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이야기
2010년 11월 11일자 글이라 좀 오래되긴 했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는 글!
네이버 매거진에서 퍼왔어요
영화 스포도 있으니 관심있는 분만 읽으시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8번째 장편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음울한 톤이 지배하던 그의 지난 세기 영화들과 비교하면, 한참 동떨어져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쿨한 스타일과 흥미로운 캐릭터라는 점에서 핀처는 여전하며, 그의 영화 세계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서른 살에 [에이리언 3]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우리에게 독창적인 영화들로 충격과 쾌감을 안겨주었던 데이비드 핀처. 그의 삶과 영화를 살펴본다.
글 l 김형석 구성 | 네이버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
새로운 세대의 비주얼리스트
세기말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감독 중에서, 데이비드 핀처는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특수효과 스태프와 CF 감독과 뮤직비디오 감독을 거쳐 영화계로 진입한 그의 영상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새로운 비주얼의 시대를 열었다.
핀처의 세계는 어둡고 음울했다. 만약에 'Fincheresque'(핀처스러운)이라는 단어가 허락된다면 아마도 이런 뜻을 지닐 것이다. "빛과 색이 절제된, 그러면서도 쿨한 느낌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형용사. 넓은 의미로는 인간 내면, 도시 혹은 현대 사회의 속성 중 한 측면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MTV 세대들에겐 일상적인 단어로서, 수많은 CF나 뮤직비디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핀처는 외로운 소년이었지만 예술적 감각은 남달랐다. 방에 처박혀 몇 시간씩 만화책을 베꼈고, 상상의 세계에서 본 이미지들을 그림으로 그리려 노력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드로잉을 포기한 핀처의 관심사는 회화로, 조각으로, 사진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도착한 지점이 바로 영화인데, 그가 영화감독이 된 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미지를 가장 리얼하게 '번역'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핀처는 여덟 살 때 텔레비전에서 [내일을 향해 쏴라](1969)에 대한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영화에 대해 흥미를 가진 계기였다고 회고한다. 가짜 총을 쏘고 특수효과로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면서 그는 영화가 "멋있는 일"이라고 느꼈고, [내일을 향해 쏴라]를 200번 이상 봤으며, 이 시기부터 8mm 카메라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마린 카운티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어느 날 핀처의 집 건너편에 조지 루카스가 이사를 온다. 길 건너에 살며 아침마다 가운 차림으로 신문을 가지러 나오는 사람이 이른바 '할리우드 빅 무비'를 만든다는 사실은, 핀처에게 영화라는 것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핀처는 이때부터 영화감독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보다는 일상적인 느낌을 가졌고, 영화광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히치콕의 [이창](1954)을 비롯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무방비 도시](1945) 등 다양한 영화를 만났고, [재즈는 나의 인생](1979)은 100번 이상 보았다고 한다.
핀처는 틴에이저 시절을 보낸 오레곤의 애쉬랜드 시절을 매우 끔찍하게 기억한다. "그 X같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잠만 잤다"며 당시를 떠올리는 그는, 방과후에 살아 있는 학생이었다. 연극반과 사진반과 회화반을 오가던 핀처는 평일 밤엔 극장 영사실에서, 주말엔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조지 루카스가 다녔던 USC 영화과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몇 만 달러의 등록금을 내고 만든 영화의 판권을 학교가 소유한다는 게 정말 어이없었다. "나는 영화를 만들며 겪는 온갖 쓰레기 같은 일들을 모두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내 돈을 들여 대학의 재산을 늘려주는 일은 원하지 않는다."그는 학교 대신 현장으로 간다.
특수효과 스태프에서 CF를 거쳐 뮤직비디오로
18세 때 작은 영화사에서 카메라에 필름 장전하는 일부터 시작한 그는 1981년에 '앞 집 아저씨'였던조지 루카스의 ILM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핀처가 특수효과 스태프로 참여한 영화는 [스타 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1983) [인디아나 존스](1984) [네버엔딩 스토리](1984) 등. [제다이의 귀환]에선 미니어처 제작과 특수 촬영 일을 했고, [인디아나 존스]와 [네버 엔딩 스토리]에선 매트 촬영 파트였다.
