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내가 읽고 정신줄을 놓은 책
올 해도 영화를 많이 봤지만 이래저래 책도 많이 본 한 해였습니다. 올 해의 독서 경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의 영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쓴 <존 포드론>입니다.
작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나오자마자 사두었다가 올 해 곱씹으며 여러 번 읽었던 책이네요.
하스미 시게히코가 본래 불문학자여서 문학론으로는 <보바리 부인론>이라는 엄청난 두께의 책을 이미 완성하였고 영화 쪽으로도 <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이미 상재한 바 있습니다. <존 포드론>은 그의 수많은 저서 중 40년만에 쓰여진 두 번째 감독론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장 르누아르(영화)와 버지니아 울프(문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으나 저자의 나이로 볼 때 제대로 된 평론집은 이 <존 포드론>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랬던 것 중 하나는 일단 접근 방식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보통 영화에 대해서 말을 할 떼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영화가 의미하는 방법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 비평은 소위 말하는 표층 비평, 스크린에서 시각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쇼트를 통해 영화를 종횡무진으로 읽어갑니다.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과 순간 포착 능력, 관습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사고를 무기로 영화의 세계로 이끌고 가는 그의 글은 찬탄을 낳게 합니다. 어떻게보면 낯설고도 두려운 접근 방법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수긍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3장까지 각 장의 제목이 1장 <말 등(의 동물)>, 2장 <나무(와 숲)>, 3장 <그리고 인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장에서는 존 포드 영화에서 나온 말을 비롯한 동물을 통해서 그의 영화의 특색을 찾아냅니다. 2장에서는 나무로, 3장에 가서야 인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정말 독특한 구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언급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존 포드의)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다 지워버리는 것, 아니 기존의 사고 체계를 폐허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그 폐허 위에 존 포드를 새롭게 쓰게 만드는 것이 하스미 시게히코의 전략인 것입니다.
올 초부터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이 된다는 소식은 건너서 듣고 있었지만 불황에 빠진 출판계의 사정 때문인지 출간 소식이 들리지 않네요. 그냥 제가 시간나는 대로 요약본 or 긴 감상문을 써볼까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암튼 빠른 시일에 서점에서 한국어로 된 이 책을 봤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