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모터스(2012) - 레오 까락스

영화이야기

홀리모터스(2012) - 레오 까락스

1 yvonnemarmelle 6 815 1

18cdb4eb9816609ff8c619cec49697c6_1644391709_5022.png

18cdb4eb9816609ff8c619cec49697c6_1644391715_2585.png

18cdb4eb9816609ff8c619cec49697c6_1644391721_008.png

18cdb4eb9816609ff8c619cec49697c6_1644391725_8293.png 

 

1. 영화의 장면. 어둠을 배경으로 오스카의 퍼포먼스는 명백히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로 촬영된 이미지이다. 말의 속도에 따른 걸음걸이를 명확하게 판독한 마이브리지의 주프락시스포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이미지는 심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배경 덕에 피사체에 집중하게 되므로 화면의 넓이를 제한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미지의 리버스 샷으로 제시된키네토스코프를 바라보는 관객들 모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숙면을 취하고 있다. 집중화를 위해 외화면까지 포기한 이미지, 자크 오몽에 따르면관음증에 토대를 두고 있어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자신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 이미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전에 쇼트의 교차는 어떤 것과 닮았는가. 오스카의 키네토스코프는 뤼미에르의 열차의 도착과 자고 있는 관객의 반응은 카페 그랑의 관객들의 반응과 비교 가능하다. 이것은 1895 카페 그랑에서 열차의 도착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변용한 장면으로 읽을 있다.

 

2. 카락스가 악몽에서 깨어난다(극장 쇼트에서 이미 그가 악몽에서 깨는 소리, “ !, !”라고 외치는 오프 사운드가 삽입된다). 그는 관객들이 외면하는 죽은 이미지를 보기 위해 개의 문을 열고 다시 악몽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 경계는 진동한다. 고정된 이미지의 틀이 움직일 , 프레임을 기준으로 구분된 내화면과 외화면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예컨대 카메라가 패닝을 풍경을 포착할 처음 제시된 내화면이 외화면으로 추방되는 것인지 아니면 밖에 있는 외화면이 내화면으로 삽입되는 것인지 인지적으로 구분할 없다. 카락스는 경계-없음을 공간적으로 확장한다.(정확히 말하자면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는 뤼미에르가 우연히 프레임 밖에서 걸어들어오는 행인을 촬영해 외화면을 발견했던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악몽 속의 키네토스코 오스카에게 다가간다.

 

3. 영화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다. 죽은 이미지를 견인하여 어떻게 변용해야 잠들어 있는 이들을 깨울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래서 카락스는 직접 악몽으로 들어가 오스카라는 dna 부여한다. 그는 단독자로써 영화를 이끌어갈 것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 일그러져 있는 장소, ‘잠재적으로 가상적인, 그러나 또한 사라짐과 소멸의 장소 외화면-꿈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고정지시어가 것이다. 세계에서 오스카가 맡은 배역은 다음과 같다.

 

Le banquier 은행가

Le mendiante 걸인

L'O.S de la motion capture 모션 캡처를 하는 자

M. merde 배설물 

Le pere 아버지

L'accordeoniste 음악인

Le tueur 킬러

Le tue 피살자

Le mourant 죽어가는 자

L'homme au foyer 가정부


 이 꿈은 명백히 카락스의 영화-꿈이다. 예컨대 홀리모터스의 캐릭터들은 중심 레퍼런스처럼 보인다. 오스카가 연기하는 다리 위에서 구걸하는 걸인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알렉스가 만약 미셸을 만나지 않았다면 되었을 미래의 모습처럼 보인다. 광인은 도쿄의 광인이 파리에 있었더라면 가정에서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고, 킬러는 어쩌면 나쁜 피의 알렉스일 수도 있다. 영화 후반부에 오스카가 우연히 전처 진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퀀스는 뮤지컬로 진행되는데 전처의 남편 이름이 헨리인 것으로 봤을 때 9년 후에 찍을 아네트를 연상시킨다. 


4. 오스카는 오랜만에 만난 진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일을 그만 둔 줄 알았어. 사라졌었잖아.” “한번도 사라진 적 없어.” 그는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는 카메라가 있는 곳에 언제나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의 존재론은 ‘capto, ergo sum’이다. 따라서 홀리모터스는 카락스의 꿈인 동시에 배우 일반의, 더 구체적으로 드니 라방의 육체가 된다. 관객의 눈에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배우들의 삶을 체화한 카메라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횡단하며 포착되고 죽고 죽이고 다시 살아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재생한다. 연기는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사는 것이다. 리무진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이 생과 사의 경험이어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까스로 어떤 것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라면, 영화가 왜 그토록 ‘오스카’라는 이름을 끊임없이 발화하는지 일견 이해되기도 한다. 은행가/걸인/아버지/음악가/킬러…… 의 삶은 연기이다, 라는 한정기술구가 고정지시어가 되기 위해서 기원이 되는 오스카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스카는 파편화된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고정지시어이고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상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드니 라방’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5. 아네트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카락스의 사고 실험은 실패했다고. 그러나 그 어떤 이미지로도 잠들어있는 관객들을 깨울 수 없을 것이라고 홀리모터스(자동자들)의 입을 빌려 카락스가 한탄하는 결말을 보며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말했듯 까락스는 아직도 우리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깊은 절망 끝에 도달한 후에 나온 이야기라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또 앞서 말했듯 아네트가 홀리모터스의 진과 헨리의 레퍼런스에서 확장시킨 이야기라면 나는 더욱 기뻐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절망을 아직도 들여다보고 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므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6 Comments
S 컷과송  
글, 감사히 읽겠습니다. 10년전 영화라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1 yvonnemarmelle  
항상 감사합니다
26 장곡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1 yvonnemarmelle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 컷과송  
5개의 단락 중에서 1번이 가장 좋았고, 2번에서는 감상의 약동이 느껴집니다. 3번은 다소 부차적이고, 4번과 5번은 초월에의 찬양이 묻어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이미지와 마음>이 읽고 싶어 졌습니다.
1 yvonnemarmelle  
부족한 글을 세세하게 읽어주신 덕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미지와 마음>은 처음 들어보는 책인데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