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막힐 때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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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막힐 때 책을 읽습니다.

15 하스미시계있고 18 789 0

출퇴근 길이 40분 이상 걸립니다.

도중에 신호를 받고 기다려야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을 내려놓고 조수석에 놓아둔 책을 펼칩니다.


올해 2월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작은 카페에 들렀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뱅쇼를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책이 있었습니다.

<정본 백석 시집>.


운이 좋았습니다.

그 길로 이미 읽었던, 한때 읽고 싶었던 시집을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말라르메의 <시집>을,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월터 휘트먼의 <풀잎>을, 엘리엇의 <황무지>를,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갈가마귀>를 읽었습니다.


요즘 내 조수석에는 박노해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가 앉아 있습니다.


차 안에서 시를 읽다보면 요령이 생깁니다.

책과 앞 차를 동시에 보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면 책을 덮고 달립니다.

내 얼굴에는 시가 묻어 있는 것 같고 입가에는 방금까지 읽고 있던 운율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출퇴근 길은 문학 여행길처럼 맘이 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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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Comments
36 GuyPearce  
애너벨 리 - 에드거 앨런 포

옛날 아주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아무 생각이 없었네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 전
바닷가 이 왕국에선
구름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렇게 명문가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천상에서도 우리의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했던 탓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 (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이 알듯)
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히 숨지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 놓지 못했네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거기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36 GuyPearce  
그 짧은 시간에 집중이 되나요~?
'시' 집이라서 가능할까요~
네. 그게 시의 장점이죠.
그리고 제 출근길은 차가 워낙 밀리는 바람에 한 신호등에서 두 번 이상의 신호가 바뀌어야 차가 빠집니다.
36 GuyPearce  
소인은 관리자가 되고서부터는 운전을 잘 안 해요... 그냥 편하게 전철에서 읽거나...
버스에서 좌석이 생기면 읽습니다. 전 나이를 먹고선 문학 쪽을 잘 안 읽어요...
거의 경제학 도서 위주로 읽는데... 그나마 최근에는 책을 좀 멀리했어요~ㅎㅎ
예전에는 '논어' 포켓판을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내용이 좀 가물가물하군요~^^
포의 단편 <리지아>, <베로니카>, <모렐라>도 '애너벨리'와 연장선에 있죠.
그리고 이 소설들은 프란시스 코폴라의 <트윅스트>와 연관성도 있습니다.
같이 보면 좋죠.
36 GuyPearce  
영화도 봤고 다 알아요...
포우는 뭐... 초딩 때부터 좋아했는데요~^^
전집도 있는데... 번역 상태가 별로 좋지 않더군요.
이번 전집이 우울과 몽상 보다는 좋죠.
36 GuyPearce  
요즘 또 새로 나왔나 보군요...
전 '우울과 몽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영문학자들이 포의 소설은 너도나도 번역하면서 그의 시 번역을 소홀했죠. 이번 일곱권짜리 전집에는 소설, 시를 망라라고 작법 강의까지 번역되었습니다. 
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은 선물이죠.
10 에이binson  

낭만을 읽어주던 분들은 하늘의 별이 되었고
메아리 같은 유튭이 마음을 달래주네요.
20 큰바구  
라디오를 듣고 잠든기억이 많이 나네요..ㅎㅎ
14 DUE  
처음엔 좀 괜찮다는 생각을 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목소리에서 좋은기분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14 Harrum  
백석 시집은 우리말의 보고 같아요.
낭랑한 낱말들을 읽다보면..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을 읽고 백석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4 Harrum  
목록에 올려놔야겠어요.
고맙습니다.
S 푸른강산하  
그저 부럽고 또한 부끄럽기도 합니다.
저 또한 자극 받아 올 가을에는 소설 한 권이라도 읽어야겠습니다.^^*
14 DUE  
책 안본지 10년은 넘은듯하네요..
예전에는 책보다가 바람부는 그늘밑에서 기분좋게 잠도 자고 그랬었는데...
1 yg7112  
차가 멈춰있을때만 본다는거같은데 그래도 운전중에는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