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굴욕외교 그리고 졸속협상

자유게시판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굴욕외교 그리고 졸속협상

1 고운모래 2 7348 0

 


2MB 뒷통수 때리는 3MB!! (한겨례만평)


 





03047228_20080602.jpg




 


 


 


<재미있는 픽션과 드라마적인 요소를 위해 이하 존칭 생략>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국민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국민합의없이 대부분의 국민들의 일치된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한일회담 및 한일수교 그리고 배상금 처리 문제.


그 당시 쓰러져가는 나라를 살리려고... 타이밍상 눈물을 머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야 무엇이었던간에, 어쨋건 국민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기며  "국민들의 자존심을 몇푼의 배상금이란 헐값에 팔아넘긴 매국노"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고, 그 당시 국민들의 정서상 그런 고육지책이 용납될 리 만무였으며 민족주의 진영의 재야는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는 불보듯 뻔하였다.


오죽하면 그랬으랴 하는 고육지책을 심정적으로 백번 양보하여 이해한다 쳐도, "미국의 원조가 끊기어 다 굶어죽고 난 뒤에 더 큰 배상금을 챙긴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가 된다"는 논리를 일면 수긍한다 하여도, 피폐해지고 초토화된 국가의 재건과 민족중흥, 자력갱생에 필수적인 유일한 종잣돈 마련 등 그 어떠한 미사려구를 동원한다 하여도 그 당시 일본이라면 치를 떨었던 국민들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였고, 나라를 두번 팔아넘긴 것 같은 비참함에 온 나라가 들끓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나라인데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화가 났다. 그 선두에는 이명박이 있었다. (이명박은 추후 6.3 반대시위 주도 및 주동 세력의 배후로 지목되어 선동 내란죄로 구속됨) 어찌보면 그 당시의 한일회담은 국민 정서를 볼 때 원래부터가 설득 불가능한 안건이었다. 오죽하면 근 15년 간의 자유당, 민주당 정권 때도 끝끝내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20080604081942661h4_085008_0.jpg
◇ 6.3사태로 불리는 1964년 6월3일의 한일회담 반대 시위. 중대한 국가 현안에 대해 박대통령은 저항의 장벽을 당당히 돌파해 나갔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요즘 ‘6.3동지회’ 멤버 대통령 이명박이 국정 현안에 대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정부기록사진집


그에 1964년 정면으로 반발 저항한 한일회담 반대 시위 - 이름하여 6.3 사태 - 그 중심에는 6.3 삼인방이 있었고 그 삼인방 중의 하나가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맨몸으로 맞선 419 역사 속의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고려대의 총학생회장 이명박 이었다. (419 이후 민주당 시절 419의 성공 자신감에 한번 맛들인 국민들은 사소한 일에조차 모두가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보이며 사사건건 여기저기 수많은 시위를 시도 때도 없이 낳았으며 무분별한 무소불위의 데모 만능 시대는 결국 516 군사혁명을 불렀다.) 모르긴 몰라도 6월 3일 그 때 이명박은 분명 자기들이 들고 다니던 플랭카드, 깃발, 횃불 등을 누구의 돈(?)으로 샀었는지는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하여간 그래서 훗날 이명박은 그 어디에서도 일자릴 구하기 어려웠고, 이명박이 참다 못해 박정희에게 항의(?) 편지를 썼다 한다. 그런 인연으로 박정희는 이명박을 눈여겨보다 나중에 정주영을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이 그 친구 물건 같으니 밑에 두고 한번 써보라고 추천(?)했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일화가 있다. 오늘날의 이명박이 있기까지에는 어쩌면 그러한 만남과 행운과 숙명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났다 생각되었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역사에도 윤회가 작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돌고 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40여년전의 이명박은 과연 40여년 후에 자신이 갑과 을이 뒤바뀌어서 박정희와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처지에 몰릴 것임을 자신인들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은 40여년 전의 자신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을까 없을까? 40여년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질기고도 묘한 인연에 대하여 지금 어떤 감회가 들까?  온갖 욕과 비방에 대한 인내심은 그러한 업보에서 연유되는 것일까? 전직 CEO이면서 6.3 동지회 멤버인 이명박은 과연 그 시련을 어찌 헤쳐나갈까?


