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젠슈타인의 능동적인 몽타주 연출에 대해서

영화이야기

에이젠슈타인의 능동적인 몽타주 연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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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 표시는 인용문)

 

 이전 글에서 에이젠슈타인의 이론과 영화의 괴리를 언급했다.

그 글에서 차후 에이젠슈타인이 추구했던 몽타주 이론은 영화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다루기로 한다고 했다. 이 게시물은 이에 대한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이 추구했던 몽타주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미지간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상시켜서 보는 이에게

적극적인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관객 스스로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도록 그들의 상상력을 고무시킨다.‘ (1)

 

에이젠슈타인은 이러한 상상력을 유발하기 위해 제유법을 많이 쓴다.

제유법은 사물의 일부를 보여서 사물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스승 마이어홀드는 앨턴버그의 말을 인용해 제유법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

 

간결하지만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 비결이다.

예술가의 임무는 아주 분별 있는 경제성으로 최대의 풍부함을 거두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꽃이 핀 나뭇가지 하나로 봄 전체의 분위기를 일으킨다.

우리는 봄 전체를 묘사하건만, 꽃이 핀 나뭇가지 하나의 효과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3)

 

이러한 개념 아래서의 무대는 장소를 전체적으로 재현할 필요가 없고,

재현적이거나 제시적인 몇 가지 대도구나 가구만을 필요로 한다.

이때 관객은 가구나 대도구를 다루는 배우의 연기에 의해 장소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4)

 

 많은 사람들은 (에이젠슈타인까지!)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데사 계단 시퀀스를 들고 있다. 그 시퀀스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병들이 사람들을 학살하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퀀스는 적절하지 못하다. 물론 이것은 제유법에는 해당하지만

보는 이의 상상력을 유발하지 못한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고무시켜서

이미지 관계의 수수께끼를 풀도록 유도하려면 이미지 자체가

명확하면 안 된다. 오데사 계단에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장면(근접 장면)들은

비록 부분적이지만 그 장면들 자체가 이미 명확한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기에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없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부분적 이미지)가 특별한 것은

오데사 시퀀스처럼 이미지 묘사를 명확하게 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이미지 묘사가 뭔가 불완전할 때 나온다. 그렇기에 에이젠슈타인이 추구하는

제유법은 전형적이지 않다. 에이젠슈타인의 근접 장면들은

이질적인 관계를 많이 보이기에 극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때문에 나는 “Battleship Potemkin”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에이젠슈타인 작품에서 명확한 이미지 묘사(근접 장면)들이 가장 많이 나온다.

 

 “Old and New”의 다음 씬을 보자.


   https://youtu.be/yDT1igBRj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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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씬에서 여자들은 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하객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1~8번 장면 연결에서 보듯이 여자들이 하객이라는 정보는 간파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여자들이 꽃단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신부인가?’라는

생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4/8번 장면에서 소녀들도 꽃단장을 하고 있기에

이들이 신부라고도 할 수 없다. 8번 장면까지 연결을 보면 도대체 이들이 누구이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영화 자막에는 단지 결혼 준비라고 써있을 뿐이다.

따라서 보는 이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미지간의 관계를 계속 연상할 수밖에 없다.

1~8번 장면을 보면 이들은 얼굴을 씻거나, 머리에 빗을 박(?)거나,

목걸이를 걸거나, 끈을 묶거나 모두 제각각 다른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미지 간의 연관 관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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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 관계를 보면 두 여자(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

가 다른 행동을 하지만 모두 비슷한 목걸이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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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장면 관계를 보면 두 여자에게 같은 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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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장면 관계를 보면 한 여자가 뒷머리에 빗들을 꽂는 것을 보이고

다른 여자가 앞머리에 꽃모자 같은 것을 써서, 뒷모습과 앞모습을 대조시키는

관계를 보인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에 얼핏 보면 이들의 이미지 관계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비슷하거나 대조되는 이미지 관계도 보이기에

이들의 관계에 뭔가가 있다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 연결에서

그 궁금증은 더욱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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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 연결에서 처음으로 이들은 비슷한 모습(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다.) 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들은 분명 서로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장면들과 같이 비슷한 의상을 입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로 보이면서 이들이 하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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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씬의 효과는 여자들이 하객이라는 것을 알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있지 않다.