데이비드 핀처는 존 코티(좌)의 프로덕션에서 특수효과와 촬영 일을 배우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핀처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일상적 영웅’이었던 조지 루카스(우)의 ILM에 들어간다.
그에게 ILM의 만화 같은 판타지 영화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스타 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이 "똥을 빨대로 빠는 것만큼이나 역겨운 영화"라고 생각했고, 2년 만에 ILM을 나와 1983년에 CF 프로덕션과 계약한다. 이곳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첫 CF는 미국 암 연구 협회의 금연 캠페인 광고. 뱃속의 태아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미지로 충격을 던졌고, 이후 상상력과 테크닉이 결합된 핀처의 CF는 광고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1987년엔 자신의 프로덕션인 '프로퍼갠더'를 세워(마이클 베이, 안톤 후쿠아, 스파이크 존스 등이 이곳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나이키, 코카콜라,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펩시, 리바이스, 샤넬 등의 CF를 만들었다.
핀처는 CF에 이어 1989년부터 뮤직비디오 업계에서도 정상의 자리에 선다. 특히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각광받았는데,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를 인용한 표현주의적 영상의 'Express Yourself'나 [시민 케인](1941)을 가져온 'Oh! Father'의 뮤직비디오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1990년 MTV 뮤직 어워드에선 뮤직비디오 작품상 후보 네 편 중 세 편을 핀처가 만들었을 정도였다(마돈나의 'Vogue' 뮤직비디오가 수상했다). 마돈나를 비롯 조지 마이클, 에어로스미스, 폴라 압둘, 스팅, 롤링스톤즈, 마이클 잭슨, 이기 팝 등 수많은 톱 뮤지션의 뮤직비디오가 핀처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할리우드는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에이리언] 시리즈의 세 번째 감독으로 그를 선택한다.
세기말의 비주얼리스트
[에이리언 3](1992) 프로젝트에 돌입했을 때 핀처의 나이는 27세. 리들리 스코트, 레니 할린, 빈센트 워드 등을 거쳐 핀처에게 온 [에이리언 3]는 최종 예산 6,500만 달러의 대규모 영화였다. 20세기폭스는 끊임없이 프로덕션에 간여했고 촬영횟수를 줄여나가려 했다. 최종 편집권 또한 당연히(!) 빼앗긴 핀처는 "그것은 대량 학살과도 같은 작업"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데, 데뷔작 이후 그는 메이저 스튜디오를 "감독의 창조성에 대한 경멸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바짝 독이 올라 이렇게 말한다. "감독이 되는 데 있어서 호전성은 꽤 도움이 된다. 편집증은 필수적이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다소 심한 욕구도 있어야 한다."
[에이리언 3](좌)에서 리플리는 에일리언을 임신한 채 용광로로 뛰어든다. 모성의 거부. 혹은 핀처의 '죽음의 이미지'의 시작. [세븐](우)에서 볼 수 있는 핀처 특유의 조명. 두 줄기의 빛만이 두 사람의 존재를 알려준다.
[에이리언 3]의 실패로 다시 뮤직비디오 현장으로 돌아가야 했던 핀처는 3년 만에 돌아온다. 두 번째 영화 [세븐](1995)은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었고, 핀처는 곧 할리우드의 '핫 디렉터'로 떠오른다. 그는 제작사와 결말 부분을 놓고 끝까지 싸웠는데, "결말을 바꾸면 촬영하지 않겠다"는 브래드 피트의 도움으로 엔딩을 지킬 수 있었다.
핀처는 [세븐] 현장에, 과거 나이키 CF를 만들 때 만났던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불러들였다. '조디악 킬러'의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12년 후 핀처는 [조디악](2007)을 만든다) [세븐]은 느와르와 MTV 스타일이 결합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비주얼 무비. 콘지는 "핀처는 [블레이드 러너]를 찍을 때의 리들리 스코트와 같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촬영감독 못지않게 비주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지닌 감독의 주도 면밀한 스타일에 대한 코멘트였다.
