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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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이력서

1 황정한 1 1985 0



구겨진 이력서
ㅡ 품 파는 오리



춥다, 춥다 하던 것이 헛소리가 아니다

어제 낮에 대장간에 들려, 일 동안 쟁여놓아
녹슬고 무디어진 날 벼르고 갈아 시퍼렇게 각 세운 북서풍이
늦가을의 정취를 한 점 한 점 저며 내는 철원 평야
먹이 찾아 날아든 청동 오리 다섯, 품을 판다
다섯 오리들의 화려한 이력은
한 끼 밥 앞에 구겨진 휴지처럼 볼품없다
자격증 없는 십장이 자격증 있는 기술자들을 부린다
노니 용돈 벌이라도 한다고 따라 왔지만
가장이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지 못한 속내들을 감춘다
눈치껏 하고 눈치껏 쉬는 게 품 파는 사람들의 불문율, 하지만
오늘 보고 내일 안 볼 처지가 아니기에 그러지 못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휘어도
알량한 자존심에 힘들다는 소리 안으로 삼킨다
숙소에 들어오면 약 먹은 병아리처럼 곯아떨어지고
밤마다 끈적끈적한 욱신거림이 육신을 뒤척인다
남의 돈 먹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게 있던가
저마다 말 못할 사연 한 둘은 숨기고 있는 저들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아직도 잘 나가던 그 때를 움켜쥐고 놓지 못하고 있는지
간간히 내 뱉는 아린 신음 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창문에는 날선 바람이 달려들어 얼어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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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최영석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