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며 배우는 것들

영화이야기

영화를 보며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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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모처럼 시간이 나서 집에서 샐리 포터 감독의 <진저와 로사>(2012)를 봤습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영화를 보다보니 중간에 전화도 받고 화장실도 갔다오고 하면서 봤지요.

러닝 타임보다 훨씬 시간을 지체해가며 영화를 본 뒤, 그자리에서 다시 되돌려 봤습니다. 많은 것을 놓쳤더군요.


이게 동체시력이나 집중력 저하라는 개인적 문제로 설명할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방식의 변화에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영화는 책을 읽는 것과 다릅니다. 영화의 속도에 우리의 시력이 따라가야 합니다. 게다가 인물과 카메라는 늘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안구는 피사체를 부지런히 좇아가야하며 화면에 들어오는 주변 환경의 모습을 포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영화에서 장면이 바뀌게 되면 우리의 영화 지능은 많은 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저기 저 장소가 어디인지, 인물의 옷은 앞의 장면과 바뀌었는지, 갑작스레 등장하는 저 인물은 이 전 장면에 나온 사람인지... 따져야 할 것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씬과 씬 사이에 갑작스런 생략을 선호하는 감독의 작품이면 화면에 나오지 않는 장면을 유추해야 합니다. 게다가 외국 영화의 경우, 이 상황에서 자막까지 읽어야 하니 이건 거의 안구에게 곡예에 가까운 짓을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건 분명 독서의 경험과 다릅니다. 책을 읽다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몇 줄이나 몇 장을 되돌려 다시 읽으면 됩니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비디오 테이프, DVD, 스트리밍 다양한 방식으로 보게 되면서 영화를 책처럼 돌려보는 시대가 되었다고 반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책과 영화는 다릅니다. 책은 그 자체의 속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매체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마다 읽는 속도가 다르며 속독이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영화를 1.5배속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음악을 빠른 속도에 맞춰서 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마디로 미친 짓입니다.

음악을 놓고 생각해보면 영화는 음악과 더 닮아있습니다. 그것은 자체의 속도를 가진 매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지요. 제 경험상 영화를 보다가 특정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화면을 멈추는 순간,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발생합니다. 


일단 영화 전체의 리듬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영화를 자주 멈출수록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포기하고 독서와 회화에 가까운 감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무엇보다 쇼트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묘미가 있는 매체입니다. 그 맛을 포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 놓쳐버린 앞 장면이나 대사가 궁금해서 영화를 멈추고 되돌릴 경우, 진행 과정에서 오는 발견의 즐거움마저 놓치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놓친 부분을 찾을려고 계속 유추하고 있습니다. 몇 쇼트를 놓치더라도 대부분의 영화는 다음 장면을 보면서 '아~ 그 상황이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전후맥락으로 알게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편집(쇼트의 배열)에 의해 감독이 어떤 식으로 상황을 전개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감독의 재능 여부를 가늠하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영화를 자꾸 멈추면서 보는 것은, 수학 문제를 풀면서 답을 내기도 전에 풀이과정이 맞는지 답안지를 자꾸 힐끔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답을 맞추는 희열감이 사라지고 마는 셈이지요.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처음 그 영화를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영화를 보고 다시 볼 때 '저 장면은 저런 의미였구나', '저 대사가 복선이었구나', '감독이 저 장면에서 카메라 심도를 얕게 한 이유가 뒷 장면 때문에 그랬구나' 이런 것들을 뒤늦게 알게 되지요.

생각해보면, 다시 복기하면서 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어찌 영화 뿐이겠습니까?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남에 대해 판단을 할 때, 내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는지, 혹은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멈춰서 본게 아닌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영화가 삶에서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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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S 컷과송  
깊은 동감...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2 밤간  
글 잘 읽었습니다. 집에서 영화볼때는 습관적으로 끊어보는데 편인데.. 고쳐야겠네요^^
2 prestissimo  
공감합니다.
S 토마스모어  
좋은 글이라고 봅니다. 저는 안면인식(특히 여성)을 잘 못하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가장 애먹는 것중 하나가 외국여배우의 얼굴을 익히는 것입니다. 주연배우야 유명하니 알고 보는 경우가 많아도 조연, 단역들은 일일이 다 순간순간 외워서 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특히 극장에서 영화를 볼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가능한 아주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고 보는 편이죠. 안 그럴 경우 조지 클루니 주연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스타일의 영화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드라마 장르는 극장에서 피하게 됩니다.

