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봤습니다(노스포).

영화이야기

<헤어질 결심>을 봤습니다(노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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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저는 별롭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찬욱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사진을 찍는게 낫겠다. 영화를 찍는 것 보다는 자신이 몇 번인가 출간한 사진집을 만드는 재주가 더 능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네요. 찾아보니 <씨네21>의 기자 한 명도 사진집을 본 느낌이다라는 뉘앙스의 글을 썼더군요.

그러니까 영화가 엄청 과시적입니다. 화면만 과시적인게 아니라 '나는 이 정도의 교양을 갖춘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모습이 정말 때론 촌스럽고 때론 역겹기까지 합니다.


예컨대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혹은 좋아하는 영화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습니다. 히치콕의 <현기증>을 비롯하여 <현기증>을 패러디한 브라이언 드 팔머의 <필사의 추적>(탕웨이가 까마귀 시신을 매장할 때 그녀의 목소리를 박해일이 녹음하는 장면), 버트 레이놀즈 감독의 <샤키 머신>(박해일이 벽에 붙여논 미결 사진 중에 사심이 가득 담긴 탕웨이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져옴),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풀장 시체씬), 존 스탈의 <애수의 호수>(가족의 뼈가루를 산에 뿌리는 여주인공), 불면증과 안개는 에릭 스코졸드재르그 감독의 <불면증>과 이를 리메이크 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썸니아>, 그리고 이미 잘 알다시피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마스무라 야스조의 <아내는 고백한다>에서도 음악과 전체적인 모티브를 빌려왔습니다. 미결된 사건으로 영원한 사랑으로 남기 위해 봉인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져 온 건 <화양연화>에서 이구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장면은 까마귀 시체를 가져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 '갈가마귀'를 슬쩍 내비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야 바닷가의 마지막 장면이 포우의 '애너벨 리'까지 이어지니까요. 앞에 언급된 영화들을 굳이 차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어떤 감독이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해 오마주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것은 인용을 위한 인용입니다. 모든게 적당함이라는게 있습니다. 이 나물 저 나물 비벼서 적당하면 맛있는 비빔밥이 되지만 이것 저것 다 때려 넣으면 짬밥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고 이상합니다. 갑자기 왜 까마귀 시신이 나오는지, 갑자기 범인 잡으로 옥상으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습니다.


멜로라는 장르가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고 느와르라는 장르는 서스펜스에 호소합니다. 느와르 멜로를 표방한 이 작품은 무드에 젖어들만한 기다림이 없습니다. 카메라와 편집이 촐싹거리며 오도 방정을 뜹니다. 아마 감독 딴에는 이리저리 안재고 내가 원하는 대로만들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작년 칸 영화제에 제출용으로 생각하다 한 해를 건너뛰는 등 편집 기간이 늘어지면서 더 많이 손을 대다보니 점차 통제력을 상실한 것 같기도 합니다. 고전 할리우드 멜로나 필름 느와르에 볼 수 있는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이 필요 없는 완벽한 구성의 미를 이 영화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맥주를 따르다 보면 표면 장력이 유지되는 딱 그 지점까지 흘리지 않고 따르는게 대가의 솜씨라면, 박찬욱의 영화는 과잉으로 넘친 거품이 잔을 덮고 테이블까지 흘러내려 적십니다.

