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관련글]김진명 소설, 그 위험한 민족주의적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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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관련글]김진명 소설, 그 위험한 민족주의적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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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소설, 그 위험한 민족주의적 문법

이름: 최보금
학번: 0178386
학부: 사회과학부
과목: 국어와 작문
담당: 이은정 교수님

                [목차]

Ⅰ. 시작하는 말

Ⅱ. 김진명 소설, 왜 위험한가?

  1. 김진명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

  2. 김진명 소설의 위험한 문법

    추리 소설적 구성

    천재적인 주인공

    사실과 허구의 복합

    비판을 봉합하는 결말

  3. 김진명 소설의 위험한 호소

    외국에 대한 배타심 자극

    왜곡된 애국심의 제시

    폭력성에 대한 옹호

Ⅲ. 끝맺는 말
 

Ⅰ. 시작하는 말

 

"김진명님의 글을 읽고 나면 가슴속을 흐르는 뜨거운 피를 감당하지 못하여 누군가를 붙들고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작가 김진명님은 항상 진실된 소설을 쓰고, 수많은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음으로써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정말 울분을 감출 수가 없었지요...일본사람조차 쳐다보기 싫으니"

 

  교보,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는 김진명 소설에 감동 받은 독자들의 서평이 십여 개씩 올라와 있다. 여간한 책들의 서평은 서너 개가 넘지 않고, 서평을 남길 만큼 적극적인 독자들은 극히 일부라고 봤을 때 김진명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김진명은 독도문제가 불거졌을 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역사교과서 사건이 터졌을 때 『황태자비 납치 사건』을 발표하는 식으로 철저히 시류에 맞춘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남북이 핵을 합작해서 일본의 무인도에 핵을 투하한다는 줄거리와 일본의 국모인 황태자비를 감동시켜 한국의 편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게 한다는 줄거리는 독자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하늘이여 땅이여』, 『한반도』등의 후속 소설에서 전작소설의 모습이 흡사하게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김진명 소설은 매번 1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 베스트 셀러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흡사하게 반복되는 소설의 목소리가 왜곡이 없는 정당한 목소리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서평들로 미루어 보아 김진명 소설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김진명의 유사한 소설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이것이 소설의 민족주의적 문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를 짚어보기로 한다.

 

Ⅱ. 김진명 소설, 왜 위험한가?

 

1. 김진명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

 

  김진명 소설은 미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강대국의 음모가 각고의 노력 끝에 밝혀진다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기자 권순범이 10년 전 범상치 않은 남자를 베일에 쌓인 사람들의 사주로 죽였다는 깡패 두목의 얘기를 듣고 배후 인물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권순범은 그 남자가 핵 물리학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왜 살해를 당해야 했는지 의구심을 품게된다. 그러던 중 박정희 대통령이 핵 물리학자를 아꼈고, 그를 통해 미국의 저지 속에서도 끝까지 핵을 개발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권순범은 사건을 추적하던 끝에 현재의 대통령에게 사건의 전모를 고하게 되고, 청와대 뒤뜰에서 코끼리 상에 숨겨진 플루토늄을 발견하여 남북한 핵 합작을 이루는데 공헌 한다.

 『한반도』는 변호사 이경훈이 죽어가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그 사람이 남긴 '10·26의 비밀'이라는 말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이경훈은 그 사람이 미군의 대 한국 공작책임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10·26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추적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을 못 마땅해 했고 박 대통령을 존경했던 그 사람을 10·26 직전에 배제시켰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경훈은 미국이 김재규를 통해 박 대통령을 시해했음을 밝혀내고 현재의 대통령에게 사건의 전모를 고하여 미국의 대통령에게 '우리는 한 핏줄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는 전화를 걸게 한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은 형사 다나카가 황태자비 마사코의 납치 사건을 맡아 추적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다나카는 납치범이 의인의 자손이며 일본의 역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황태자비의 납치를 계획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다나카는 납치범을 잡지만 그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황태자비 마사코 역시 일본의 부당함을 알고 유네스코 교과서 심사 위원회에서 명성황후 시간(屍姦)을 밝히고 일본의 왜곡 교과서를 좌절시킨다.

