리사는 각각 다른 시대를 살지만 고통스런 삶을 무거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 영화는 같은 운명을 지닌 세 여자 또는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절망에 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소설 ‘델러웨이 부인’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등장 인물을 같은 운명을 지닌 동일체로 인식하려면관객은 그것을 조합할 수 있는 몽타쥬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장 인물과 상황은 어지럽게 섞이는 토막에 그칠 뿐이다. 더구나 세 명의 주요 캐릭터가 보여주는 존재에 대한 번민과 성찰, 감성적 기억에 관한 회고는 어쩔 수 없이 관념적이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장황한 대사가 없다면 그 또한 허탈한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관객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긴장하며 논리적인 조각 맞추기 게임에 몰두해야 하고 주인공들이 쏟아내는 대사의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 영화를 감상한다기보다는 지적 능력을 시험하는 노동을 해야하는 셈이다.



제작자나 감독이 이런 영화가 좋다며 만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역시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좋은 영화이고 모든 관객이 봐야 하는 작품인 것처럼 ‘과장’하는 일은 지적 허영을 부추기는 일이다. ‘디 아워스’는 문학과 연극의 유전자를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는 지식인적 사치와 편견을 더 많이 담고 있는 영화제용 영화처럼 보인다.



조 희 문 영화평론가•상명대 교수



▼'디 아워스' 어떤영화?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 있는 주부 로라 (줄리안 무어), 그리고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출판 편집자 클래리사 (메릴 스트립) 등 세 여인의 하루를 소재로 만든 영화.



99년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이 원작이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 쇼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2-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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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신범도  
  자살에 빠지게된 이유가 단순한 패미니즘 이라니... 별 네개준 감상이 젤 웃기네요.. 그리고 삶이 지속되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게 아니고.. 삶이 죽고 살기을 반복하는 것이 세월이라는 겁니다. 버지니아가 소설에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는것도 이런 존재의 이유를 표현하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