박정희는 최하빈국의 대통령인 주제에... 국력면에서 미국의 눈꼽만치도 비교가 안되는 주제에... 케네디 앞에서도 썬글라스 끼고 당당히 맞짱뜰 정도의 대쪽같은 자존심과 배짱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대한민국이 그야말로 거지나라이던 시절에 서독 의회에 가서는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내던지고 "우린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담보도 없다. 담보없이 한번만 꿔달라. 제발 한번만 도와달라. 우리 국민들은 가진 건 없지만 신의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국민이다. 한번만 도와주면 우리 국민들은 그 은혜를 결코 잊지않고 근면성실히 견마지로로 일하여 꼭 갚겠노라."는 눈물어린 일장연설로 (솔직히 굴욕적인... 하여간에 지금이라면 일국의 대통령이 도저히 할 짓은 아니다.) 서독의 대통령과 의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였고, 외국에 팔 수 있는 자원이라고는 그야말로 피와 사람 밖에 없어서 외화벌이를 위해 서독에 송출하였던 그 곳 간호사들, 광부들을 만나 "미안하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조금만 더 참자"며 눈물을 보여 모두가 부등켜 안고 함께 엉엉 울기도 하였던 인간적인 면도 보여서, 그들은 그에게서 더없이 자애로운 아버지같은 국부의 상을 보기도 하였고 나라와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던 흔적을 여기저기서 많은 이들이 보았다 한다.

하지만 인자함과 부드러움과 덕 만으로는 어머니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의 역할은 해낼 수 없을 터, 박정희 키는 정말 짜리몽땅하고 까무잡잡 볼품 없었어도 그 감히 넘보기 힘든 카리스마와 넘치는 포스 만큼은 정말 대단했다. 반면에 이명박은 그리 왜소하거나 작은 편은 아니다. 대신 눈은 좀 작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고 골치아픈데 그냥 내일이라도 맘편히 하야해버리고 나몰라라 도망가는 약한 모습을 보일까 아니면 남은 5년 임기 내내 정적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우유부단하고 허약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일까 아니면 초지일관 컴도저 소신(또는 똥고집?)과 불굴의 의지(또는 아집?)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 대한민국을 반석(또는 구렁텅이)에 올려놓을까?


"실패는 없다, 다만 시련만이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은 대한민국에도 유효할까?


 


이명박이 시위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갈 때, 시위대는 과연 놀라서 주춤주춤 흩어질까? 아니면 한꺼번에 덮칠까?


이명박은 과연 시위대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을까? 그 정도의 위엄이 있을까?


 


끝나지 않은 이 드라마의 끝은 5년 후에 쓰여질 것이다.


 


 


 


시위대 앞으로 뚜벅뚜벅 나간 대통령


 


이하, 기사내용 발췌


 


[데일리안]




5.16 47주년이 되는 올해 유난히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회고가 이어지는 것은 47년전만큼이나 요즘의 세상에 국민들이 무기력해진 것은 아닌지. <데일리안>은 동화작가이자 출판편집인인 김인만 씨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내외분의 일상과 당시 에피소드 등을 담은 ´그리운 나라, 박정희´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데일리안 김인만 작가]서울대의 종합캠퍼스는 1960년대 말부터 건설을 위한 사업이 진행되어 관악산 기슭으로 자리를 잡고 1971년 4월 2일에 기공식을 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시내에 흩어져 있던 국립서울대학의 캠퍼스를 한곳에 통합해 건설하는 의의를 담은 친서를 서울대 총장에게 전하고, 기공식 후에는 건설현장에 나가 공사의 진척상황을 살폈다.



서울대학에는 여학생도 적지 않은데 관악산의 뱀이 구내에 못들어 오게 할 방책도 마련해 보시오.”



현장의 학교측 책임자에게 이런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 관악캠퍼스 건설사업에 대하여 서울대를 변두리로 쫓아낸다는 소리가 적지 않았다. 데모하는 학생들이 귀찮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한곳에 모아두면 데모를 막기도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악캠퍼스 기공식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14일에는 홍릉의 서울연구개발단지 기공식이 있었다. 서울연구개발단지는 1969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들어서고, 한국과학원, 국방과학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이 들어오게 되는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이다.



