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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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인천상륙작전으로 상황이 역전돼서 압록강까지 쫙 밀고 올라가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서로에게 승리가 얼마나 근접해 있었는지 아찔한 순간이었고 인천상륙작전은 정말 휼륭했습니다.

각자의 이념이야 어떻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죽어간 모든 전사들은 영웅입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 때문에 지금 우리의 삶이 있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 때문에 상황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자

만주와 북한 지역에 무려 열여섯 군데나 핵폭탄을 터트리자고 강력하게 제의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말을 하고 해임됐다지만 한국전쟁이 단순한 내전이 아니었다는 걸 암시한다.


미국은 38선을 그었을 때와 비슷하게 전선이 대치상태에 있을 때

직접 개성까지 찾아가서 휴전협정을 맺었고 그 선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만약 한반도 전체가 공산권 국가가 됐다면 지금의 러시아가 바닷길이 좀 트였을까 상상해본다.

러시아의 바닷길은 미국이 다 막았는데 흑해와 발트해를 통해서 가는 게 유일하다고 한다.

남은 바닷길마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다 뺏길 판이다.


일제시대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독립군은 안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깡패였다고 한다.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독립비용을 강요했고 거부하면 폭행과 학살을 일삼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김일성도 이런 군벌들 중 하나에 속했고 밑에서부터 활동하면서 여러곳을 전전했는데

최종적으로 운 좋게 스탈린의 눈에 띄어서 지금 북한의 세습왕조를 열었다고 한다.

중공군에게 지휘권이 넘어갔을 때 어떤 장군이 김일성을 혼내면서 뺨을 때렸다는 소문도 있다.


김일성이나 박정희나 주인없는 나라를 빼앗은 파렴치한 범죄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다행히도 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에 나온 한 인물의 영웅적인 행동 때문에 세습의 싹을 잘라냈다.

이상하게도 철권통치와 독재의 악습을 그리워하는 건 국민들이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어쩌면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흔히들 잊혀진 전쟁이라고 한다.

기억에서 잊혀진 게 아니라 다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묻어두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건 걸프전과 기형적으로 뒤틀린 역사의 람보 밖에 없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너무 과장됐다.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두 개 전선을 유지하고도 승리했다는 초강국 미국의 성과가 왜 이렇게 초라한가.


한국전쟁의 기원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이 출판되라고 북펀딩에 참여했다.

40년 전에 나왔어야 될 책이지만 전두환이 금지도서 목록에 올려서 출판이 금지됐다고 한다.

지인이 내 책을 보고 펀딩의 1.5배 되는 금액에 사가고 싶어했고 케이스가 있어서 그랬나? 그냥 팔았다.

지금은 사기도 싫고 읽기도 싫어졌다. 책을 읽는 것도 타이밍이 중요한가 보다.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 대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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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37 하늘사탕  
우리 민족에겐 정말 뼈 아푼 동족 상잔 이었습니다 그 당시 보리쌀 반되 도 안되는 량을 준다고 보도 연맹에 가입됐다. 빨갱이로 몰려 한국 전쟁때 많이 목숨을 잃었죠
저 때 우리나라 문맹률이 80% 에 솔직히 마르크스 나 볼세비키 혁명을 알기나 했겠나요?? 지금도 정말 진실은 저 너머에...............
S 푸른강산하  
“한국전쟁이 우리를(미국을) 살렸다.” - 딘 애치슨 미국 국무 장관(1949-1953)
언젠가 누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권리가 있지만 자신의 견해를 사실이라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
- 한국전쟁의 기원 1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 브루스 커밍스 [출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950년 한반도는 잿더미의 폐허였다.
남쪽 부산부터 북쪽 신의주까지 한국인은 죽은 이들을 묻고 잃은 것들에 대해 비통해 하며, 산산이 부서진 삶에서 남은 것을 끌어 모으려고 노력했다.
수도 서울에는 빈 건물들이 콘크리트와 파편이 기괴하게 섞인 포장도로를 따라 해골처럼 서 있었다.
수도 외곽의 미군 야영지에는 미군이 버린 쓰레기에서 쓸 만한 것을 주우려고 수 많은 거지가 기다렸다.
북한의 최신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다. 평양과 그 밖의 도시는 벽돌과 잿더미였고 공장은 텅 비었으며, 거대한 댐은 더 이상 물을 가둘 수 없었다.
동굴과 터널에서 두더지 같은 몰골로 나타난 사람들은 한낮의 악몽을 경험했다.
세 강대국의 군대가 한반도를 덮쳐 세계대전에 가까울 정도로 충돌하면서 핵전쟁의 불안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1953년까지 이어진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고 그저 이전 상태로 돌아갔을 뿐이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에 일어난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방 3개월 만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고, 이것이 1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농민 반란·노동운동·유격전과 38도선 일대의 전투를 유발했다-
이것은 모두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발생했다.
달리 말하면 1945년부터 시작돼 혁명과 반동의 변증법을 거치며 전개된 충돌은 국내적이고 혁명적이었다.
1950년 6월에 시작된 재래적 방식의 전쟁은 그저 다른 수단으로 이 전쟁을 지속한 것이었다.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중 [출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1 disterbed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김구 선생님이 암살 당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봐요. ㅜㅜ
2 오설록  
슬픈역사~~우리도 강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