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힘없는 부처 공무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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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힘없는 부처 공무원의 독백...

34 음악의정원 2 5078 0

나는 현재 공무원이다.. 사람들이 질시하고 질타하는 철가방맨인 것이다.. 그래서, 인수위원회의 조직개편과 관련한 결정사항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결정권한이 없으므로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그런..


 


공무원을 7천명을 줄인다고 한다... 지난 정부의 4천여명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잘라냈다고 일을 잘 해냈다는 뉘앙스의


기자회견도 신문과 TV로 보았다... 그 7천명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 어쩌다가 이 상황에까지 이르렀을까?


일반 사람들은 7천명이나 줄인다니 뭔가 대단한 일을 이번 정부는 해내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겠지?


 


7천명의 구성원은 누구일까? 그 사람들은 공무원에서 잘릴만큼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일까? 살아남은 다른 부처의 사람들보다


국민을 덜 위하고 나라를 덜 걱정하던 그런 사람들일까?


 


대통령실 106명, 공통부서 감축 734명, 중복기능 간소화 686명, 규제개혁 810명, 지방이양 446명, 출연연구 기관화 3,086명, 민간이양 1002명, 업무폐지 81명.. 총 6,951명...


 


출연연구 기관화 3,086명.. 7천명중 44%.. 이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정말로 공무원에서 쫓겨나갈 만큼의 일 밖에 못하던 사람들일까?


 


공무원은 다양한 직렬이 존재한다. 행정직, 별정직, 교정직, 기능직, 연구직 등... 각자의 직렬에 맞춰 고유의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공무원이다.. 출연연구 기관화하는 사람들은 그 중에 연구직에 해당한다... 연구직이란 해당 부처에서 정책을 세우거나 집행할 때의 배경자료를 작성하고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며 기술적, 과학적 성과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행정권력이나 정치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난 공무원 중에 연구직 공무원이다.. 연구하는 공무원에 맞추기 위해 배우는 것도 더 많이 배웠다.. 이런 상황이 올줄 알았으면 미리 행정직으로 전직할 걸 그랬다 싶다.. 행정직이라도 되었으면 '찍'소리라도 내어볼텐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해버리는 내 상황에 난 아무런 항의도, 설명도 해보지 못하고 그냥 당하고 있다... 아! 나도 정치권력에 바짝 붙어서 살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 버릴껄... 후회가 막급이다...


 


결국 출연연구 기관화 3,086명은 힘이 없고 정치적인, 행정적인 연줄이 없는. 한편으론 실리를 챙길줄 모르는, 돈으로 따지는 능력이 부족해 경제적 마인드(?)가 부족한 연구직 공무원을 자르는 방안인 것이다... 아.. 참으로 슬프다... 사기업에서도 사람을 자를때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자른다고 하더니만... 정부부처에서도 그런일이 발생하고 말았구나... 하기사.. 과학기술부도 없애는 사람들인걸... 힘없는 연구직 공무원 정도야 무슨 대수랴...


 


그러나, 왜 다른 힘있는 부처의 연구직 공무원들은 출연연구기관화 하지 않는가? 연구직 공무원은 각 부처에 존재한다.. 건교부에도, 문광부에도, 기상청에도, 환경부에도 연구직이 존재한다.... 그들은 출연연구기관으로 가지 않을 만큼, 현재의 우리들보다 훨씬 일을 잘하고 있던 것일까? 매일 같이 틀려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기상연구는 우리들보다 잘 했던 것일까? 환경관리에 대한 연구는 우리들보다 훨씬 나았던 것일까? 문화재 관련 연구는 또 우리의 실적이나 업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였을까? 수자원 관련 연구는 우리나라를 물 부족국가나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인가??? 그들이 부럽다.. 그정도의 훌륭한 연구결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 연구결과가 형편없었던(?) 농촌진흥청, 수산과학원, 산림과학원의 1차산업 관련 연구기관들만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국제회의에 여러번 참가해 발표도 했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1차산업부분은 외국으로부터 많은 압력이 들어온다.. 우리는 세게에서 중요한 1차산업 수입국의 하나이니깐.. 난 회의때마다 우리나라를 변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논리적으로 궁색한 경우에는 억지도 써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수출국은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내가 이 상황에 몰리고 있는 것은 그 회의에 나가 우리나라를 위한 노력을 덜 했기 때문일까? 그것 말고도 난 국민들을 위해 덜 노력했을까? 내 사욕을 위해 연구를 해왔을까?


 


난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1차 산업의 상황을 오래전부터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행정직 공무원들에게 말해왔다... 준비해야 한다고... 그러나, 돌아오는건 언제나 마이동풍이었다... 물론 그들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미래를 준비해야할 만큼의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들의 상황도 이해한다.. 맡은 업무 잘해야 1년정도 하고 다른 업무로 갈아타야 하니깐... 상황파악하고 뭔가 해야할 때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하니깐... 하지만 항상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느낌뿐이었다... 난 연구자지 정책집행가가 아니었기에 그런 상황인식에 대한 대처들이 항상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정도로 끝났기 때문에, 그들의 인식을 타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국가로부터 정리해고 대상이 된걸까?


 


내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고 연구했다는 나의 자긍심과 자부심은 이제 어데로 던져야 하는 걸까?


국회의원보다 국민을 더 생각하지 못했을까?


국회의원보다 더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민이라도 가야할까?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했던 주변의 동료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1차산업연구를 위해서 기업이 돈을 댈 것인가? 농민이, 어민이 돈을 댈 것인가?


인수위가 말하는 농수산물 유통구조가 복잡한 것이 연구직 공무원의 잘못일까?


민간 기관이 되어서 내 개인 욕심이 아닌 농민을 위해, 어민을 위해, 산림을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인가?


민간기관이 되어서 인수위의 바람대로 1차산업 경쟁력 향상과 농어촌 발전을 위해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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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42 김판섭  
님의 글 읽어보니까...심정 이해가 가네요.
저도 작년에 공무원 시험 준비했다가...그만...ㅠ.ㅠ

아무튼 힘내세요!
그래도 밝은 내일을 꿈꾸지 않을 수 없잖아요?
4 Sunny。  
출연연에 대해 쫌 아는 사람으로서.. ㅡㅡ;;;
글쎄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닐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론 연구기관은 없어져도 연구원은 곧 다른 곳으로 이직되던데..
아무튼.. 윗분들 무뇌아인 거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