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오스카 수상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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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에 즈음하여...

15 하스미시계있고 3 614 3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서 126개의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틀림없이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런 반응들이 있네요.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는 당연히 <기생충>이다'

'21세기 최고의 걸작은 칸영화제와 오스카를 다 휩쓴 <기생충>이다'


이런 말들은 봉준호 감독도 어이가 없어할 것입니다.


늘 우리 사회는 순위를 세우고 1등만 기억하려 합니다.

학창 시절 서울대 합격생만 따로 불러 차를 권하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이럴 때마다 떠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영화들은 영화제 수상과 무관하고 IMDB 평점은 형편 없으며 흥행은 애초에 염두에도 없었던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세계 영화 발전에 거름이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비평가였던 매니 파버는 '흰 코끼리의 예술과 흰 개미의 예술'이라는 유명한 글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흰 코끼리의 예술'이라는 것은 메이저 문화에서 인정받는 영화들, 쉽게 말하면 아카데미에서 인정받는 영화들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 '흰 개미의 예술'은 그런 곳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영화들을 말합니다.


'흰 개미'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떼지어 다니며 나무를 갉아먹고 집을 무너뜨리는 해충에 불과합니다.

예술이 커다란 얼개(구조)와 같다면 흰개미는 그 얼개를 공격하여 예술의 기존 구조를 무너뜨리는 존재입니다.


그런 흰 개미의 영화가 바로 B급 영화나 언더그라운드 영화라는 것이고 그런 영화들이 영화 발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매니 파버의 주장입니다.


굳이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봉준호 감독의 해외 영화 수상을 두고 영화에 등수를 매기는 것은 어쩌면 봉감독 영화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머리 칸으로 전진하면서 사람들이 투쟁할 수 밖에 없는 구조,  <기생충>에서 지하/반지하와 지상의 사람들이 대립하는 그 사회적 얼개.

그것은 바로 꼴지부터 일등까지 등수를 매기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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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3 schwimmen  
역대 최고의 영화를 가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 같아보여요. 영화가 다루는 내용이 각기 모두 다르고 모두에게 있어 자신만의 최고의 영화는 다를 게 분명하니까요. 어떤 영화를 누군가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인 거죠. 그것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생충이 “역사를 새로 쓴 영화” 라는 건 분명해요. 저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그치만 한국영화로 좁혀보면 제게는 얼마전에 나왔던 아가씨랑 버닝이 더 재미있었고 가슴속에 울림이 더 큰 영화였어요. 영화 전체로보면 제게 역대 최고는 반지의제왕 시리즈에요.
13 리시츠키  
기생충과 코로나, 이 둘은 아마도 지금의 이 사회의 어떤 거대한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통점은 둘 다 해롭다는것이고, 언론과 유튜버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났다는 것일겁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의 시간에 어떤 신화를 만드는 과정 중에 있지 않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요즘, 밖에 나가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 KF어쩌구의 마스크를 쓰고있고, 유튜브에는 기생충 수상에 관한 온갖 클립들이 넘쳐납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이 봉준호의 기념관, 생가, 동상을 세운다는 뉴스가 실렸더군요.

봉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영화를 재밌게 보고난 후의 어떤 찜찜한 감정이 생겼다면, 그것을 생각해달라고 누차 말했던 걸 기억합니다.
기생충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화두, 그것도 가장 첨예한 화두를 던진것이겠지요.
그러나 봉감독이 말하고 싶은 영화 이면의 담론들, 그것은 영화 비평계에서 일부, 시민사회 일부에서만 소구되고 논의될 듯 싶습니다.
기생충은, 늘 그렇듯, 정치권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선동을 위한 수사로만 사용될 것이고, 포털과 유튜브에서는 그 현상만을 위한 컨텐츠와 댓글로만 소구되겠지요.
(봉테일, 디테일 얘기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네요)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제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영화 참 잘만드네하는 것이였고, 두번째는 식칼과 쇠꼬챙이의 직접적인 찌름과 그 물성에 대한 묘사,
봉감독이 지금의 한국사회에 묻고싶은 질문, 누가 누구를 찌른거고 누가 누구에게 찔렸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세번째는 <하녀>와 <마의 계단>을 다시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었고요.

뭐 모쪼록, 황당한 댓글에는 에너지 낭비 없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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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의견에 동감하는게 너무 영웅만들기에만 집착하고 있는것 같아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