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를 읽고
밤늦게까지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자서 일요일 아침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아직 남아있는 잠을 떨치려고 홍차를 뜨거운 물에 우렸다.
(겨울 아침에 마시는 '해러즈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넘버14'는 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추!).
블랙티에 어울리는 소설을 찾다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고른다.
'애러비'는 이 책 세 번째에 실린 단편으로 '아라비아'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편 중에서도 비교적 짧은 것이어서 차 한잔을 마시기도 전에 후딱 읽고 세 번을 더 읽었다.
두 번째부터는 집에 있는 다른 번역본을 찾아서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는 부산을 떨었다.
처음에 나는 이 소설이 그냥 실패한 연애에 대한 추억담으로만 알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친구의 누나를 짝사랑하는 소년이 '애러비' 바자회에 가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바자회를 가려한다.
소년은 친구 누나에게 적당한 선물을 살 예정이다.
하지만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바자회가 끝날 무렵에 도착하고 아무것도 사지못한 그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분노와 고통을 느낀다.
소설의 첫부분에 소년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제가 집 안의 거실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지나가듯이 나오는데 그것은 앞으로 닥칠 소년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소년은 자신의 거실 문앞에 누워서 앞 집에 사는 친구 누나의 모습을 훔쳐보고 그녀가 집을 나서면 따라 나선다.
늦은 밤 동네에서 놀다가 친구 누나가 친구를 부르면 집 앞까지 따라가서 그녀의 모습을 훓어본다.
소년의 앞에는 늘 문이 가로막고 있다.
친구 누나의 부탁을 받고 늦은 시간 바자회에 도착하지만 대부분의 가게는 문이 닫혀있고 열려 있는 가게 앞에는 '그릇들이 동방의 파수꾼처럼 서있다'.
소년은 결국 동방, 즉 에로틱하고 낭만적인 그 세계(애러비)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는 거실에서 고독하게 죽은 사제처럼 살아갈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은 열다섯편의 이야기를 아동기, 청년기, 성년기, 공공생활기로 나누어 배열한 작품집이다.
'애러비'는 그중 아동기에 해당하는 단편으로 단편 소설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독을 권한다.
<율리시스>는 완독을 했는데 조이스의 유작인 <피네간의 경야>는 몇번 도전을 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제 결론은 현재 국내 번역본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책입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도 읽기가 쉽지 않지요. 저는 차라리 이 책보다 <8월의 빛>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난해한 작가들의 작품은 저음부터 어려운 것을 고르지말고 단편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죠.
조이스의 경우에는 <구름 한점>, 포크너의 경우에는 <에밀리에게 장미를> 같은 작품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지요.
오역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거는 번역한 사람 혼자만 알 수 있는 암호같은 번역이 많더군요.
결국 제가 선택한게 동서문화사판입니다. 동서문화사 책이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중역본이라기 보다 영서, 일서 대조본도 많습니다. 적어도 이 번역본이라면 읽을 수는 있습니다.
조이스의 초기 저작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데 더블린 사람들은 창비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민음사본이 지금까지 번역중에 제일 낫더군요.
더 좋은 번역본이 나오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