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들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제가 책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일주일에 5~6권 가량 구입합니다.
새책으로 구입할 때도 있지만 중고서적이 많지요.
어떤 경우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쓰여있는 책을 구입하기도 해서 중고책 수집 재미가 솔솔합니다.
최근에는 김용옥 선생의 <로마서 강해>를 구입했는데 책 안쪽에 도올 선생이 난을 그리고 낙관까지 찍으셨더군요.
승효상 선생의 책도 낙서가 있다는 이유로 헐값에 구입했는데 낙서가 아니라 선생의 친필 사인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제가 책을 들고 사인을 직접 받기도 했습니다.
정성일 선생이 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는 정성일 평론가와 임권택 감독의 사인을 동시에 받았죠.
배창호 감독이 쓴 책에도 직접 사인을 받았고, 프랑스의 영화학자 자크 오몽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판 책에 사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존 포드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태그 갤러거한테도 사인을 받았습니다. 태그 갤러거의 책이 아직 번역되기 전이라 읽고 있던 원서를 내밀었는데 씨익 웃으면서 사인을 해주시더군요.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게는 호주 월플라워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들고 가서 사인을 받았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에게도 사인을 받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아피찻퐁은 제가 여태 본 외국인 중에 가장 친절하고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돌아가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님의 사인입니다. 한번은 키아로스타미 감독과 친한 지인을 통해서 받았는데 사인이 너무 무심해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직접 찍은 사진집을 들고 가서 사인 요청을 드렸지요.
영화관 안인데도 선글래스를 쓰고 아무 말없이 사인을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 사인은 무심하고 기교가 없었지만 볼수록 멋이 있는 사인이었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와 같은 사인이라고 할까요.
이제는 사인을 받으러 굳이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드니 귀찮기도 하고 숙스럽네요. 저보다는 어린 사람들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는게 더 나을 것 같고요.
그러다 가끔 중고책에서 저자의 친필 사인을 발견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딱 거기까지가 좋은 것 같아요.
친구가 주진우 사인을 받아서 선물로 준 책을 팔러 갔는데 안받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런 행운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부천영화제에서 상영관 밖에서 영화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는데 어느 풍채 좋은 외국인 할배가 계시더군요...
둘이 나란히 앉아 30분 넘게 말없이 담배를 태웠죠...
사실 전 그분이 공포영화 감독 스튜어트 고든인걸 알고 있었는데...30분 내내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어볼까하는 망설임만 가득했슴다 ㅋㅋㅋ
(더 오래 전엔 동네에 중고책방이 많아서 500원 700원 하던 삼중당 문고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그 책들 요즘도 가끔 꺼내 읽습니다. 추억의 세로활자본 ㅎㅎ)
언젠가 한번은 한 유명 소설가가 한꺼번에 내다 버린 책 무더기를 발견해서 헐값에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소설가의 책이 아니라 다른 소설가들이 A 소설가에게 "XX 선생님 감사합니다!" 친필 사인을 해서 선물해 준 책들을
내다 버렸는지 헌책방에 팔았는지 아무튼 헌책방 어슬렁거리던 제 눈에 띄었지 뭡니까.
신나서 냅다 열댓 권을 사 들고 왔는데...
그날 이후로 어떤 작가가 친필 사인을 해서 선물해 준 책들(SNS를 하다 보니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기 전 분들을 랜선 친구로 사귀게 되는 행운이 종종... )은 절대 팔아선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저자 친필로 '누구누구에게'라고 사인해 준 책을 버리거나 팔았으니 (저처럼) 그걸 본 사람들이 얼마나 흉을 볼까 싶어서요. ㅎㅎ
이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요즘은 글 쓰거나 말하다 자구 까먹습니다 ㅋ)
작년 부산영화제 갔을 때 몇몇 감독님에게 사인을 받았는데,
표 사러 매표소가 있던 호텔 로비에 갔다가 우연히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만났던 게 제일 신기했습니다.
옆으로 다가가 영화표를 스윽 내밀며 <마르게와 엄마>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씨익 웃으며 사인을 해주시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인은 두 개였는데,
이란 코미디 영화 <시네마 동키>의 사에드 아마드로우 감독님은 진심을 다해 한국 관객들과 소통하려 하셔서 인상적이었습니다(영화제 후 페이스북 친구가 됨).
영화제 이후 이란 정치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영화계에 대한 정치적 탄압) 이후 페이스북에 글도 잘 안 올라와서 안타까웠습니다.
친절한 것으로는 키르기스스탄의 영화 <달려라 소년>을 들고 부산에 오신 밀란 압디칼리코프 감독님이 최고였습니다.
관객들 요청에 일일이 사진도 함께 찍고 사인도 어찌나 열심히 해주시던지...
하스미 님 재미난 글 덕분에 예전 일들이 생각 나서 헛소리만 잔뜩 쓰게 됐네요.
편한 밤 보내세요! ^__^
그래서 인도의 크리슈나무르티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의 영화 글이 꼼꼼한 정보도 있지만 때론 감각적인 통찰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대학 교수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대학 영화학과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낭인(?) 생활을 하시게 되었죠.
긴 머리, 샌들, 반바지, 오토바이을 즐겨타고 다니는 태그 영감님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신 분이시더군요.
작년에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우울증을 앓고 계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존 포드> 책은 예전에 쓴 책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한 책이죠. 태그 갤러거의 <존 포드>는 출판대국 일본이나 프랑스에도 번역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책이 번역된 것만으로도 출판계에는 행운인데... 구입해서 읽는 분이 거의 없는게 마음 아픕니다.
이용관 교수가 '필름아트'에 Bringing up Baby 를 '아이양육'으로 'His Girl Friday' 를 '연인 프라이데이' 이라는 황당한 번역을 하여 한동안 그 제목이 쓰였죠.
영어전문가가 아닌 영화평론가란 사람이 이런 황당한 번역을 했는데 일반 번역가가 쉽게 시도하기는 어렵지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Bringing up Baby 에 아이는 등장하지 않고 Baby 는 표범을 지칭하는 것이고 '길들이기' '사육'이라고 해야 하는데 양육이라고 해놓았고
His Girl Friday 에서 Friday 는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만난 흑인을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짓고 하인을 부린 것에서 따온, 즉 '충실한 여비서'를 말하는 것이지 연인이 아니지요.
그리고 프라이데이는 그런 관용적 뜻이지 사람이름도 아니고.
이번 존 포드 역자(두 사람이더군요.)는 그래도 꽤 제목에 신경을 썼더군요. 100% 만족스럽지야 당연히 않지만 '황야의 결투' '서부개척사' '황색리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등의 통용되는 제목을 그래도 사용했으니. 물론 존 포드 영화들이 원제와 완전 다른 이상한 제목으로 쓰인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나중에 어떤 외국영화평론 번역서가 등장했는데 '유령에서의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는...' ''잃어버런 성궤를 찾아서 에서 해리슨 포드는....' '워터루 다리에서 로버트 테일러는....' '몇 달러만 더 에서 세르지오 레오네는...' '첫번째 피 에서의 실베스타 스탤론은...' 이런 번역이 나온다면 참 곤란하잖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