  세 작품을 통해서 볼 때 김진명 소설들은 의문의 사건을 추적하면서 시작되어 배후를 추적하고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궁극의 사건을 통해 극대화시키면서 끝이 나는 매우 유사한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또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핵 물리학자와 개코 형사, 『한반도』의 박정희 대통령과 손인영 형사, 『황태자비 납치 사건』의 김인후, 김인후 조상과 같이 민족적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강대국에 의해 살해를 당하는 모습도 되풀이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김진명 소설이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외세가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나라도 강대국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며 핵 보유와 같은 모종의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이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외국에 대한 배타심을 선동할 수 있는 위험한 메시지는 소설의 민족주의적 문법에 의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녹아 들어가게 되어, 작가의 감정적인 호소까지 비판 없이 수용하게 만든다.

 

2. 김진명 소설의 위험한 문법

 

추리 소설적 구성 - 이것이 가려졌던 진실이다!

 

  세 편의 소설은 모두 추리 소설의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용후라는 남자가 교통 사고사를 당한 북악 스카이웨이가 교통사고의 확률이 지극히 희박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권순범은 친구인 개코 형사를 통해 이용후가 당시 청와대 추천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권순범은 이용후가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유를 추적하던 중 그가 조국의 핵 개발을 위해 초청된 세계적인 핵 물리학자라는 것을 알아내고 미국의 음모에 접근하게 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사실이 여러 가지 계기와 맞닥뜨리면서 하나 하나씩 밝혀지는 추리소설 특유의 구성에 의해 독자들은 조국의 핵을 개발하려다 좌절된 안타까운 현대사가 작가의 노력에 의해 하나씩 밝혀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추리 소설적인 구성에 의해 작가가 제시하는 진실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주입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주인공 이경훈은 죽은 미국의 대 한국 공작책임자 제럴드 현이 10·26을 목전에 두고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의 주치의가 약물을 투여해 박 대통령을 시해의 방해자를 배제시켰음을 알게된다. 제럴드 현의 수첨에 있는 '노벰버를 스터디하는 것이 대세다'란 메모의 뜻이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연구한다는 의미인 것을 밝혀낸 이경훈은 미국이 육군사관학교 11기를 통해 한국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진실에 맞닥뜨린다. 제럴드 현과 수첩의 존재를 비롯해 주인공이 '미국의 음모'라는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증거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파편적인 사건들을 통해 정황 증거를 하나씩 수집하는 추리 소설의 짜임새에 설득 당하며 역사의 진실이 실제로 드러나는 듯한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의 다나카 형사는 외무성이 정부기록보존소에 자료를 보내지 않고, 열람자마저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느끼고 추적하던 중 비밀 문서 435호만 유실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나카는 마사코에 의해 한 우익 사학자가 외무성의 촉탁으로 비밀 문서 435호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명성황후 시간이 밝혀져 있는 비밀 문서를 입수하게 된다. 비밀 문서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정부기록보존소가 아닌 외무성에 있다는 것을 밝혀내며, 비밀 문서가 유실된 이유를 밝혀내는 등 추리 소설의 특성에 따라 진실에 대한 접근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논리적인 사실 접근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추리 소설적 구성은 소설에서 제시하는 진실이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정교한 추리의 묘미에 빠져 들어가는 독자들에게 있어 작가의 의도적인 사건 배치와 구성은 더 이상 가공의 사실이 아닌 실제의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역사가 왜곡되게 된 원인은 미국과 일본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작가의 주장이 독자의 사고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천재적인 주인공 - 그들의 추리는 의심할 수 없다!

