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운성 평론가의 "고다르의 서재" 강연 정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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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 평론가의 "고다르의 서재" 강연 정리글

안녕하세요.

작년 11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고다르 추모전 중에
유운성 평론가의 "고다르의 서재"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었는데요.

저는 해당 강연을 들었고, 매우 흥미로워 다시 찾아보기 위해
텍스트로써 불완전하게 전사를 해보았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실테지만,
작년 12월경에 티스토리를 통해 게재했으나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마크다운 관련 오류 때문에 비공개로 돌리게 되었고
그게 그대로 방치되어 해를 넘기고 9월이 되어서야 다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수정한 정리글은 최대한 읽는 데에 편의성이 크도록 가독성을 신경써서 수정하였고,
이번에는 깃허브(GitHub)의 pages라는 블로그 플랫폼을 통해 게재했습니다.

강연 자체도 직접 들을 때 꽤나 무겁게 느껴진 만큼,
시간을 두고 긴 호흡으로 읽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https://movarch.github.io/posts/godard-histories-du-cinema/

P.S. 제 블로그에는 유운성 평론가의 고다르 강연 정리글 이외에도
작년 5월 요나스 메카스 회고전 때의 강연 정리글도 있으니
참고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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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S 컷과송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7 하늘사탕  
유익한 내용 감사드립니다
14 Darktemplar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겠습니다~
유운성씨가 강연에 언급한 고다르의 두 개의 논문 <고전적 데쿠빠쥬의 옹호와 현양>, <몽타주, 나의 아름다운 근심>은 대단히 유명한 글이라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읽는 글입니다. 역시 유운성씨가 강연에서 언급한 고다르에 대한 인터뷰 <나의 독서>를 저도 최근에 읽었는데 엄청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꼭 한 번 읽어 볼만한 글이지요.

강연 앞부분을 읽다보니 조금 갸우뚱한 부분이 있어서 댓글을 답니다. 유운성씨가 본문에서 언급한 <몽타주, 나의 아름다운 근심>의 인용부분이 불확실한데요. 살짝 고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운성역) 《10월》(Октябрь)과 특히 멕시코 만세! 같은 영화에서 몽타주는 무엇보다 미장센의 궁극이다.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하나를 다른 하나로부터 분리해낼 수 없다. 이는 선율에서 리듬을 분리해내려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어 오슨 웰즈의 《아카딘 씨》(Mr. Arkadin)(1955)와 마찬가지로 장 르누아르Jean Renoir의 《엘레나와 남자들》(Elena et les Hommes)(1956)은 몽타주의 모델이 되는데 왜냐하면 이들 영화는 각각의 방식으로 위상 세는 모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정) <10월>과 같은 영화에서는(<멕시코 만세!>와 같은 영화에서는 더욱더) 몽타주(=편집)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장센(= 연출)의 키워드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과 연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리듬과 멜로디를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엘레나의 남자들>, <아카딘씨>가 동일하게 편집의 모범인 것은 이 두 편 모두 각 장르 연출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몽타주와 미장센은 편집과 연출로 번역해도 무방합니다. 자꾸 어려운 불어 영화 용어를 쓰면서 글 자체가 신비화되어 내용이 어려운 것처럼 되어 버린 케이스라고 할까요.
 암튼 올려주신 강연 채록은 잘 보겠습니다.
3 Kaswqe  
말씀 감사합니다.
우선, 다시 짚어주시면서 재인용하신 덕분에 원글의 "미장센의 모델"이 "위상의 모델"로 잘못 기술되었음을 인지했습니다.(이건 음성인식 텍스트 변환 이후 검토 과정에서 미처 체크 못한 부분이네요ㅠㅠ)

내용적인 부분에 대해선, 일단 저는 영화에 대한 글이나 어떤 비평들을 성실하게 읽어온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습니다만, 먼저 알려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유운성 평론가의 번역 관련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글루스를 통해 읽을 수 있었던(지금은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로 접근이 불가능해졌네요ㅠㅠ) 과거의 유 평론가의 번역은 영어 번역본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말 경에 미디액트의 고다르 연속강의에서 고다르의 해당 글을 프랑스어 원문을 참고하여 다시 번역한 글을 접할 수가 있었는데요.
그리고 유 평론가가 이에 관해 몇 가지의 주를 달아 분명하게 하고자 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대략 이러합니다.
1. 고다르는 'montage'와 'mise en scène'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의도적으로(혼란스럽게) 진동시키고 있다.
2. 'montage'와 'mise en scène'이 미학적인 의미에서 쓰였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각각 '몽타주', '미장센'으로, 기술적인 작업을 가리키는 쪽으로 쓰였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편집', '연출'로 옮겼다.
3. 고다르는 이 글에서 'mettre en scene'(mettre: 놓다, 두다, 위치시키다)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는데, 'mise en scène'과 구분하기 위해 '장면연출'이라 옮겼다.(이 부분은 해당 인용에는 없지만, '연출'이라는 번역어의 선택에 관해 관련이 있는 듯하여 같이 적습니다.)

소규모에 내부 공유 위주로 이뤄진 강의이기 때문에 (또한 제가 별도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번역의 원글 자체를 인용해드릴 수 없어서 조금 아쉽습니다만, 이러한 부분 참고하신다면 고다르의 이 글에 다가가는 데 더 도움이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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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asw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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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간이 나서 <고다르와 올리베이라의 대담> 전문을 읽어봤습니다. 무척 재밌고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제가 읽다보니 유운성씨 강연 채록 글에 주가 달린게 생각나서 같이 비교해봤습니다. 혹시나 제 글이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여 비밀글로 붙여봅니다. 부디 제 잘 난 척하는 것으로 여기시지 말고 참고만 하셔요. 채록 글은 정말 유익했습니다.(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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