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에서 나온 천연두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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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에서 나온 천연두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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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연속성을 지닌영어로는 smallpox. 보통 부르는 천연두(天然痘)라는 명칭은 일제때 유입된 일본식 한자어이다. 두창(痘瘡),포창(疱瘡)이라고도 하며, 속칭으로는 마마(媽媽), 큰 손님[1]이라고도 한다. 마마나 손님 등의 칭호는 본래 무속에서 사용하던 용어였는데, 이는 '존경을 표해서 돌려보내야 할 것'으로 여겨질 만큼 대책 없는 병이었음을 잘 보여준다.[2]

2 증상

대표적인 증상은 전신에 나타나는 천연두 특유의 발진이 있다. 앓는 도중 고열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곰보자국이라 부르는 흉터를 남기고 열로 인한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는 꽤 악독한 질병이었다[3] 뇌에 손상을 입거나, 눈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주기적으로 대유행을 되풀이하여 많은 사망자를 냈으나, 17세기 이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창시한 종두법이 보급되고부터 격감하였다. 제너는 의 젖을 짜면서 우두에 걸렸던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것에 착안하여 백신을 개발하였다. 단, 초기의 종두는 우두에 걸린 소의 고름을 이용해 우두 바이러스를 사람의 몸에 전염시켜 면역력을 유발하는 원시적인 것이었다.

3 피해 사례

한국에는 남북국시대나 그 이전에 들어온 것이 유력해 보이며, 처용가에 나오는 '역신'이 천연두와 관련 있다는 설도 있다. 그 위력이 상당했는지, 민간에서는 천연두를 '손님' 등의 존칭으로 부르며 '배송굿'을 벌여 천연두 귀신'님'이 얼른 나가기를 빌었을 정도. 옛날 비디오에 따르면 호환이나 전쟁만큼 무서웠다 카더라
1790년대 박지원정약용 등이 협력하여 지은 '마과회통'에 제너식 종두법이 있는 것이 보여 조선 후기 예방법의 존재 자체는 알았던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지식은 실제 인명 구제에 제대로 동원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예방 접종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 이후로, 수신사 김홍집을 수행하여 일본에 간 지석영이 1885년 '우두신설'을 지었으며 광제원에서 본격적인 접종이 시작되었다.[4]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에는 4만여 명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으나, 1960년 3명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한 이후로 천연두가 사라졌다. 1978년 8월, 영국 버밍엄의 실험실 사고 이후 더 이상의 천연두 희생자는 나오고 있지 않다. 자연 감염으로 인한 마지막 희생자는 1977년 10월 천연두가 유행하였던 소말리아 메르카시(市)의 어느 병원요리사였다.

한편 만주족들은 원래 천연두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라 초기에 많은 사망자가 나왔었다. 황제인 순치제나 숙부인 예친왕 도도조차도 천연두로 사망할 정도. 심지어 누르하치의 두 손자도 명나라를 공격하던 도중 천연두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순치제의 여러 아들 중 후계자 물망에 오른 사람은 복전과 현엽이었는데, 당시 중국에 체류하던 예수회 선교사 아담샬에게 천연두 내성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물어 천연두에 걸렸다가 목숨을 건져 내성이 있었던 현엽이[5] 후계자로 결정되었고 이 사람이 바로 곰보 황제 강희제이다. 강희제는 천연두를 막기 위해 전문 기관을 설치하고 여러 가지 연구를 하게 하였는데 이때 발명된 것이 종두법 중에서 인두법이다.[6] 인두법과 천연두 검사법은 러시아와 터키를 거쳐 영국까지 전해져 120여년뒤 제너가 우두법을 발명할때까지 주된 예방법이 된다.

일본에도 700년대부터 창궐하기 시작해 민심이 흉흉해지는데 일조했다. 심지어는 귀족인 후지와라씨는 한때 권좌에 있던 4형제가 천연두에 몰살당해 권력 구조가 바뀌었을 정도. 이후에도 일본 고대에서 천연두는 무척이나 무서운 질병 중 하나였으며, 덴노는 이를 물리치기 위한 의식을 자주 치렀는데 이러한 의식의 확대가 덴노의 제사장 이미지를 키워 정치에서 격리되는데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4 박멸과 그 이후

1950 ~ 60년대까지도 인도·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을 중심으로 수백만명씩 죽어나갈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이었으나,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천연두 근절 계획을 추진해 나간 결과, 1980년 공식적으로 천연두 근절 선언이 발표되었다. 천연두 근절 선언 이후, 한국에서도 더 이상 천연두 예방 접종을 권장하지 않게 되었고, 1993년부터는 천연두 예방 접종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전염병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예방 접종이 사라진 이후의 세대들은 이에 대한 면역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에서의 실험실 사고 이후 천연두 바이러스 관리는 더욱 엄중해져, 미국 애틀란타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제외한 연구소의 천연두 바이러스는 모두 폐기 되었다.[7] 천연두 바이러스 폐기 논쟁은 지속 중으로, 연구용으로 남기자는 축과, 유출되어 약용될 수 있으니 폐기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탄저균 테러 사건 이후, 예방 접종이 끊긴 천연두는 세균병기로 재주목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은 천연두 백신을 재생산하는 등, 천연두의 재창궐을 막기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도 지난 01년 천연두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였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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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대적으로 가벼운 홍역, 수두 등은 작은 손님이라고 한다.
[2] 무속에서 천연두는 '마마신', 즉 아예 신 취급을 받는다. 마마신께서 일단 들어오시면 (=천연두에 걸리면) 그저 굽신굽신 비위맞춰서 곱게 나가시기만을 빌 수밖에 없었다. 마마신 비위를 맞추기 위해 환자가 있는 집안은 제사도 못 지냈다고 한다. 다른 귀신 들어오는 걸 매우 싫어하시는 질투 많은 마마신이기 때문;
[3] 천연두를 앓고나서 얼굴에 흉터가 남은것을 얼굴이 '얽었다'고 표현했고 이러한 사람을 곰보, 얼금뱅이라고 불렀다. 일본어인 소보루 そぼろ,또는 소보로 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곰보빵이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
[4] 하지만 당시 외국 문명에 반감이 많았던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우두를 맞으면 소처럼 둔해진다' '왜놈들이 우리들에게 우두를 맞혀서 부려먹으려고 한다' 등의 소문이 돌아서 접종에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885년 전후로 워낙 굵직한 일들이 많아서 더 어려웠다고...
[5] 물론 그전에도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긴 하다.
[6] '인두법'은 말 그대로 인간 천연두균을 인간에게 약하게 감염시켜 면역력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주로 천연두에 걸렸던 사람의 의복을 입거나 또는 그 고름을 신체 부위에 접종하는 식. 하지만 당시 전근대적인 의학수준 하에서는 절차도 까다로웠고, 그조차도 삐끗하면 되려 멀쩡한 사람을 골로 가게 할 수 있을 뿐더러 심하면 병을 더 퍼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7] 1999년, 세계 보건 기구는 미국과 러시아에 천연두 바이러스의 폐기를 권고 하였으나, 결국 폐기하지 않았다.
[8] 중요한 것은 백신의 확보인데, 물량이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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