 

  세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천재적 감각과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주인공의 추리를 돕는 보조자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 권순범은 시경에서 캡으로 근무하고 있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사건기자이다. 사건 담당 검사와 담당 기자도 풀어내지 못했던 사건을 사건 정황만 듣고 그 자리에서 추리해 낸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권순범의 도움으로 해결해 낸 후배 기자가 "정말 탄복했습니다. 권 선배 예측과 하나도 틀리는 게 없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권순범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권순범의 추리에 강한 신뢰감을 갖고 수동적인 위치에서 그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것을 기대한다. 소설의 중반부부터 권순범은 이용후 박사의 딸 이미현과 함께 사건을 풀어낸다. 이미현은 약관의 나이에 하버드 의대의 연구 교수로 있는 천재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아버지 이용후 박사가 당한 불의의 죽음에 대해 '미국 정부에 의해 희생됐다'고 단정하는 이미현의 말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한반도』에서는 주인공의 탁월한 지성이 더욱 노골적으로 강조된다. 주인공 이경훈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로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다는 평가를 듣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로펌의 대표 변호사 케렌스키가 그의 천재적 직관을 부러워하며 각별한 대우를 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경훈의 추리를 도저히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독자들은 미국의 음모에 의해 한국의 근대사가 왜곡됐다는 소설상의 진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이경훈의 친구인 박인남은 소설 전반부에 이경훈과 대비되는 평범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경훈도 놀랄만한 추리를 하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인의 죽음과 미국인의 음모를 작가가 의도적으로 연관하여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는 이것이 치밀한 추적 끝에 밝혀진 놀라운 사건의 전모로 받아들여진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에서도 이러한 인물설정이 반복된다. 주인공 다나카 마사오는 일본 제일의 민완형사이며 도쿄 대학교 법학부에서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천재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경력을 지닌 수사관의 추리를 감히 누가 부정할 것인가? 때문에 독자들은 작가가 유도하는 대로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의도된 인물 설정이 그들의 추리에 강한 신뢰성 부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여느 추리 소설들의 방식과 다를 바가 없지만, 추리 끝에 밝혀진 사건의 전모가 늘 강대국의 음모로 귀결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코넌 도일의 소설에서 천재 탐정 셜록 홈즈가 풀어내는 사건들이 항상 프랑스의 음모로 끝을 맺는다면 영국의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 것인가?

 

사실과 허구의 복합 - 사실일까? 사실 같다...... 사실이겠지.

 

  천재적인 주인공들이 펼쳐내는 추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건의 배경이 독자들과도 긴밀하게 맞닿은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소재로 하고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본 경험이 있는 음모설을 현실의 인물을 차용하여 사실처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이용후 박사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이휘소 박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용후 박사가 박정희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한국에 와서 핵을 개발하던 중 미국이 사주한 깡패들에게 구타당한 후 그들의 차에 깔려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나와있다. 또한 조국의 핵 개발에 헌신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박정희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그를 안장했고 이것이 후에 권순범이 이용후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그러나 실제 이휘소 박사의 제자인 고려대 강주상 교수를 비롯한 친인들은 '고인이 물리학자이긴 하지만 핵전문가가 아니고 오히려 핵확산 반대론자인 까닭에 박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반체제 인사였다'고 밝히며 작가와 소설의 진위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적이 있다. 또한 이휘소 박사는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의문의 교통사고사를 당해 미국의 한 공원묘지에 묻혀 있어, 미국이 사주한 깡패들에 의해 사고사를 당했고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것은 작가의 설정일 뿐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용후 박사가 실제의 인물의 모델로 했다는 것 때문에 작가가 제시한 그의 행적을 사실로 믿으며 조국의 핵을 개발하기 위해 애쓰다 불의의 죽음을 당한 박사를 영웅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가 조국의 핵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청부 살인한 미국의 음모에 분노를 느끼며 핵 주권을 갖지 못한 우리 나라의 현실에 회한을 느끼게 된다.