기공식에 참석하러 가는 대통령과 경제기획원장관(김학렬), 과학기술처장관(김기형) 등의 차량이 신설동을 지나 안암동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차량이 홍릉 쪽으로 가는 도중 갈림길에서 직진해야 되는데 급히 우회전했다.



“왜 돌아가려는 거야?”



1호차에서 박정희가 물었다.



“학원 소요로 도로 사정이 안 좋습니다.”



학생들의 투석이 격렬해 경찰이 대치 중이라고 비서관이 보고했다. 그날 서울대 사대에서는 교련(敎鍊) 반대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대학가는 봄학기 개강과 더불어 교련 철폐 요구가 빗발쳤고, 이는 대통령 박정희의 3선을 앞둔 4월 27일의 제7대 대통령 선거 일정에 민감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거 때문에 우물쭈물한다면 박정희가 아니다.



“상관없어. 바로 가.”



승용차 행렬이 청량리에 있던 서울대 사범대학 앞에 이르자 돌과 연탄재가 무수히 날아왔다. 1호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속력을 내는 경찰 백차를 뒤따라 시위 현장을 신속히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가 ‘탕!’ 충격음을 내며 1호차에 떨어졌다. 박정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차 세워!”

그가 차에서 내리자, 수행원들은 아연 긴장했다.

돌을 던지던 학생들은 세단차에서 검은 얼굴빛에 키 작은 사람이 내려서 학교 정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을 보고 처음엔 누군지 알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재빨리 거총자세로 에워싸고 경찰이 겹겹으로 진을 치자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대통령이다!”

“박정희다!”

그 소리에 학생들이 놀란 참새들처럼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학생들은 교정 안쪽으로 뿔뿔이 사라져 숨어버렸다.

박정희는 대학구내 학생처 사무실까지 들어갔다.

“학생 지도를 똑바로 하시오. 이럴 때일수록 총장 이하 교수들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겠소?”

학교 관계자들을 질책하고 경찰에게 명령했다.

“손에 흙 묻은 놈들 다 잡아넣어!”

그런 다음 다시 차에 올랐다.

대통령 승용차 행렬은 지체없이 교정을 떠나 홍릉의 서울연구개발단지 기공식 현장으로 갔다.

박정희는 기공식 치사를 통해 “선진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우리의 토착기술을 개발하여 근대화 과정을 단축시키고 수출증대로 국력을 더욱 증강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곧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임을 강조했다.

그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사복 경찰 1백여명이 서울사대 교정 안팎을 샅샅이 뒤져 학생 70여명이 동대문경찰서에 끌려갔다.

서울연구개발단지 기공식을 마치고 돌아온 박정희는 학생들을 그날 밤 안으로 전원 석방하라고 다시 지시했다. 학생들은 혼쭐이 난 뒤 풀려났다.

1975년 10월 이후 세차례 청와대에서 단독회견을 했던 일본의 문화평론가 후쿠다 쓰네아리(福田恒存)는 대통령이 학생 데모가 벌어진 서울대 사대에 들어갔던 일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이 설득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소. 총장과 교수들이 학원 소요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데모하는 학생들을 향해 학교 교정까지 들어간 일의 배경에는 당시의 긴박한 안보 상황이 있다.

1971년 그해 3월 미국은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와 한마디 상의없이 갑자기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시켰고, 남북의 세력균형이 깨지자 김일성의 북한은 기세가 등등해 “수령동지의 환갑을 서울에서!”라며 미쳐 날뛰고 있었다.

믿을 것은 오직 우리 힘뿐이니 국산 무기를 하루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절박한 소리가 나오는 판국에 정치적 반대자들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향토예비군 철폐와 국군 감축을 주장해 대중을 선동하고, 학생들은 교련 철폐를 외치고 있었다.

“만일 북이 쳐내려온다면 나는 서울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오.”

박정희는 말했다.

씁쓸하게 웃는 대통령을 보며 후쿠다 쓰네아리는 “그 미소 속에 그분의 고독을 읽었다”고 전하고 있다.