[더 게임](1997)은 동생 콘래드(숀 펜)의 선물(?)로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는 주인공 니콜라스(마이클 더글러스)의 이야기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던 음모이론 영화처럼 보이지만, 오로지 '유희로서의 게임'을 즐기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두드러지며, 개봉 당시엔 큰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컬트로 추앙 받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엔 형제가 아닌 남매의 이야기로 기획되었고, 숀 펜 대신 조디 포스터가 마이클 더글러스의 동생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포스터는 [세븐]을 본 후 핀처와 작업하길 희망했고 [더 게임]을 통해 의외로 그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제작사 폴리그램의 압력으로 동생의 성별이 바뀌었고, 포스터는 폴리그램에 1,45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았고, 5년 후 포스터는 [패닉 룸](2002)에서 핀처와 드디어 만난다.
세기말의 끝에 내놓은 [파이트 클럽](1999)로 인해 핀처는 화제 집중의 대상이 된다. 그의 데뷔작을 '망쳐'(!) 놓았던 20세기폭스와 다시 만나게 된 핀처는 "나는 이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영화사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어느 정도는 논란이 예상되었던 영화다. 어떻게 보면 세기말 혹은 21세기의 '새로운 실존주의'인 이 영화에서 핀처는 '구원 없는 세상'이라는 그의 테마를 다시 한 번 확립한다.
상품 이미지 사이를 걷는 [파이트 클럽]의 에드워드 노튼(좌). [파이트 클럽]에서 타일러(브래드 피트)는 부자들이 흡입 수술 후 버린 지방으로 비누를 만든다(우). 안티-자본주의적 사고의 극단.
데이비드 핀처의 21세기
원래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3부작을 시작하면서 그 중 한 편을 데이비드 핀처에게 맡기려 했다([쇼생크 탈출](1994)의 프랭크 대러본트 감독도 한 편의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다). 이 사실은 언론에 발표까지 되었지만, 결국 핀처는 참여하지 못했고 대신 [스파이더맨](2002)와 [스퀴드] 그리고 [패닉 룸](2002) 프로젝트를 동시에 제안 받는다.
핀처가 원했던 주인공 멕 역의 이미지는, 강한 모성 본능이 있으면서도 창백한 느낌을 지닌 배우였다. 니콜 키드먼이 딱이었고, 키드먼도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물랑루즈](2001) 촬영이 끝나는 대로 합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키드먼은 [물랑루즈]를 촬영하면서 발목 부상을 입었고 결국은 중도 하차했다. 2안은 조디 포스터였다. 하지만 당시 포스터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고심하던 포스터는 칸영화제를 포기하고 [패닉 룸]에 합류했다.
하지만 촬영 기간 동안 포스터는 임신한 상태였다. 핀처는 스케줄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촬영 막바지엔 부른 배를 감추기 위해 포스터에게 스웨터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핀처는 특유의 완벽주의를 버리지 않았고, 결국 출산 전까지 촬영을 마치지 못해 포스터는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패닉 룸]에서 핀처는 컴퓨터그래픽를 결합해 '어디든지 가는 카메라'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적들이 침입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2분 10초의 롱테이크 장면에서 카메라는 커피메이커 유지 주전자의 손잡이마저 통과한다(좌). [파이트 클럽]의 오프닝 크레디트(우). 컴퓨터그래픽과 결합된 카메라는 에드워드 노튼의 두피를 현미경으로 본 듯한 비주얼에서 콧등을 타고 빠져나와 노튼을 겨누고 있는 총으로 이어진다. 한 편의 강렬한 CF를 보는 듯하다.