  『한반도』에서는 박대통령 재임 당시 보안사의 정보처장, 국방부 전략기획 국장 등의 고위관료가 등장하여 미국이 박대통령 시해의 배후에 있다는 증언을 한다. 한 예로, 작가는 소설 속에서 국방부 전략기획 국장의 말을 빌려 박 대통령이 미국의 카터 대통령에게 당한 모욕에 대해 실감나게 말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고의로 비행기를 느리게 날게 하여 박 대통령을 30분 넘게 기다리게 했고, 다른 장소에 비행기를 착륙시켜 박 대통령을 치욕스럽게 했다고 얘기한다. 또한 이 보복으로 정상회담에서 카터 대통령이 거부한 의제를 오랫동안 거론하여 박대통령을 제거해야겠다는 심사를 굳히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대목을 접한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어디까지가 작가의 주장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국방부 전략기획 국장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 정말 이런 사건이 일어났었는지, 카터 대통령은 정말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 시해를 결심했는지 독자의 입장에서는 진위를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혼란에 빠져 있던 독자들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미국에 의한 박 대통령의 시해를 언급하는 속에서 하나의 설(說)을 신빙성 있는 사실로 믿게 된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에서는 역사 교과서 왜곡이라는 최근의 쟁점사안을 소재로 하며 일본 황태자비 마사코라는 화제의 인물이 등장시키고 있다. 이 소설에서 독자를 혼동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문제의 왜곡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대한 작가의 정의에 있다. 작가는 이 모임이 일본 총리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일본 정계 최고의 거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일본의 과거사를 완전히 은폐한다는 치밀한 계획 끝에 탄생된 것이라 얘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일본을 지배하는 정치인들이 역사를 은폐하려는 치밀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속내를 가진 일본을 절대로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는 일본은 식민 지배 시절 한국에 가했던 잔인한 행적들에 대해 은폐하고 있다는 상식과 맞물려 작가가 제시하는 소설 속의 진실에 대한 신뢰를 더하게 된다. 그러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실체, 명성황후 시간에 대해 소설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주장일 뿐이다.

  이처럼 김진명의 소설 속에서는 작가가 믿는 하나의 가설이 실제의 사실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 이것이 실제의 인물과 사건들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에 더욱 신뢰를 가지게 된다. 미국이 한국의 핵 보유를 막기위해 세계적인 한국인 물리학자를 비참하게 살해했으며, 핵 보유를 위해 독자행동을 하던 한국의 대통령을 청부 살해했고, 일본을 지배하는 정치가들이 아시아를 장악하려는 시도의 첫걸음으로 역사를 은폐하려는 계획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을 사실로 믿게되는 독자들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뜻대로 허구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소설의 특성이 하나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비판을 봉합하는 결말 - 그래서 모든 것은 잘 되었더라

 

  그러나 민감한 사안과 위험한 가설을 바탕으로 사건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소설의 결말은 이러한 민감성과 위험성을 안일하게 덮어버린다. 세 소설 모두 허황될 정도로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소설 후반부에 이용후 박사가 숨겨놓은 플루토늄이 발견된다. 남한의 대통령은 북한의 주석에게 비밀 사절을 보내 남한의 플루토늄과 북한의 핵 기술을 합하여 핵무기를 만들어 내는데 합의하고 이를 완성한다. 다른 국가에 대한 배타성과 핵무기의 가공할 폭력성에 대해선 눈감아 버린 채, 소설 속에서는 남북한이 핵을 합작한 것에 대한 감동과 찬양이 이어진다. 또한 핵 합작을 이루어 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권순범 기자의 가상 시나리오가 채택되어 대통령과 장성들 앞에서 낭송되는데 이 시나리오의 내용은 한반도를 다시 침략한 일본에 대응하여 남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핵무기를 일본의 무인도에 떨어뜨림으로써 한국의 관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한 시나리오가 장성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고 이용후 박사의 절절한 애국심을 회상하는 데서 소설을 끝이 난다. 여기서 독자들은 핵무기가 외국에 대한 강력한 위협 도구라는 것은 망각한 채, 이러한 감동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핵의 보유를 염원하는 마음을 가지기 쉽다.