최고 권력은 최고의 책임을 동반한다. 최고지도자로 일컬어지는 대통령은 마땅히 중요한 국가 현안에 대해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 박정희의 국가경영에서 드러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책임지는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1968년 주민등록증 발급으로 국민 개개인이 고유의 주민등록번호를 갖게 되었을 때 박정희는 최고책임자로서 당연하다는 듯 번호 조합체계로 첫번째에 해당하는 번호를 가졌다. 대한민국 ‘주민등록번호 1번’의 주인공은 박정희였다.

책임의식이 강한 만큼 권력 행사도 강력했다. 나라가 가난한 것이나 나라를 지키는 일도 과거를 탓하거나 어떤 구실도 앞세우지 않고 모두 자기 책임으로 부둥켜안고 국가경영을 지휘했다. 중요한 국정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치적 갈등과 반대 데모 등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쳐야 했지만, 어떠한 경우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통치철학과 소신에 따라 저항을 당당히 돌파해 나갔다.

박정희의 ‘주민등록번호 1번’은 대한민국 최고지도자의 키워드였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2 Comments
34 음악의정원  
실천의사회소속이면서신 안양에서 최과의사로 계신 박ㅇ용 선생님의 칼럼을 보니 현 시위대들의 청와대진출시위를 막을수 있었고 길거리행진도 막을수 있었다...
청계천시위당시 여고생 및 시민들을 연행해버린 멍청한 실수.. 피켓정도는 들고 정치구호는 할수 있게끔 하여야만 하였다.
이는 미국 선진국도 허용한다. 지혜로운 경찰집행부였다면 그냥 청계천안에서 이 시간현재 촛불시위를 하고 있을것이다..
1 고운모래  
ㅎㅎ "멍청한 실수"라... 그 말을 해석해보자면, 자신이 경찰 수뇌부들보다는 훨씬 똑똑하다고 믿는 꼴인데... 즉 다시말해, 자기가 경찰 수뇌부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근데 그 사람이 과연 그런 망상과 안하무인격 자만심 때문에 그런 표현을 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왜냐면, 설마하니 배울만큼 배웠을 치과의사나 되는 양반이 자신을 그 정도로 스스로 추켜올리는 과대망상이나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고는 믿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뭘까요? 결국 어떤 교활한 의도로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진짜 멍청한 것인지는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이겠죠.

사실은 멍청한 짓이 아닌... 누군가 좀 더 과격한 시위를 바래서, 불을 살살 지펴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진도가 안나가니 지루하고 답답했겠죠. 정치세계라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세계입니다. 특히 권모술수라던가 정치공작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실 분들은 그럴듯하다며 의심없이 "맞아, 맞아..." 고개를 끄떡이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게 군중심리고 그걸 이용한 선동의 ABC 입니다. 그걸 (얼떨결에 부화뇌동) 피하려면 여러 사람들이 믿고 편승하는 유식한 척 하는 지식인들임을 자처하는 모피디, 모기자, 모교수, 모치과의사 등의 말부터 한번쯤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자기만이 스스로 판단하는 냉정함을 갖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죠. 물론 제한된 정보와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겠지만, 최소한 증거가 없거나 근거가 없거나 앞뒤가 안맞는 말들은 일단 무시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는 몰라도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이 한가지 양보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세치 혀나 더러운 정치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오로지 법과 그를 지키려는 경찰의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만약 경찰이 팔짱을 끼고 방관하며 "그래 어디 잘난 니들끼리 마음껏 한 판 화끈하게 붙어봐라. 나는 반칙할 때 호루라기 부는 심판 노릇이나 하련다" 이러면서 나 몰라라 물러나기 시작하면 그 때는 동네 패싸움 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비극도 가능합니다. 한 나라가 패싸움하는 수준으로 전락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나라라 부르기 힘듭니다. 여러분들이 경찰이라고 치고, 법을 어기는 국민들과 법을 지키는 국민들 사이에 있다면 경찰인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야 한다고 믿고들 계십니까? 고민이나 갈등을 할 것도 없이 주저없는 답이 나왔다면 그 믿음을 유지하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폴리스 라인을 설치할 때는 다 이유가 있어서 치는 겁니다. 그 라인을 무시하고 침범하자는 것은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만들고자하는 암적인 세력에 동조하는 꼴입니다. 대한민국 전체에 암이 퍼지면 대한민국은 죽어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지식인은 유식한 척 이런 식으로 위협적인 선전과 현혹적인 단언을 했습니다. "암을 이길 수 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고... 아닙니다. 여러분 그 말을 믿지 마십시요. 이길 수 있습니다. 암세포들이 주변의 정상세포들을 야금야금 포섭하여 너무 많은 수의 세포들이 암세포로 전이되기 전에, 즉 정상세포들이 암세포보다는 훨씬 더 많을 때 일찌감치 암덩이를 제거하면 여러분은 건강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법과 공권력이란 여러분 스스로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지 여러분이 맞서고 물리쳐야 할 타도대상이 아닙니다. 솔직히 2002년 월드컵 응원도 법은 지키면서 응원을 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축제도 좋고 길거리 응원도 좋지만 자기 기분 좋자고 자기 스트레스 풀겠다고 남의 차 지붕 위에 올라타고 차를 두들기고 파손해가며 도로를 점거하며 즐기는 행위는 극단이기주의이며 나라를 망치는 첩경입니다. 또한 이러한 일들을 "감동적이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부추키지도 말아야 합니다. 선진 외국사람들 보기에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창피한 짓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 댓가는 나중에 부머랑되어서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선량한 양들이 다른 곳으로도 가고 싶은데 쉐퍼드가 자기들을 가로막고 이리 저리 모는 것이 못마땅하여 그에 불만을 품고 급기야 뿔난 양들이 떼거리로 작당하여 쉐퍼드를 내쫒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때만을 기다리던 늑대는 유유히 나타나고 그제서야 아차싶은 양들은 경솔했음을 후회하나 이미 늦었다는 우화는 새겨들을만한 내용입니다.