5년의 꽤 긴 시간 동안 준비한 후 핀처는 [조디악](2007)을 내놓았다. 히피 시대의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인 [조디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하지만 이 영화는 살인마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그 사건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궁 속의 사건은 그들을 계속 내몰고, 끝내 잡지 못하는 범인은 그들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핀처는 이 영화를 [세븐]보다 더 절망적인 톤으로 만들려고 했다. 영구 미제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경험했던 감정의 실체에 접근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배우들은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냉정한 톤으로 연기하며, 핀처는 살인 장면조차 지나칠 정도로 건조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이하 [벤자민 버튼]은 다소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핀처가 꽤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어쩌면 그의 데뷔작이 될 수도 있었던 영화다. 1922년에 출간된 F.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은 1987년에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판권을 확보한 후 스크린으로 옮겨지기까지 21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은 꽤 구구절절하다. 1987년에 제안을 받았던 사람은 [인 앤 아웃](1997) [스텝포드 와이프](2004) 등으로 유명한 프랭크 오즈 감독. 1989년에 시나리오 작가 로빈 스와이코드가 합류해 다음 해 초고를 내놓을 즈음엔, 이미 오즈는 사의를 표명했다. 이때 스필버그가 톰 크루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뛰어들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아그네츠카 홀랜드, 론 하워드, 스파이크 존스 등도 잠시 발을 담갔다가 뺐다. 스와이코드는 10년 동안 7고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쓴 상태였다.
1991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지만 고사했던 핀처 감독은 2004년에 다시 제안을 받고 마음을 움직였다. 여기엔 2002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사랑과 죽음의 테마가 좀 더 깊게 다가왔던 것. 절친인 브래드 피트가 시간을 거스르는 남자 벤자민 버튼 역을 맡았고,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하며 1억2,751만 달러의 북미 지역 수익을 거둔 이 영화는 지금까지 핀처의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2010년, 그는 페이스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실화 소설 [소셜 네트워크](원제는 '우연한 억만장자'(Accidental Billionaires))를 영화화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영화로 옮길 때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고 건조하며 지나치게 심각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지만, 핀처의 장인적 솜씨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며 스피디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신인급 배우들을 모아 놀라운 앙상블의 영화를 만들어낸 것도 핀처의 힘. 그는 이 영화에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엔 페이스북이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의 관계가 단절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핀처는 디테일에 강박적인 모습을 보인다. [패닉 룸]에서 당뇨병이 있는 딸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주사약이 들어있는 구급 키트를 패닉 룸 문이 닫힐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던져 넣는 장면에서 핀처는 "구급 키트가 문에 살짝 부딪힌 다음에 패닉 룸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주문이 완벽하게 구현될 때까지 NG 사인을 냈다. 결국 107번 만에 성공했다(좌). [소셜 네트워크]의 쌍둥이 형제는 마땅한 캐스팅을 하지 못해 1인 2역을 컴퓨터그래픽 합성을 통해 완성했다(우).
한편 8편의 영화를 만든 데이비드 핀처는, 그만큼의 영화 연출 제의를 거절했는데 [진실 혹은 대담](1991) [8미리](1999) [미션 임파서블 2](2000) [스파이더맨](2002) [컨페션](2002)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배트맨 비긴즈](2005) [블랙 달리아](2006) 등이 그 영화들이다.
X세대의 문제 의식, MTV 세대의 스타일
핀처가 첫 영화 [에이리언 3]을 만든 후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티븐 소더버그. "나는 당신이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보았다"며 소더버그는 핀처를 격려한다.
이 사소한 에피소드는 '세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꽤 커다란 사건이다. 소더버그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내놓은 1989년, 할리우드는 [배트맨](1989)으로 블록버스터에 우울한 송가를 보내고 있었다. [죠스](1975)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1977)로 시작된 액션 중심적 블록버스터의 상상력은 이미 끝나버렸고, 미국영화는 프랜시스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의 '영화 악동들'(movie brats) 이후 새로운 영화 세대를 맞이해야 했다. 이때 1961~1971년에 태어난, 이른바 'X세대'가 등장했고 그 선봉장이 바로 소더버그였다.