  『한반도』의 결말에서는 이경훈이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한다. 침묵이 흐르던 중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갑자기 직통 전화를 걸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세계사에 대한 폭압이며 우리는 미국의 편에 서서 핏줄간의 전쟁을 치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통보한다.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에 감동한 이경훈과 박인남은 벅차 오르는 가슴을 안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의 결말은 참으로 희망적이지만 이경훈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더 이상 미국의 손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임을 통보한다는 설정은 황당스러울 정도다. 전쟁이 날 경우 미국이냐 북한이냐를 택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며, '우리는 민족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것은 당위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복잡한 한국 근현대사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버린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의 결말에서는 일본의 황태자비 마사코가 유네스코의 일본 역사 교과서 심사 위원회에서 일본이 은폐했던 명성황후 시간을 공개한다. 마사코는 남편인 황태자를 비롯한 일본 황실을 등지고 한국 측의 결정적인 증인이 되어 일본의 비도덕성을 폭로하고 역사 왜곡 교과서를 좌절시킨다. 마사코가 자신을 납치했던 한국인의 의로운 행동을 칭찬하며 역사 은폐에 대한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독자들은 납치됐던 황태자비까지 납치범의 편을 들게 된다는 데서 '납치'라는 극단적인 보복행위의 비윤리성을 간과하게 되며, 역사 왜곡 교과서 좌절이라는 희망적인 결말에 의해 소설 속에서 제시하는 명성황후 시간 등의 진위여부에 대한 비판이 묻혀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희망적인 결말이 말 그대로 희망적일 수 없는 이유는 독자의 눈을 가리는 안대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통쾌한 결말에 도취된 독자들은 작가 주장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십상이다. 이렇듯 지나치게 허구적인 결말 역시 작가가 제시하는 소설상의 진실을 견고하게 만들고 작가의 시각에 대한 비판 봉합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웃 나라를 핵 공격하고,  '통보'라는 일방적인 외교를 감행하며,  이웃 나라의 황태자비를 납치한다는 위험한 구상을 독자는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3. 김진명 소설의 위험한 호소

 

외국에 대한 배타심 자극 - 너희가 우리에게 어떠한 짓을 했느냐?

 

  김진명의 소설에는 외국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하고 배타적 애국심을 고취시킬 위험성이 있는 감정적인 표현들이 상당수 사용되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미국 놈들 믿지 말고, 소련에게 속지 마라. 일본 놈들 일어선다, 조선 사람 조심해라'는 구한말에 퍼진 출처불명의 노래를 인용하며 지금 한국의 현실이 꼭 그와 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먼저 발견되는 작가의 중대한 실수는 '제국주의'라는 이념이 세계에서 공공연히 우상시 되던 19세기의 상황을 현대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의 이해 관계를 추구하는 국제 사회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하나 아직도 선진 제국들이 다른 나라를 군사적,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작가의 견해는 지나치게 편향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던 제럴드 현의 입을 통해서 미국에 대한 원망이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다.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박 대통령이 시해 당했다는 사실을 안 제럴드 현은 자신의 친구인 미군 동료를 멱살을 잡고 흔들며 절규한다. "그까짓 미사일, 핵, 내가 다 포기시키겠다고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잖아. 그래도 그 사람, 한 나라의 대통령이야, 대통령, 우리 나라 대통령이라구!" 조국의 대통령을 죽이려는 강대국의 공작을 막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이에 실패하고 분노와 회한에 몸을 떠는 제럴드 현의 절절한 대사는 독자들의 가슴 깊이 파고들 수밖에 없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 대한 작가 자신의 배타심이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게 된다.

 

왜곡된 애국심의 제시 - 민족이 최고의 선(善)이다!

 

