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나오는 칵테일

자유게시판

영화 속에 나오는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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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리츠 랑 감독의 <도시가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에 대해 '영화 이야기 게시판'에 긴 글을 올렸습니다.

아직 못한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있어서 자유게시판에 다시 글을 써봅니다. 이번에 칵테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시적에 칵테일을 좀 만들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칵테일 잔과 기구, 리큐어, 시럽 등을 구입하고 술장고까지 장만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칵테일에 대해 나름 좀 아는 편인데 <도시가 잠든 사이에>를 보면 정말 듣도보도 못한 술이 나옵니다.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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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루피노와 조지 샌더스가 이국적인 칵테일 바(또는 레스토랑?)에서 한잔 하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 두 사람은 같은 언론사에 근무합니다.

조지 샌더스는 TV 방송 국장이고 아이다 루피노는 통신원인데 이들은 내연의 관계입니다. 조지 샌더스는 야심이 많은 사람으로 루피노를 불러내어서 부탁을 하지요.

언론사 민완 기자 다나 앤드류스를 유혹해서 그가 가진 정보를 캐내라는 것입니다.

샌더스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플룻 글래스에 복숭아를 넣고 포크로 툭툭 건드립니다. 이어 샴페인을 붓고 샴페인을 가득 따릅니다.

과문한 탓인지 이런 칵테일은 첨 보는데 외국 칵테일 관련 사이트 여기 저기를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이 영화 속의 이 칵테일에 대한 언급은 있는데 그들도 생소한가 봅니다. 아마 영화가 만들어진 1950년대 후반에 일시적으로 유행한 샴페인 칵테일처럼 추측되네요. 


일단 저 샴페인은 대단히 불편해 보입니다. 칵테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일이나 민트로 장식하는 것을 가니쉬라고 합니다. 

가니쉬는 조그마하게 조각을 내어 샴페인 잔에 핀으로 고정시키거나 잔 위에 살짝 올려놓는게 정식이지 영화 속 장면처럼 저렇게 복숭아를 통째 넣지는 않습니다.

저런 식으로 마시면 복숭아가 코를 건드릴텐데 왜 저런 식으로 마시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게다가 테이블에 올려진 복숭아 소쿠리는 뭔지...

어디 과수원에 놀러 온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첫 장면에서 조지 샌더스가 복숭아를 포크로 콕콕 찌른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일단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복숭아의 표면에 상처를 내어 복숭아 향이 피어오르게 하기 위해서 일 거고, 다른 하나는 샴페인 기포가 복숭아에 생긴 작은 구멍에 붙어서 빙글 빙글 돌게 해서 시각적 재미를 주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음모를 꾸미는데 이 장면의 마지막에 매력적인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아이다 루피노가 조지 샌더스의 책략을 받아들여 다나 앤드류스를 유혹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다 루피노의 멋진 표정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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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칵테일을 마시다가 입을 벌리고 아래 이로 글라스를 툭툭 칩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다나 앤드류스를 유혹할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벌어진 입은 육감적이면서도 그녀의 아랫 이는 상대할 남자를 물어 뜯을 것 같지 않나요?

술을 마시는 태도에서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앞 장면에서 조지 샌더스의 칵테일 서빙 과정을 길게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용이주도하게 상대를 무너뜨릴 준비를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칵테일 준비 과정으로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이겠지요.


그 다음 씬을 보면 다나 앤드류스가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때 아이다 루피노가 등장합니다. 그녀의 작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루피노는 앤드류스에게 술을 한잔 사줄 수 있냐고 말을 건내며 주문을 합니다. 

여기서 그녀가 샌더스가 마신 칵테일 바와 이제 방문한 장소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곳은 분위기가 완전 다르니까요.

샌더스와 있던 술집이 이국적이고 상류층이 이용하는 바라면 앤드류스가 술을 마시는 곳은 언론사 근처의 지하 바입니다. 뒤쪽 벽면에 붙은 액자들을 보십시오.

권투 선수들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존 포드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은 이런 권투 사진에 익숙할 겁니다. 

<말없는 남자> 같은 영화를 보면 이런 종류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암튼 조지 샌더스는 이런 바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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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주문한 칵테일은 'Champagne cocktail, brandy float'입니다. 


이 칵테일은 꽤 유명한 칵테일입니다. 브랜디와 샴페인을 섞고 비터스와 각설탕으로 쓰고 단맛을 낸 뒤 가니쉬로는 오렌지 슬라이스를 띄운 칵테일이죠.

칵테일이 나오기 전에 두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아이다 루피노의 유혹적인 모습에 다나 앤드류스가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루피노는 칵테일을 시켰고 앤드류스는 스트레이트 위스키를 시킨 것 같습니다.

루피노의 잔을 보면 소서 글래스입니다. 조지 샌더스와 마실 때의 잔은 플루트 글래스이지요. 두 잔 모두 샴페인 칵테일에 사용하는데 소서 글래스가 조금 더 미국식의 잔이라면 플루트 글래스는 유럽식 잔입니다.

앞에 말한 장소의 차이에서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잔에서도 차이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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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루피노의 유혹은 백에서 담배를 끄집어 내면서 시작됩니다. 담배곽을 빼서 테이블에 툭 던지고 앤드류스에게 불을 붙이게 하지요.

담배를 입에 문 루피노의 모습을 보십시요. 저것은 남자의 성기를 입에 문 것처럼 에로틱합니다. 