너도 나도 나서며 2MB라 비아냥 거리는 모교수를 비롯한 사이비 언론과 지식인들... 그리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모르긴 몰라도 그 분들의 용량은 최소한 1GB는 넘을 것이라 봅니다. 그렇게 잘나고 똑똑하고 용량이 큰 몇백만의 사람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일일대통령을 하자는 선동... 글쎄 그게 과연 옳은 대안일까요? 그야말로 생각 좀 하고 얘기를 해야 될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즉, 잘난 척 떠드는 사람들의 맹점을 잘 간파하고 살펴보셔야 합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은 1년에 365명의 대통령들을 두어야 할 판입니다. "사이좋게 순번을 정하자. 내가 제일 똑똑하니 오늘은 내가 하고 내일은 네가 해." 이럴 날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과거 정권들이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6학년 둘이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 해서 꾸중하는 선생님이 마음에 안든다 해서, 교문앞에서 기다렸다가 31살의 여선생님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가격하고 폭행하여 병원에 입원시키고 또 그걸 창피해서 덮을려고 쉬쉬하는 안스런 학교측이 있는 요즈음의 대한민국입니다. 초등학생들이라 처벌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구속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나라가 법치국가 대한민국입니다. 시민이 경찰을 패도 속수무책입니다. 그걸 말리거나 집어쳐넣었다가는 청와대 게시판에 탄원 도배를 하고 인터넷에 뿌리고 난리를 쳐서 그 경찰이 오히려 1주일간을 불려다니며 시달리는 세상이었습니다. 민주화라는 이름을 사칭한 양의 탈을 쓴 새로운 린치이자 폭력입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도덕성이 땅에 떨어져 국가의 근본 기강이 엉망이 된거죠. 누구한테 배운 것이겠습니까? 땅에 떨어져 해이해진 도덕의 기치를 세우고 법질서를 바로세워야 합니다. 그럴려면 정부나 사법부나 입법부나 국민들은 공권력의 편에 든든히 서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공권력이 너무 세지면 입법부나 정부관료들이나 노조나 사법부는 겁이 납니다. 자기들이 탈법을 마음놓고 저질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면책특권이나 삼권분립이라는 견제수단과 안전장치가 있어도 여전히 겁을 냅니다. 하지만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이제는 마음을 비워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현 정부의 중요한 역사적 소임입니다. 구습일소의 그 소임을 어찌 슬기롭게 완수할지 현재는 예단하기 힘드니,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