(어쩌면 러시아/소련 농촌에서 소의 결혼식(?) 문화에 정통한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보는 이를 이미지간의 관계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만약 보는 이가 이들이 하객이라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면, 이러한 이미지 관계에

신경을 쓰게 될까?

 

 에이젠슈타인은 스승 마이어홀드의 그로테스크 연극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로테스크 연극은 급격한 변화를 통해 관객의 감정이나 의식을 비약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목표다. (5)

 

 그렇다면 에이젠슈타인 영화에서 보는 이의 의식이나 감정을

비약시키는 것은 무엇을 통해 실현되었나? 바로 위에서 언급한

불완전한 이미지 관계를 통해서다.

 

“Old and New”의 다음 씬을 보자.


   https://youtu.be/3jA2kpit6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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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씬에서 2-3번 장면 연결을 보면 털보와 꺾다리가 서로 노려보기에 마치 이 둘이 대립하는 느낌을 유발한다. 그런데 4번 장면을 보면 털보가 별안간 웃는다. 

이 장면은 이상하다. 웃음이란 갈등이 해결 돼야 나오는 것인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음에도 활짝 웃는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5번 장면을 보면 (털보의 웃음 장면에 이은) 여전히 꺽다리는 털보를 매섭게 노려본다.

여전히 둘은 갈등이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털보는 활짝 웃는 것인가?

이 불완전한 이미지 관계에서 오는 궁금증 때문에 보는 이는 능동적인 참여를 한다.

이러한 호기심(?)이 강하게 든다면 6~10번 장면에서 ~ 하면서 이렇기 때문에 털보가 웃었구나!’ 와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6~10번 장면 연결을 보면 꺽다리는 협동 농장을 위해 자신의 몫(가져갔던)

털보에게(협동농장에게) 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털보가 웃은 것이다.

그런데 극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보다 본질적인 것은 이러한 궁금증을

극적으로 이끌어낸, 즉 보는 이의 감정이나 의식을 비약시킨 에이젠슈타인의

연출이다. 6번 장면을 보면 극의 상황 상 꺽다리는 돈을 돌려주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이 장면 자체만 보면 이를 알 수 없다그저 꺽다리의 얼굴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만 보인다.

꺽다리의 구체적인 행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처럼 에이제슈타인의 근접 장면이 보는 이의 감정에 비약을 유발할 때는

근접 장면 자체가 씬에서 정확히 무슨 묘사를 하는지 제대로 모를 때 비롯된다.

 

 한편, 5(털보의 웃음 장면 이후)~12 장면 연결을 보면 빠른 시간 안에 지나간다.

7~10번 장면 연결을 보면 꺽다리가 돈을 돌려주는 모습을 매우 강조하는 묘사를 한다.

꺽다리가 돈을 돌려주는 동작 연결은 장면 전개와 더불어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고, 각 장면 사이즈별로 똑같은 동작의 모습을 3차례 반복해서 보여진다.

5-6번 장면 연결을 보면 꺽다리가 돈을 돌려주는 행동이 나온다.

비록 근접 장면이라서 그 행동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7-8번 장면 연결을 보면 앞선 장면에서 안 보였던 왼팔이 보이기에 돈을 돌려주는행동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런데 에이젠슈타인은 여기서 6번 장면에 이은 (돈을 돌려주고 난 다음의) 장면을 보이지 않고 다시 처음부터 돈을 돌려주는 동작을 보인다.

9-10번 장면 연결도 (더 멀리 찍은)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5-6 장면처럼 돈을 돌려주는 동작을 처음부터 보인다. 이 연결에서는 돈을 돌려주는 행동이 완전히 드러난다.

 

 비록 이 장면들은 빠른 속도로 지나가지만 똑같은 행동이 3차례 반복되었고

무엇보다 이 장면들은 보는 이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묘사이기에 빠른 화면 전환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는 (능동적인 참여로 감정이나 의식이 예열 된) 그 이미지들을 강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처럼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는 보는 이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극의 페이스를 가속화시키는 것이 빈번하다.

보는 이가 적극적인 참여로 감정적 비약이 생긴다면

그 빠른 전개에는 혼란이 아니라 극상의 스릴과 통쾌함이 있을 것이다.

마치 한 번 혈이 뚫릴 때 고속도로를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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