그것이 젊은 감독이라면, 용납하고 수긍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 감독의 영화입니다. 게다가 감독 전체 필모그라피에서 예외적이라면 또 받아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감독의 성향이라면 연출의 치명적 결함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별개로 감독의 작품 성향과 관련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따로 한 번 더 글을 쓰겠지만, 봉준호의 영화를 누군가 '삑사리의 미학'이라고 정의 했듯이 박찬욱의 영화는 '난청의 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봉준호가 만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박찬욱은 라디오 청취자의 감수성의 소유자입니다. 이 영화는 틀림없이 정훈이의 노래 '안개'를 듣고 라스트 씬부터 먼저 생각하고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라스트 씬은 제법 잘 만든 것 같은데 나머지 장면들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 특히 그 인물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에 추리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명목으로 동시에 있게 하는 장면들은 TV 드라마에서 있을 법한 너무나 게으른 연출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좋다는 사람들은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의 걸작들을 다시 한번 보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희한한 편집이나 베베꼬인 서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얼마나 좋은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박찬욱 감독이 인용했던 영화들이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영화들을 환기시켜 준다는 면에서는 이 영화가 분명 미덕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p.s. 영화나 음악 뿐만 아니라 박찬욱은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뽐냅니다. 탕웨이의 집 LP 레코드 진열장에도 보이고 박해일이 집에서도 보이는 위스키는 카발란 솔리스트 셰리입니다. 하고 많은 위스키 중에 이 위스키를 선택한 것은 박찬욱의 개인적 위스키 취향이기도 할 수 있고 극중 여주인공이 중국 여자이기 때문에 대만 위스키인 카발란을 선택한 것 같기도 하네요. 또 박찬욱 감독 자신이 좋아한다는 페르 발레, 마이 셰발 원작의 추리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도 언듯 비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묵혀 둔 카발란 위스키가 생각나서 한 잔하고 글을 쓰게 한 점은 좋습니다. 저한텐 딱 거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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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S 컷과송  
글 잘 읽었습니다. 조금 후에 영화 보러 가는데, 님의 단평을 상기하면서 관람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들도 보고싶네요.
차후에 작성하실 더 긴 장문의 글도 기다려집니다.
건강을 생각하셔서 말씀하신대로 위스키는 한잔만 하시길...
1 omega13  
공감합니다. 말하기 귀찮을 정도로 전작들도 차용이 너무 심했고, 몰입감 방해하는 조연들이 좀 줄길 바랬는데 이번에도 등장하긴 하더군요. 다 따지면서 영화보면 무슨 재미냐 할 수 있겠지만, 작가주의를 표방하며 상을 노리는 영화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더 반감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10 에버렛  
탕웨이와 엔딩만 좋은 영화였어요. 저 두 개의 인상이 강해서 영화는 그냥 그렇게 봤는데 꽤 실망스러운 영화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네요.
저랑 정확히 일치하네요. 탕웨이 + 엔딩, 그래서 아련함은 남는데 그 외에는 칭찬할 거리가 별로 없더군요
1 뭐하니ㅎ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어느 중년 남녀의 범죄를 둘러싼 고급미스터리 멜로물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본질은 586이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대한 은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박해일이 연기한 유능한 최연소 경감 박해준은 고성장가도를 빠르게 달려온 현대인들의 국가 대한민국을 상징하며, 남한 땅에 자신의 몫으로 남겨진 산이 있다는 할머니의 말을 믿고 건너온 붉은 옷의 조선족 여인 송서래는 당연히 북한이다. 영화에서 핵심 공간으로 등장하는 산은 곧 중국-북한으로 대변되는 대륙 세력, 바다는 해양무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운 한국-미국-일본을 상징하는 해양세력의 공간이 된다.

