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1967> 김수용
실례가 안된다면, 거의 이마무라 쇼헤이나 신도 가네토를 연상시키는, 김수용 감독의 60년대 수작입니다. 토속적이면서 가난한 여인들, 그러면서도
대범한 욕망들이, 대낮이든 한밤이든 강렬한 조명의 콘트라스들, 대나무 숲을 뛰어다니는 카메라가 숨막히게 전개됩니다. 더구나 교묘하게 전환되는
시점의 전환과 외화면의 사용, 거리두기의 노골적인 침범, 와이드 앵글의 강렬한 투샷, 특히나 두 여주인공과 함께하는 대나무 숲의 장면들의 리듬감은
정말이지 매우 뛰어납니다.
전쟁영화임에도 군인은 맨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만 나오는데,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기보다는, 전쟁의 이면을 억압된 성을 통해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비판합니다. 모든 장면은 대나무 숲 위에서 전개되고, 그 대나무 숲은 여인들의 경제적 무대이자, 성적 욕망의 무대인데, 영화 초반의 빨치산은 그곳에서
식량을 징발하고, 결말에서 국군은 불을 지릅니다.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재로 만들어 버리는 이념전쟁, 이는 시공간을 지금으로 바꿔도 여전히 유효한거
같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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