검열이 완화된 현재의 영화와 비교한다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저 시기까지만 해도 저런 표현은 관객의 성적 욕망을 자극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또 다른 유혹이 시작되지요. 아이다 루피노는 담배곽에 이어 핸드백에서 다른 물건을 꺼냅니다.

슬라이드 필름과 그것을 볼 수 있는 판독기입니다. 그녀는 판독기에 슬라이드 필름을 장착해서 보면서 만족스런 표정을 짓지요.

그걸 옆에서 바라보는 다나 앤드류스의 표정. 이 장면은 아이다 루피노가 자신의 누드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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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가 앤드류스를 유혹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앤드류스 뿐만 아니라 바텐더까지 슬라이드 필름에 관심이 있어보입니다.

한껏 달아오른 앤드류스가 '나도 좀 봐'하면서 슬라이드 필름을 낚아 채려는 순간, 판독기는 테이블 너머 바텐더 쪽에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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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관심을 슬라이더 필름에 관심을 보이고 있던 바텐더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면 판독기를 잽사게 주어서 필름의 내용을 확인하지요.

그것은 알고보니 양탄자 위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우리로 치면 백일 사진에 해당하는 아이다 루피노의 어린 시절 모습입니다.

에로틱한 분위기에서 코믹한 분위기로 넘어가는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이 씬에 보여주는 아이다 루피노의 연기가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감독인 프리츠 랑도 아이다 루피노의 연기를 극찬했지요.

이 슬라이드 씬과 검열에 대한 또다른 일화는 제가 영화 이야기 게시판에 써놓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서 읽어보십시오.


오늘도 쓸데 없이 글이 길어졌네요. 긴 글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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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Comments
26 장곡  
젊은 시절에 칵테일을 조금 마셔본 기억이 있는데 매니아가 아니어서 그런지 맛은 잘 모르겠네요.
워낙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칵테일은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이 압도하는 술이지요. 즉 분위기가 맛보다 앞서기도 합니다.
40 백마  
예전에 칵테일 몇잔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아파 두번 다시 안마셔요.. 사실 진토닉 밖에 모르고...
칵테일 종류도 워낙 많아서 다양한 종류를 맛보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주와 함께 마시는 소주 문화인 우리 문화와 안 어울릴 수도 있고요.
12 블랙헐  
케바케이지만 문화차이 말씀 공감되네요~
3 평범한영화남  
오호 이런거 전 좋아합니다.
시간들여 쓴 글인데 별 호응이 없어서... 내가 뭐할라고 이 짓을 했나하고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댓글 보고 힘이 납니다^^
13 소서러  
프리츠 랑 숙제가 밀려있어서 바로 정독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네요^^
곧장 생활계획표를 만들어봐야겠습니다. 앞서 공들여 써주신 오밀조밀한 정성글에 감사 인사 전합니다.
9 조사하면닭나와  
저는 일명 우먼킬러 칵테일 좋아라 했습니다ㅎㅎ
이거 사실 작업주지요. 도수는 높은데 달다구리해서 모르고 마시면 훅 갑니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같은 건 아이스티라고 생각하고 쪽쪽 빨면 정말 위험해요.
17 달새울음  
영화얘기 없이 칵테일 이야기만 하자면... 옛날엔 여자사람 꼬실려고 블루하와이언이나 싱가폴슬링같은 가벼운거 권하다가 오히려 제가 좋아하게 된거 같고요...
기본적으로 진이나 럼 베이스의 깔끔한 칵테일을 좋아하는거 같네요. 진토닉이나 모히토같은 건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섹스 온더 비치인데 집에서 만들면 몰라도 이걸 바에서 여자 사람 앞에서 주문하기 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나온 사제락도 제가 좋아하는 칵테일입니다. 만들기는 번거롭지만...
17 달새울음  
오히려 저는 섹스 온 더 비치는 이름때문에 여자사람 꼬실 때 오히려 자주 주문해곤 했습니다. 제가 음담패설 전문이라....ㅋㅋㅋㅋㅋ
물론 칵테일로 여자사람 꼬시는데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ㅡ,.ㅡ
26 티거  
어쩌면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장면인데 이런 설명들을 들으면
영화를 더욱 더 풍부하게 볼수있어 좋네요
감사합니다^^
재밌었다니 다행입니다. 생뚱맞은 내용이라 뻘쭘해질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S 줄리아노  
이런 이야기는 참 재미있군요!
저도 영화 포스팅 할 때 제가 좀 관심있는 장면을 길게 적어보려다 접곤 했는데
님의 글은 더욱 더 영화의 향취를 느끼게 하네요.
마누라 랑 예전 데이트 할때, 난 블랙 르시안, 그녀는 화이트 르시안
(바텐더가 전라도 사람이라 러시안 발음 불가능 ㅋ 조선족 언니들이 "여기 쏘즈 한병요!" 하는 것처럼...)
워낙 술을 좋아하고 주종을 안가리는 편이라, 럼, 진, 보드카 베이스로 다양한 칵테일을 맛보던 그때가 그립네요.
(참, 집에 페퍼민트 원액 한병이 있었는데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쓰러진 적 있었다능... ㅋㅋ)
화이트 러시안이 나오니 코엔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가 생각나네요. 거기서 제프 브리지스가 화이트 러시안을 엄청 마시지요.
이 영화 때문에 화이트 러시안을 사람들이 엄청 찾았다네요.
11 하얀나라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으로도 좋은 시도네요. 이런 식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보면 좋을 것 같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