박해일은 원전 전문가이자 매사에 계산적이고 이론적이며 가정에 충실한 아내(이정현)에게서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말도 서툰 조선족 여인인 송서래에게 빠른 속도로 빠져들게 된다. 영화 평을 보면 아무리 탕웨이가 상대라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나, 개연성이 적다는 의견이 있던데 그건 그냥 그렇게 설정이 된 거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반미와 우리민족끼리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586 세대 세계관에서, 남한이 북한의 처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건 그냥 필연에 가까운 설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나쁜 인간이 아닐 거야, 누명을 쓴 걸거야 라고 믿었던 서래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해준은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호소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파멸로 이끌 핸드폰을 갖다버리라고 말하는데, 이 엄연한 보호 의지의 언어를 사랑으로 받아들인 서래는 해준을 보호하기 위해 더 '나쁜 행동'을 기꺼운 마음으로 저지르게 된다. 그러니 서래는 해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과 다른 세계를 기꺼이 파괴할 수도 있는 그런 숭고하고 희생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세계관을 남북관계에 대입시켜 보면 문재인 정권이나 똥86이 그 동안 북한이 저질러온 숱한 패악질과 파괴적인 도발에도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눈치를 보던 멘탈리티의 기반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북한이 곧 송서래와 같은 존재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언제나 꼿꼿하고 당당하기에 끌릴 수 밖에 없는 매혹적인 존재, 그리고 악의는 없지만 스스로 살아나가기 위해 본의 아니게 다른 이들을 죽이거나 파괴하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바뀔 줄도 알고(붉은 색 옷 -> 금융(애널리스트)와 손을 잡은 후에는 푸른 색 옷, 시장주의화) 사랑을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가 바로 북한인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붕괴된 자신의 과거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던 해준이, 서래가 사라진 해변 에서 하는 행동과 표정이 곧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진짜 메세지일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남한에 남아 있다던 산(인자한 자들이 좋아하는 공간이자 북한-중국으로 대변되는 대륙 세력)을 빼앗긴 채로, 살아남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다가 진정한 사랑을 위해 (정작 상대방은 확실하게 사랑을 고백한 적도 없고 도와준 것 뿐이지만) 해양세력이자 지혜의 공간인 바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숭고한' 죽음을 택한 독립군 후손 서래를 대한민국의 현대인 해준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는 영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감독은 두 매력적인 배우의 입을 빌려 남한과 북한이 서로에게 하고싶은 말을 적절하게 대변하고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관계의 현실과 결말까지 아름답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 듯 하다. 다만 이 은유를 현실로 옮겨보면 그리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https://blog.naver.com/kradish/222798906723 에서 가져온 글인데 독특한 감상평이라 옮겨 봅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과잉 해석이네요.
3 기햐  
몇몇 강한 어조의 표현을 제외하면, 제 감상과 큰 차이 없네요.
과잉과 과시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는 영화였어요.
뒤이어 극장을 나서면서, 감독이 사랑받는 이유도 반감을 사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8 BoA4  
탕웨이 나온 만추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이게 몰랐는데 리메이크 작품이었더군요. 그래서 리메이크까지 봤답니다. 김혜자님이 주연이었을겁니다.
독특한 공통점은 남자배우가 전작이나 리메이크나 둘다 좀 나사빠진 엉성한 연기랄까. 전작은 일부로 그렇게 한거같고, 후자는 역시 현빈씨라서 좀 원래 그게 가능한 사람(사실 까고 있는 중).
박찬욱 감독님은 확실히 과시욕이 있습니다. 예전엔 작가적 상상력에 과시욕이 복합되었다면, 지금은 과시욕만 남았겠죠.
차라리 봉준호 감독님은 바닥을 긁어서라도 상상력을 캐내려고 하는데
근데 두분다 제스타일은 아닙니다. 결국 현빈과 탕웨이만 제 최애캐릭터네요.
예전에 무슨 미국영화에선가 노미네이트 되는 것도 일종의 비즈니스이고 복잡한게 있다고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무슨 영화인지 도무지 기억이. 개그스러운 영화였던거 같기도 한데)
미국에서 아시아쪽 영화를 억지로 구하러다니다보니 그냥 현장 이름값 있는 사람 불러다가 대우해주고 서로 윈윈하는 그런 비즈니스 같더라고요.
거기에 탑승한게 신의 한수
그쪽 사람들이나 일반인들 입장에서 볼 때 좋은지 뭔지 모르겠고 그냥 신기해보이고 좋은거 같으니까 좋은거라고 평가내리는 듯.
저만 미친건진 몰라도 도대체 오징어 게임이 왜 인기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킹오뚜기  
볼까 말까 하는데 , 상당히 난해한 영화 인가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