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근한 사랑 그리고 빗속을 유영하는 카메라 aka. The Catch

영화이야기

뻐근한 사랑 그리고 빗속을 유영하는 카메라 <魚影の群れ, 1983> aka. The C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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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



6분여의 길이의, 6개의 롱테이크 쇼트로 보여주는 빗속의 추격씬은, 과연 시네마 매직이라 할만하다. 마치 마구로를 쫓듯, 사내는 20년전

집 나간 아내를 쫓는다. 미움과 미안함,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냉정함의 온갖 감정들이 비정하게 내리는 소낙비 아래, 숨가쁘게 헐떡이는

마구로의 아가미처럼 소마이 신지의 카메라가 헐떡이며 둘을 쫓는다.

이 장면이 서사적으로도 위대한 이유는, 사내와 녀자가 만나야하는 만날 수 밖에 없는 내러티브의 정합성, 필연성을 개무시한다는데 있다.

둘이 만나는 데에, 어떠한 복선도, 어떤 서사적 정보도 필요 없다. 관심없다. 오후인지 오전인지 그것도 상관이 없고, 이유가 있다면

그날 마침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매직이란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시네마적 실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첫 쇼트, 료칸 3층에서 식사를 하던 사내, 마치 계시처럼 소낙비가 느닷없이 내린다. 미닫이를 닫을려는 순간, 카메라는 크래인-다운하고,

한 녀인이 또각또각 게타(げた)의 발걸음 소리를 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프레임-인 한다.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 수평트래킹하며 내화면

사운드의 원인인 게타를 신은 녀인의 발목으로 트랙-인 한다. 하지만 녀인의 모습은 내화면의 프레임 전경의 나무와 구조물들에 의해 보일듯

말듯 하다. 이어 접사의 그녀의 발이 프레임 전면으로 걸어오자, 카메라는 그녀의 전신을 붐-업하고,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접사로 잡는다.

이어 카메라는 다시 크레인-업하여 그녀를 롱샷의 부감으로 포위하고, 료칸 3층의 사내와 투샷으로 다시 프레이밍 한다. 녀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건물의 외곽 외화면으로 되돌아나가자, 1층으로 내려오는 사내를 따라 카메라 역시 그를, 아니 이 둘을 쫓는다. 이어 계속되는 테이크는

건물 옆 길을 달리는 사내와 녀자를, 숏렌즈의 1점투시의 롱샷으로 둘을 조망한다. 마치 미조구치 겐지의 수평트래킹과 패닝 그리고 히치콕의

하강하는 크레인숏과 트랙-인의 미스테리함을 결합한 듯 하다. 여기에는 피 맛 섞인 일본의 80년대적 거품경제의 광기가 서려있다. 사운드의

심리적 원근감도 굉장하다. 녀인이 원경일 때는 빗소리가 고조되고, 그녀가 게타로 다가와 접사로 프레이밍 될 때는, 빗소리는 소거되고,

발자욱 소리만이 고조된다.


두번째 쇼트로 이어지자, 파도 소리가 거칠게 프레임을 부술듯 때려버리고, 리듬은 가속된다. 녀인은 롱렌즈에 갖혀 멀리 도망가지 못하며,

붉은 내의를 입은 사내가 그녀를 뒤쫓는다. 그녀는 비에 섞인 그의 피냄새를 본능적으로 맡았으리라.

세번째 쇼트, 고정카메라의 익.롱샷으로 리듬을 이완시킨다. 이미지와의 거리에 따라 사운드는 다시 고요한 가운데, 외화면 왼쪽에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린다. 녀인과 사내는 수평이동한다. 사내와 녀인의 거리는 멀다.

네번째 쇼트, 세번째 쇼트의 기적소리에 연속되며, 롱샷과 접사로서 대비되며 리듬은 다시 급박하게 가속한다. 붉은색 기차의 위악적인 전면이

마치 압사하려는듯 그녀를 위태롭게 쫓는다. 녀인이 담장을 넘어 기찻길옆 도로를 향해 뛴다. 카메라도 이동하는 가운데, 녀인은 미디엄샷으로

프레임-아웃하지만 테이크는 계속되어 카메라는 반원으로 패닝하고 그자리에서 멈춘다. 마치 추격하는 사내의 시점인듯, 그를 기다린다.


다섯변째 쇼트, 공간은 이어지며 녀인은 프레임 전경의 오르막을 향해 뛰고, 사내 역시 집요하게 쫓는다. 비는 더욱 가혹하게 퍼붓고,

번개마저 치며 빗소리는 더욱 거칠게 고조된다. 담장을 넘는 녀인을 따라 급박하게 쫓던 헨드헬드카메라는 움직임을 멈추고 사내가 오기를 기다린다.

여섯번째 쇼트, 계단을 내려오는 녀인, 뒤따로 오는 사내. 비바람이 거칠게 그러나 고요하게 거리를 두며 분다. 고정카메라의 롱샷으로 다시 긴장은

이완된다. 그리고 프레임 전경, 풀샷의 평각에서 둘은 만난다. 컷. (사내는 왜 그녀의 게타를 하나만 주웠을까?)
 


마구로 잡기 좋은 날씨인듯, 붉은옷의 사내는 검은옷의 녀인을 기어이 잡아낸다. 이 단순한 상황을 묘사하는 감독의 카메라가 훌룡한건, 판에 박힌

연속편집이나 유치하고 어설픈 스코어를 삽입하여 감정을 이끌어 내는 허리우드의 바보 감독들이나 하는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직 인물의 스테이징과 롱테이크 카메라의 집요한 움직임을 통해서만 두 인물의 감정을 제시한다. 대사마저 필요치 않다. 숨가쁘게 뛰는

게타의 뚜벅거리는 소리와 파도 소리, 기차의 기적 소리, 맨발로 숨막히게 뛰며 물웅덩이를 첨벙이는 소리, 거친 비바람 소리, 그리고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인물들의 섬세하고 가장 직설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최고의 대사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6개의 쇼트로 이어붙였지만, 그 쇼트를 붙이는 편집점이나 공간의 명료함은 말할 것도 없이 훌룡하며, 독자는 마치 하나로 된 쇼트인양

헐떡이는 카메라를 따라 두 인물의 감정과 공간과 날씨를 속절없이 함께 뛰어가며 체험한다. 그리고 여섯번째 쇼트에서 드디어 녀인을 잡고서야

-사내가 녀인을 잡는게 아니다. 소마이 신지의 카메라가 녀인을 잡는 것이다- 카메라는 드디어 멈추고, 녀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그리고

이 차가운 비, 휘몰아 취는 거센 비바람 속, 두 인물의 샤레이드라 할 만한 이 차가운 감정은 그녀의 장난스런 발길질과 사내의 옅은 미소로 인해

다시 따뜻한 감정으로 뒤바뀐다. 그간의 대립, 아니 사실은 육감적인, 성적인, 빗속의 추격전은, 둘의 어이없는 반가움으로 재프레이밍 되는 것이다.

차가움에서 따뜻함으로의, 문자 그대로 감정의 스펙타클을 담은, 생동하는, 아니 거칠고 사납게 펄떡이는 최고의 카메라 무빙이며, 롱테이크 미학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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