  김진명은 다양한 소설 인물들의 입을 통해 왜곡된 역사와 민족의식을 잊고 살아오던 한국인들을 책망하고 있다. 민족을 위해 살아온 의인들을 제시하고, 다른 나라의 국민들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것도 불사하고 있다는 말을 통해 독자의 애국심에 반성의 불을 지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이는 미국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인도 불사하는 군수업체 대표 제임스의 입을 통해 표현된다. 제임스는 "나는 나의 조국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오. 이상한 것은 오히려 한국인들이오. 당신들처럼 자신의 조국을 업신여기고 창피하게 생각하는 국민들도 없을 거요.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는 애국심이라면 이는 자민족 중심주의의를 선으로 선전하는 위험한 선동일 뿐이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에서 작가는 의로운 3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들을 질타하고 있다. 명성황후를 구하기 위해 궁궐로 뛰어들었다 살해당한 의로운 할아버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병영에서 홀로 궐기하다 사형당한 아버지, 역사 왜곡 교과서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려 황태자비를 죽이려다 일본 경찰의 권총에 살해당한 청년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만을 애국심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애국을 실천하는 방법은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작가는 '나가서 장렬하게 전사하라'를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애국의 형태는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를 배제하고 내 나라만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애국심은 아니며 극단적인 방법으로 현실에 항의하는 것만이 애국의 방법은 아니다. 이러한 형태의 애국심을 가장 열렬한 것인 줄로 믿는 다면 역사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배제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폭력성에 대한 옹호 - 우리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효과적인 소설의 문법을 통해 비판의 눈이 닫혀버린 독자들은 극단적인 주장마저도 수용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핵의 보유이며 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전반에 걸쳐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핵을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의 글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현대에 와서 국가의 힘이란 핵을 말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구 차원의 남북 문제에 있어 우리는 영원히 핵을 가진 선진국들의 패권주의에 끌려 다닐 운명을 강요받을 수만은 없습니다. 문제는 힘입니다. 우리가 핵을 가졌을 때 우리는 주변의 강대국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떳떳하고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힘을 얻기 위해 가장 용이한 것이 핵의 보유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저마다의 힘을 얻기 위해 핵을 보유한다면 세계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작가에게 반문하고 싶다. 이는 자위권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전후 평화 헌법을 형해화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일본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소설에서 제시한 대로, 한반도를 그들의 이해관계 아래 좌지우지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음모에 마냥 분노하게된 독자들은 폭력성을 옹호하는 논리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Ⅲ. 끝맺는 말

 

  김진명의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 또한 울분을 느끼기도 하고 공감한 부분이 있었다는 데서 민족주의적 문법의 유효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김진명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 절실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진명 소설의 문제성을 덮어둘 수 없는 것은 그의 소설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져 그들의 역사관까지 좌우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개인의 주장이 소설의 민족주의적 문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실제의 진실로서 강하게 다가가게 되면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배타적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위험한 호소들이 독자의 머리와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균형적인 시각과 소설과 현실을 분간하는 독자들의 비판력이다. 실존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실제의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해도 소설 속의 진실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가공의 사실'이다. 독자 스스로가 이를 감추는 교묘한 포장지를 벗겨내어 생각할 수 있을 때, 김진명의 소설도 '의식 있는 역사를 만들라'는 하나의 충고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차 텍스트

-김진명(1993)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 2, 3권 서울: 해냄

-김진명(1999) 『한반도』1, 2권 서울: 해냄

-김진명(2001) 『황태자비 납치 사건』1, 2권 서울: 해냄

 

2차 텍스트

-복거일(1998),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서울: 문학과 지성사

-진중권(1998),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 2권 서울: 개마고원

-진중권(1999),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아요>, 『샘이깊은물』 서울: 뿌리깊은나무

-김수경(2001), 역사 잊으면 왜곡은 계속된다, 동아일보(7월 28일)

-김한수(2001), 日 우익들이 벌이는 음모 무엇일까, 조선일보(7월 28일)

-이윤미(2001), 일본인 비윤리성, 무감각증 고발, 내외경제신문(7월 27일)

-유재혁(2001),  '명성황후 시간' 충격적 가설, 한국경제신문(7월 25일)

-이강윤(1999), 미 군산복합체의 10.26 사주 가설소설, 문화일보(4월 8일)

-김광호(1999), 미스터리로 남은 10·26사건의 배후를 추적한 장편소설, 경향신문(4월 6일)

-표재용(1994), 핵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인기 폭발, 중앙일보(5월 24일)

-최재봉(1994),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저자 김진명씨, 한겨레(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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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화여대 홈페이지(http://home.ewha.ac.kr/~kukewha/best/kuk14_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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