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날 미치게 그리고 웃게 그리고 눈물나게 하는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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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날 미치게 그리고 웃게 그리고 눈물나게 하는것들...

14 막된장 7 1085 3

 동네 도서관에 자주 갑니다.

그리고 갈때마다 보는 두사람이 있습니다.

한분은 여성으로, 키는 150cm정도에 통통하고 앳된 얼굴이지만 실제 나이는 30대로 알고있습니다.

이분은 도서관이 여는 시간에 맞추어 매일매일 도서관에 오십니다.

그리고 오후 6시가 될때까지 웃음 띤 해맑은 얼굴로 도서관 현관 앞을 계속 왔다갔다 하십니다.

때로 목이 마르면 대각선으로 늘 매고다니는 작은 가방에서 예쁜 분홍빛 작은 지갑을 꺼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서 드시기도 합니다.

점심때가 되면 지하 식당으로 가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 드십니다. 

그리고나면 다시 도서관 현관 앞을 지름 2미터 정도의 원을 그리며 계속 도십니다.

때때로 도서관 경비아저씨와 직원분들이 말을 걸어주면 그렇게나 반가운 어투로

재잘재잘 말도 잘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본지 3년쯤 되었나?

토요일 오후, 도서관에 갔더니 여전히 그모습으로 도서관 현관 앞에  

이젠 제 눈에도 실제 보일듯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 봅니다.

 

"안 힘들어요?  저기 가서 우리 음료수 마실래요?"

"아니요, 괜찮아요?  근데 누구세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정말 쥐어짜는듯한 심정으로

 

"친구요.."

하고 대답해드렸습니다.

 

"진짜요?"

하고 되묻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만 풀썩~ 웃어버렸습니다.

 

"그럼요!  그러니까 저기 자판기에서 우리 시원한 음료수 빼먹어요"

 

둘이 같이 이온음료 한캔씩을 마십니다.

 

"그렇게 종일 서있지 말고 좀 앉아도 있고 그러세요.  힘들잖아요"

"안힘들어요.  난 하나도 안힘들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많은 이야길 해줍니다.

엄마와 놀이동산 간 얘기.  집에서 조카애가 종이로 꽃 접어준 얘기.  옆집 개가 강아지들을 낳은 얘기.

아침마다 엄마가 돈을 삼천원씩 준다며 자랑도 하고..

 

경비아저씨가 좀 걱정되셨는지 옆으로 오십니다.

제가 음료수를 하나 더 빼드렸더니 고맙다며 같이 마시면서 셋이 한참 수다를 떨었더랬습니다.

막상 말문을 트니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나옵니다.

 

"난 책 반납하러 가야해요.  우리 다음에 또 음료수 마시면서 얘기 해요"

"알았어요.  내가 또 얘기해줄께요"

 

경비아저씨께서 일어서는 제 팔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면서 웃으십니다.

 

 책을 반납하고 다시 읽을만한걸 고르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잠시간 읽으며 땀도 식힐겸

자리를 골라 앉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는 제가 이 도서관에 온 첫날부터 보았었던 20대의 청년이 앉아 책을 읽고있습니다.

짧은 머리에 크고 좀 마른 체형으로 허리는 반듯이 세우고 무릎을 딱 붙이고 앉아 책을 눈앞 15cm 정도에  

90도로 들고 미동도 없이 보고있습니다.

그가 읽는 책은 [ 20대를 위한 심리학. 저자는 심은정, 김은영, 변복수, 석미정, 최혜경 공저. 출판사는 숭실대학교 ]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

처음 보았었던 날부터 오늘, 지금까지 그가 읽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는 늘 도서관에서 늘 이 책만을 읽습니다.

그는 늘 도서관에서 늘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만을 읽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열고 닫을때까지 점심도 거르고 화장실만 다녀오면서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책, 같은 페이지만을 저 힘든자세로 읽고있습니다.

어느순간부터 이 친구가 보는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미치도록 궁금해졌지만  

저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에 늦은시간에만 한두번, 그리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오는터라 이 책을 제가 선택할 기회가 없습니다.

20대를 위한 심리학 서적은 이 도서관에 단 1권만이 있고

현실적 소유주는 바로 이 친구인 턱에 제가 골라 손에 들고 읽어볼 기회가 나질 않습니다.

어느날 결국 인터파크에서 책을 주문해버렸고, 드디어 대망의  

[20대를 위한 심리학] 서적의 마지막 페이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한참을 웃었습니다.

왜?  ㅎㅎ 비밀입니다.  궁금하시면 도서관에서 아니면 구입하셔서 그 마지막 페이지를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두분은 장애인 이에요.

한분은 그 작고 통통한 얼굴에 늘 웃음을 지으며 도서관 현관앞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고

다른 한분은 세상에서 제일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오늘도, 지금 이순간에도

[ 20대를 위한 심리학. 저자는 심은정, 김은영, 변복수, 석미정, 최혜경 공저. 출판사는 숭실대학교 ] 서적의

마지막 페이지를 그 정갈한 자세로 앉아 읽고 있습니다.

 

이 두분을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때론 혼자 멋적게 눈물 몇방울을 떨어뜨린적도 있었지만

40대에 접어들어 스스로 쉽게 지치지 말자 하는 묘한 저만의 버팀목이 되주는 이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때로 묘하게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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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26 naiman  
단편 영화같아요.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지네요...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22 CINWEST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네요.
단편 영화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많이 보던 '좋은생각'이나 '샘터'를 읽은 느낌이기도 하고..
막된장님의 따뜻한 마음도 느끼면서 필력도 좋으시다 생각도 들었네요.
저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막된장님 감사합니다^^
26 naiman  
맞다. 샘터의 수필들이 생각나네요...저랑 느낌이 비슷하시네요.
15 냥냥이1  
글 솜씨가 좋으십니다.
읽고나니 묘한 여운이 남네요
23 캬오o  
세상을 보는 눈이 참 멋지시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19 scndtnn  
마음 씀씀이가 부럽습니다. 그 페이지가 궁금해서 직접 책을 사셨다니... 전 도서관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니 않습니다.
32 빨강머리앤  
참 이쁘시네요, 그 마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