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 시간과 몽타주의 이미지

영화이야기

장 뤽 고다르, 시간과 몽타주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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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실증하고 싶다.


시간이라는 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많이 쓰는 용어인데, 


붕 뜨게 많이 쓰여서 구체적으로 규명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인정한다. 


철학과 물리학을 떼놓고 시간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필자는 이 두 가지 분야에 모두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물리학과 철학에서 시간에 대한 논의는 영화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시간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인데,


필자가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는 이것이다라고 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면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에 이 글을 쓰는 것이 더더욱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논해보기로 한다.

 

영화는 공간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예술이기도 하다.

 

필자는 공간에 대한 영화 이미지 분석은 어느 정도 접했지만,

 

시간에 대한 이미지 분석은 그리 접하지 못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의 매체이기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공간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수월해서 그런 경우가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시간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선 영화의 본질은 시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영화의 시간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이미지에 속해있다.

 

영화의 시간은 어디까지나 이미지를 보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무엇을 봐야 시간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가?

 

 

 

많은 영화 종사자들이나 이론가들이 영화에서

 

시간과 시기라는 것을 혼동한다.

 

그들이 주로 얘기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기다.

 

그들은 시기를 보면서, 이것은 영화의 시간이다라고 얘기한다.

 

물론 시기도 시간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시간은 그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내포한다.

 

영화에서 시간을 다룰 때 흔히 쓰이는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는

 

과거와 미래의 시기에서 보이는 것이지

 

시간의 본질적인 이미지(필자가 생각하는)를 보여준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플래시백은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와 부합된다고 할 수 없다.

 

영화를 보는 이에게 시간은 어디까지나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지

 

타임머신처럼 거슬러 갈 수는 없다.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아무리 많이 나온다고 해도

 

영화의 상영 시간은 앞으로 간다.

 

, 플래시백은 과거로 역행할 수 있는 의미를 내포한

 

시기의 개념이지 시간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

 

 

 

시간 예술의 대표적인 음악을 떠올려보자.

 

음악을 듣거나 공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소절은 과거 시기의 것이야, 현재 시기의 것이야,

 

미래 시기의 것이야 하고 생각하면서 접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는 시기의 개념이지

 

시간의 본질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시간의 소리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템포(리듬, 박자).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어떤 박자와 타이밍으로 쪼개면서

 

재구성하는가 여부가 음악이 시간 예술의 대표적인

 

매체로 취급 받는 이유일 것이디.

 

 영화에서도 시간의 이미지가 갖는 힘은 템포에서 ‘기반’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템포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영화도 음악처럼 확실한 BPM(beat per minute)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와 음악간의 템포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영화에서 템포, 즉 속도는 음악의 속도보다 주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가 제대로 발현되려면


속도가 이미지 관계와 깊게 맞물려야한다.





영화에서 속도가 이미지 관계와 제대로 맞물리면 어떤 구체적인 무드가 창출된다.


즉, 필자는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는 스피드가 아니라 결국 무드라고 판단한다.


(물론 이 무드는 스피드에 기반한 것이다.)



 고다르의 “Pierrot le fou” 한 씬을 살펴보자. 


       

 이 씬에서는 주인공 커플이 범죄를 저지르고 허둥지둥 도망가는 광경이 나온다.


각 장면의 길이를 비교적 짧게 해서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이 빠름은 이 씬의 정신없고 혼돈스러운 무드의 기반이 된다.


이 씬에서는 실제로 한 번밖에 도주하지 않은 커플이


마치 4차례나 도주한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차를 타고 도주하는 광경이 4차례 반복해서 나온다.)



이 빠름은 이 씬의 이미지 관계와 긴밀한 연관을 맺는다.




아래 4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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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 장면에서 보듯이 커플이 분명히 차를 타고 도망갔는데

 3번 장면에서 다시 커플이 1번 장소 부근으로 돌아온다.

 이 커플이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인가?

그건 아니다.

편집을 개판으로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이 씬에서는 동일한 공간에서 커플이 도망치는 광경이 4차례 반복해서 보인다.

그런데 이를 빠르게 처리했기에 마치

4차례나 도주한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4차례나 도주한 것과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기에 정신없는 무드를 제공한다.


 물론 보통(?)의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이 이 씬을 본다면

커플이 4차례나 도주한 것과 같은 착시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이 뭔가 잘못 됐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편집이 잘못됐다고 느끼든, 4차례의 도주 착시로 느끼든 중요한 것은

보는 이는 이 씬의 중추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무드를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씬의 빠른 속도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이것보다 느린 속도로 이 씬을 처리했다면 그러한 얼얼함이 약했을(느릴수록) 것이다.


덧붙여 이 씬의 얼얼한 무드는 아마도

이 씬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커플의 끝없는 방황을 제대로 전달한다.

차를 타고 탈출(희망의 곳을 찾아)해도 삽시간에 원위치로 돌아오는 커플의

반복되는 모습은 얼얼함을 제공하면서도 이들의 앞날은 그야말로 답이 없다는

암시를 한다.


 다시 정리해서 이 씬의 빠른 템포(속도)는

이 씬의 개판(?)인 편집(이미지 관계)과 긴밀히 맞물리며

이 씬의 강렬한 무드를 제공하고 이 무드는 이 커플의 답 없는

앞날을 넌지시 암시한다.


 이것이 필자가 체험하고 규명하려고 하는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가 갖는 힘이다.


 필자는 적어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몽타주의 가장 큰 강점은

보는 이에게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고다르는 그것을 시간의 이미지, 즉 무드로 보였다.


 필자는 고다르 영화의 이러한 무드가 시간 예술인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기쁨, 슬픔, 얼얼함 등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영화에서는 기쁨, 슬픔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때조차

‘설명’적인 이미지에 집착한다.

이미지가 설명적이라면 매우 많은 이미지들과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물량이 많이 동원될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는 ‘무드’로 그런 것을 표현하기에 그렇게 많은 이미지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고다르 영화에서는 많은 이미지들이 나오지만 이 많은 이미지들은 무드의 변화무쌍함을 보이는 것이지,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글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한 시퀀스를 분석해보면서

이 시퀀스가 필자가 주장하는 시간의 이미지와 얼마나 동 떨어져있는지 앞서 분석했던 고다르의 씬과 왜 반대되는 지점에 잇는지

논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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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27 오큰실드  
편집이 개판... 흥미로운 분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