대중문화에 푹 잠겨 살았으며 아이러니, 무관심, 박탈감 같은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청춘 문화를 만들어낸 그들에겐, 사실 '세대'라는 단어에 전제되어 있는 '유대감'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펄프 픽션](1994) [유주얼 서스펙트](1995) [아메리칸 뷰티](1999) [식스 센스](1999)를 아우를 수 있는 화두가 있다면 그건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이다. 핀처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파이트 클럽] 같은 무정부주의를 선택했고, 스파이크 존스는 [존 말코비치 되기](1999) 같은 초현실주의로 나아갔다. 그리고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1999)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모두 환상이라고 이야기하며, 자신만의 이미지로 세상을 다시 만든다.
197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 세대가 리얼리즘을 중시했다면, 1990년대 그들의 방법론은 픽션과 판타지였다. 뉴스(리얼리티)와 엔터테인먼트(픽션)가 뒤엉킨 이른바 ‘인포테인먼트’의 시대. MTV 세대가 등장했으며 이미 [플래시댄스](1983) [탑 건](1986) 같은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들이 나온 상황에서,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핀처의 할리우드 진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핀처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조금씩 할리우드를 바꾸어나갔다.
하지만 핀처의 영화에 어떤 스타일만 살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매우 꼼꼼히 영화로 반영한다. [에이리언 3]엔 1980년대에 핀처에게 영향을 주었던 두 요소가 발견된다. 죄수들의 노동 교도소로 상징되는 빈부 격차와 노동자의 소외, 그리고 에이즈. [파이트 클럽]에서 리얼리티와 판타지와 망상이 뒤섞인 상황 또한 X세대 감독들의 유전자이며, 소비 문화에 대해 이 영화처럼 과격하게 발언한 영화는 없었다.
[세븐]은 현대 사회의, 특히 도시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조디악]에선, 자신의 유년기를 장악했던 '살인의 추억'을 다시 돌아본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공황 상태를 [패닉 룸]로 보여주었다면, [조디악]은 전쟁으로 얼룩진 부시 시대의 학살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일 것이다.
개인과 사회, 퍼즐과 법칙
핀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하지만 비관적인 톤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공간 안에 있는 개인을 보여줄 때, 그의 비주얼이 그토록 어둡고 침울한 것은 그런 이유다. 마치 그 공간은 개인을 잡아먹을 것만 같으며, 개인을 어떤 퍼스널리티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익명적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세븐]의 서머셋의 아파트(좌). 캐릭터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실루엣 효과를 즐기는 핀처의 영화에서, 개인은 공간(환경 혹은 사회)에 의해 잠식 당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사무실 공간(우).
여기서 핀처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은 도시다. 그는 도시에 매혹되어 있으며 동시에 혐오감을 느낀다. 그는 [세븐]에서 도시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데(그러기에 그 도시는 미국의 어떤 도시라도 될 수 있다), 데이비드(브래드 피트)의 아내인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는 서머셋(모건 프리먼)에게 이 도시는 어떤 도시냐고 묻는다. 서머셋은 대답한다. "삭막한 도시죠." 그러면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트레이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는 불행해질 겁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에 대한 비관주의. 핀처에게 있어 도시는 인간성의 파괴자이며, 그곳에서 가족은 붕괴된다. 안전을 위한 공간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패닉 룸]의 상황은, 핀처에겐 전혀 아이러니가 아니다.
핀처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구조물들 혹은 밀실 같은 공간들은 모두 개인을 억압한다. [더 게임]의 대저택, [파이트 클럽]의 어두컴컴한 집, [패닉 룸]의 밀실, [조디악]의 사무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법적 공방이 이뤄지는 곳…. 그 안에서 개인들은 저항하고 갈등하지만, 모두 그 안에 갇혀 있다.
여기서 핀처 영화의 반복되는 모티브는 법칙 혹은 퍼즐이다. 핀처의 영화엔 반드시 따라야 하거나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 있다. [세븐]에서 연쇄살인은 '일곱 가지 악덕'이라는 법칙 속에서 일어난다. [더 게임]은 인생 자체를 건 퍼즐에 대한 영화다. '파이트 클럽'엔 멤버들이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조디악]의 살인자는 암호라는 퍼즐을 즐긴다. [벤자민 버튼]은 갈수록 젊어지는 운명의 법칙 속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소셜 네트워크]에선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린다.
