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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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해프닝

14 막된장 16 393 10

 제가 커피를 좋아하다보니, 사무실에 작은 핸드드립 세트를 가져다 놓고

점심식사 후 한잔씩 내려먹곤 합니다.

이게 몇년 되다 보니 타부서 부장들도 가끔 와서 얻어먹고 가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제 부서 직원들한테도 퍼지면서 서로 맛있다는 원두를 이것저것 사다놓기도 하고

괜찮다는 원두티백커피도 여러종류를 서로 가져다 놓기도 하면서

각자의 커피취향을 비교하며 즐기는 조용한 커피문화가 부서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자그마한 커피머신도 하나 생겨났고, 제 부서에만 오면 늘 은은한 커피향이 풍겨

너무 좋다며 입소문이 퍼지더니 다른 몇몇 부서에도 이런 커피문화가 전파되기도 했습니다.


 점심식사 후, 습관처럼 다들 프렌차이즈 커피를 하나씩 들고 오지만

이 커피문화에 젖은 제 부서원들은, 사무실에서 여유롭게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리는 핸드드립에 비하면

그건 그저 커피색 구정물! 이라고들 합니다.

아무리 싸구려 원두라도 그라딩 수준과 핸드드립 이면 맛이 쓸만해진다고도 하는걸 보면

다들 커피맛에 어느정도 눈을 떴구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부서원들이 서로 정보교환 하며

괜찮다 하는 원두들을 포함한 커피들이 사무실에 차곡차곡 쌓여갈때면, 

저야 에헤라디여~ 이런게 순기능 아니겠능가!!  하며 그저 좋을 뿐입니다 ^^.


 몇몇 친구들은 아예 요즘 나오는 깔쌈한? 수동 그라더와 저울, 온도계까지 가져다 놓았더라고요!

물론 그렇게까지 해서 내린 커피는 확실히 다른 풍미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저는 귀찮은 마음이 우선이라 그냥 적당히 제손으로 내립니다. (나도 그걸 안해본건 아니라고!!)


 어제 점심시간에 부서원들이 커피 내려 홀짝이며 남은 시간 즐기고 있는데

옆 부서의 과장 친구 하나가 놀러 왔더군요.

커피 얻어먹어도 되겠냐 허락 얻어 커피부스에 가서 핸드드립을 하면서 쫑알쫑알 합니다.


'갈색 여과지를 쓰네?  이거 말고 흰색을 쓰는게 좋아.  갈색은 이 색소 맛이 같이 내려져서 별로데... etc etc'


 저만치서 지켜보고 있자니, 제 부서 여직원들 한테 커피강의가 한참입니다.

조금 열받더군요 ㅎㅎ.  니들 부서에 사무실 핸드드립 전파시킨게 우리거든?

그리고 뭔 절대미각이라고 "여과지 색깔과 품질에 따른 커피맛의 변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냐 시방 ㅡ ㅡ;;

같이 일한지 오래여서 서로 분위기 파악이 잘되는 터라, 제 부서 여직원들 얼굴에 살포시 짜증이 올라오는게 보입니다 ㅋ~


 커피를 작은 잔에 두개를 만들어 그리로 들고 갔습니다.


'*과장, 그럼 이거 한번 구분해봐.  하나는 흰색, 하나는 갈색 여과지로 내린거야.  

  우리 사무실에 여과지도 종류별로 많거든.  맞추면 자네보다 한참 커피 선배 내가 정한다!'


잠시 당황하더니, 옙! 하고는 신중하게 맛을 봅니다.

부장님은 커피를 좀 연하게 드시는 편이네요~ 어짜고 저짜고 하더니 하나를 선택합니다.


'*과장, 그거 둘 다 원두티백이야'


옆에서 같이 커피 홀짝이던 우리 대리가 풉~ 하고 뿜습니다^^.


'미안, 자네 놀리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고, 우리가 절대미각도 아닌데 여과지 특성까지 담긴 커피맛을 어찌 알겠어?

 우린 그저 점심시간에 본들이 직접 그라딩 하고 물 끓여 커피에 부어 내리는 그 과정이 주는 차분함을 즐기는게 더 좋은거야

 좀 더 커피에 몰입하는 과정을 즐기기엔 여기가 회사라는 비협조적 환경이 너무 크다고.

 여기서 그렇게 까지 몰입하면 되려 욕먹을걸 ㅎ'


이후로 서로 웃으며 잡담 나누다가 씨~익 웃으며 한수 배워갑니다아~ 하고 지 부서로 쫄래쫄래 가더군요 ㅎㅎㅎㅎㅎ.

제 부서 직원들이 저에게 엄지 치켜들며 킬킬 웃습니다.

무게 잡고 한마디 했습니다.


"사람은 언제 뭔일을 당할지 모르니 늘 겸손해야혀~.  어때 방금 나 제법 꼰대스럽지 않았냐?"


ㅋㅋㅋㅋㅋㅋㅋ 즐거운 저녁들 되십시오 ^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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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S 맨발여행  
"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여서 오디오 사운드가 좀 거칩니다."
이런 거군요.
31 데블  
제 입맛엔 맥심 화이트골드가 적격... ㅋ
23 zzang76  
저도 그게 제일 맛있더라구요 ㅎㅎㅎ
S 맨발여행  
제 경우엔 후각도 미각도 둔해서 커피맛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민한 분들이 부럽습니다.
뒷맛이 쓰지 않고, 바디감이 몽글몽글하고 크리미한 정도는 느낍니다.
11 disterbed  
어다 짱밖아 둔 모카포트가 어디 갔더라...

갑자기 핸드밀로 원두 곱게 내어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한잔 땡기고 싶네요.
16 블랑코  
6 천연00  
S 푸른강산하  
제 입엔 그저 맥심 골드면 만사형통입니다~
38 하늘사탕  
맥심 골드가 마시기 좋고 편안한 것은 있는 것 같습니다~

추카추카 33 Lucky Point!

S 반딧불이™  
글 잘 읽었습니다.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1 아리안나  
14 쪼으니까  
커피 한 수였군요
20 스카이다이버  
S umma55  
과유불급이라~~~^^
재밌게 읽고 갑니다.
3 유쓰띠노  
재미있는...있을 법한 아야기...ㅎㅎ
26 티거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글솜씨가 좋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