극장보다 컴이나 TV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굉장히 자주 멈추게 되죠. 화장실 가거나, 잠시 물 먹으러 가거나 하는 것 외에도 몇초 놓친 장면 다시 보거나 뒷쪽 보다가 앞 쪽 다시 복기하려도 다시 보거나 하는 경우가 빈번하죠. 특히 시네스트에서 자막을 받은 많은 영화들은 1시간 30분짜리 보는데 최소 2시간 이상 3시간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쉽게도 아직도 착한자막과 너무 어긋나는 자막이 너무 많고. (저는 극장 자막에 익숙해져서 극장자막과 달리 착한자막이 아니면 거슬려서 영화를 못 봅니다. 일일이 실시간 수정해서 보죠. ) 맘에 안드는 형식이나 표현은 일일이 고쳐가며 보기 때문에 그렇죠. 대신 영화는 상당히 자세히 보게 되죠. 사실 시간이 많으면 그렇게 한 번 보고 다시 처음부터 정주행을 해서 쭉 봐야 제대로 보는 건데 그럴 시간은 없고.  (오늘 올린 '책읽어주는 여자'도 1시간 반짜리 영화를 3시간 넘게 걸려서 봤습니다. 서너줄에 하나식은 고쳐야 하더군요. 주로 너무 긴 줄을 두 줄 아닌 한 줄 처리한 것. 불필요한 기호 같은 건 일괄처리로 손보면 되지만) 즉 많은 영화를 영화가 아닌 책처럼 보고 있는 것이죠. 저는 영상보다 대본이 좋은 영화를 선호하다 보니(흑백 필름 느와르 같은) 더 그런 현상이 일어나죠.  영화를 다시 보면 정말 놓친 것이 많다는 걸 느끼지요. 그래서 저는 안 놓치게 연출하는 것도 감독의 실력이라고 봅니다. 집중을 덜 하고도 안 놓치고 많이 소화시키게 만드는 것도 감독의 실력이라고 봐요. (그렇다고 대사는 없고 영상으로 때우는 영화 말고)

제가 리메이크 작이지만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8명의 캐릭터(악당두목까지)를 전혀 혼동스럽지 않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는 배우라도 다 기억하게 연출을 했죠. 거의 안 놓치게 술술 넘어가게 만든 영화가 이런 작품이라고 봅니다.  극 영화는 배우가 이끌어가는데 그 배우를 단역이든 주연이든 확실히 기억하고 보게 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보는거죠. 얼마전 본 '레벤느망'이라는 영화는 친구 셋이 같이 화면에 잡히는데 두 사람 얼굴이 똑같이 보였습니다.  다행스럽게 그 중 하나만 일방적 주인공이라서 큰 영향은 없었지만 둘이 동일한 비중이라면 애를 먹었을 듯 합니다. 아는 얼굴이 나오는 한국영화와 모르는 얼굴이 많고 자막까지 따라가야 하는 외국영화에 대한 실시간 소화력을 완전히 다르다고 느끼죠.  결론은 처음부터 다시 보는 정주행을 해야 제대로 영화를 소화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집에서 볼때는 절단신공도 자주 사용하는데 가급적 안 그러려고 하죠. 절단신공을 부득이 해야 하는 경우는(보다가 졸렵거나 약속시간이 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자주 보는 편입니다.
존 스터지스가 인물 분배를 참 잘합니다. 단순히 인물들의 역할 분배만 아니라 인물 생김새가 안 겹치게 배치를 합니다. 도형으로 말한다면 삼각형. 정삼각형, 이등변 삼각형이 아니라 동그라미, 사각형, 삼각형의 생김새를 선택합니다. 그러다보니 같이 늘어놓아도 구분이 가능하죠. 그가 만든 <대탈주>에도 수많은사람이 등장하죠, 하지만 주연 뿐만 아니라 조연과 단역들의 생감새가 다 구분이 가능합니다. 그런면에서 스터지스는 확실히 대가였습니다.
2 꼬비뚜  
필요할 때 와서 자막만 슬쩍 가져가고 하던,
씨네스트에 이런 멋진 커뮤니티, 더구나 훌륭한 작가분들이 계신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전 영화보다 책을 소중히 생각하는 편인데 하스미님의 글을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글들도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S 궁금맨  
가끔은 영화를 본 뒤 연달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네요.
내가 본 느낌이 맞는지 아닌지 아니면 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이..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