이러한 법칙들은 개인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선다. 데이비드와 서머셋은 살인의 법칙을 알게 되지만 막지 못하며, 데이비드는 존 도우(케빈 스페이시)에 위해 아예 법칙을 완성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더 게임]의 니콜라스는 동생 콘래드가 제안한 게임에 의해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파이트 클럽’의 그들은 만신창이가 되며, [벤자민 버튼]의 벤자민은 아기가 되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의 주인공 마크(제시 아이젠버그)는 판결에 따라야 한다.
쿨한 스타일과 니힐리즘
핀처의 영화엔 '스타일리스트 핀처'와 '니힐리스트 핀처' 사이의, 화해하기 힘든 긴장감이 있다. "나에겐 당신이 상상도 못할 악마성이 있다"고 말하는 핀처의 영화에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는 중요한 정서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는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에 생겨나는데, 그의 캐릭터들은 함정에 빠진 듯하며 뭐라고 딱히 말하기 힘든 분노를 지니고 있다.
블록버스터 스펙터클의 산실이었던 ILM에서 영화를 시작했고, CF와 뮤직비디오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핀처에겐 분명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나는 완벽한 안티-상업주의자다. 나는 그 상품이 최고라는 식의 CF를 절대로 찍지 않았다. 나의 모든 CF는 뭔가를 추론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리바이스 CF는 청바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고, 나이키 CF는 운동화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이 상품을 사면 당신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식의 메시지는 넌센스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미지에 집착하고, '쿨'한 느낌의 사물에 대해 심취된다. 이것은 허무주의가 찾은 탐미주의적인 출구인 셈이다. 그의 작업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이 지닌 '이미지'에 대한 작업인 셈이며, 그 이미지가 주는 효과에 대한 작업이다. "나는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어야 하는지는 모른다. 나에게 중요한 건 영화가 관객들에게 남기는 '상처'다. 내가 [죠스]를 좋아하는 건, 그 영화를 본 후 나는 다시는 바다로 수영하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허무주의는 종종 죽음으로 향한다. [에이리언 3]에서 리플리는 자신의 몸 속에서 자라는 괴물을 죽이기 위해 용광로에 몸을 던지고, [더 게임]에서 니콜라스는 자신이 동생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건물에서 뛰어내린다(물론 밑에는 에어백이 있었지만). 그리고 자살이든 타살이든, '순교적 죽음'은 핀처의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다. [세븐]에서 트레이시의 죽음은 데이비드로 하여금 존 도우를 죽이게 만들고, [파이트 클럽]에서 사랑하는 동료의 죽음은 새로운 수준의 폭력적 무정부주의 상태를 창조한다. 그런 면에서 연쇄살인극 [조디악]은, 핀처에겐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을지도 모르며, [벤자민 버튼]은 사랑과 죽음에 대한 핀처 스타일의 로맨스다.
그렇다면 최근의 데이비드 핀처는, 쿨한 느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종종 허무주의적인 부분도 눈에 뜨이지만, 예전에 비해 좀 더 안정적인 세계관을 지닌 듯 보인다. 그 극적 변화는 [벤자민 버튼]부터 였고(브래드 피트는 "평소의 피트를 생각하면 그가 이 영화의 연출을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소셜 네트워크]도 어떤 균형을 속에서 전개된다. 여기서 가장 크게 바뀐 건 그 결말이다. 자기 파괴적인 죽음이나,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는 허망함 대신, 최근 그의 영화에선 쿨하면서도 관객을 좀 더 배려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일시적인 변화일까? 아니면 그는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 걸까. 내년에 [용 문신을 한 소녀]로 다시 스릴러 장르로 귀환하는 핀처를 만나 보면, 좀 더 확실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