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를 보고

영화이야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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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만들어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남우조연상(조지 차키리스), 여우 조연상(리타 모레노), 컬러 촬영상(다니엘 펩), 미술상, 편집상, 의상상, 음악상, 음향상 등을 수상하였다. 11개 부문에서 각색상만 놓치고 10개 부문을 수상했으니 대기록인 셈이다(각색상은 <뉘렌베르그 재판>의 애빈 만이 수상). 화려한 수상 경력이 증명하듯이 비평에서도 호평이 잇달았는데 영화 평론가 아서 나이트는 '기념비적 예술 작품'으로 한껏 추켜 세우며 브로드웨이의 원작을 넘어섰다고 흥분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비슷한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한쪽 구석에 의심스럽고 아니꼬운 시선이 희번떡이었는데, 다 된 밥에 재뿌리기의 명수, 무덤파는 할망구라는 별명을 가진 독설 영화 평론가 폴린 캐일의 눈빛이 그것이다.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뮤지컬'이라는 논평. 예상 외로 살짝 물러선 그녀의 발언보다 더 직접적인 비평은 존 러셀의 지적이었다. '사회적 발언을 하려는 네오리얼리즘 뮤지컬과 구식 할리우드 판타지 스타 영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허세 가득한 영화'라는 강도 높은 비난.


50년만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다시 만들면서 스필버그는 로버트 와이즈의 작품보다 '뮤지컬이 아니라 영화에 더 치중하고 싶었다'라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으니 폴린 캐일이 여태 살아서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떤 발언을 했을까? 게다가 이번 신작은 21세기 미국 사회가 가지는 문제, 인종 차별과 여성 인권 등의 소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견해를 1950년대를 배경으로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으니 존 러셀의 원본 영화에 대한 비판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1961년판 영화에는 로버트 와이즈 외에 제롬 로빈스가 공동 감독으로 이름에 올라와 있는데, 이 인물은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안무가다. 제롬 로빈스는 영화에서 각본, 음악, 세트, 의상 모든 분야에 관여를 해서 와이즈 감독이랑 대립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것은 연극적인 연출과 영화적 연출 사이의 대립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결국 제롬 로빈스가 촬영 도중 물러났지만 그의 제자들이 남아서 영향력을 뒤에서 발휘했다고 하니 이 영화에서 제롬 로빈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짐작할만하다. '뮤지컬보다 영화에 더 치중하고 싶다'라는 스필버그의 발언은 영화의 통제권을 자신이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1년판과 2021년판을 비교하면 이전 버전이 양식화된 세트와 인공적 조명, 뮤지컬 동선을 위한 카메라의 위치 등으로 연극성이 부각되는데 비해 2021년판은 상대적으로 사실적(이고 영화적)이다. 특히 주의해서 볼 점은 카메라의 거리와 높이인데 이것이 두 영화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로버트 와이즈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도입부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뉴욕의 스카이 라인을 헬리콥트로 찍은 공중 촬영에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뉴욕의 여기저기를 비추다가 한 곳을 발견하고 쭈욱 하강해서 10대 갱단이 불길하게 손가락을 탁탁치는 장면을 비춘다. 브로드웨이의 원작 뮤지컬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화만의 것을 보여주려는 와이즈 감독의 세공이 돋보이는 부분으로 대단히 격찬을 받았던 장면 연출 중 하나다.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전작처럼 수직 촬영된 화면을 보여주나 화려한 스카이 라인이 아니라 폐허가 된 뉴욕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뉴욕의 폐허를 시작부터 보여준다는 점에서 즉각적으로 21세기 시작부터 충격을 가져 온 911 테러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스필버그는 5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21세기 이후 부숴진 뉴욕의 재건을 이야기하려는 점이 분명하다. 버드 아이 뷰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두 영화의 차이점은 장소 외에 카메라의 높이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자가 훨씬 높은 위치에 카메라를 설정해서 수직 하강한다면, 스필버그의 작품에서 카메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한다. 카메라가 시점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그 시점의 주인은 새가 아니면 신이다. 신의 시점이 개입될 경우, 영화는 결국 운명적 서사를 따를 수밖에 없다. 프리츠 랑의 영화애서 하이 앵글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내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로버트 와이즈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판이며, 따라서 운명적 비극은 몬테규 가문과 캐플릿 가문의 대립에 원인이 있는게 아니라 푸에르토리코 유색인 그룹인 샤크파와 폴란드계 백인 그룹인 제트파와의 대립에 있다. 와이즈는 이 대립의 결과를 그냥 보여준다. '봐라, 여기 젊은 청년들의 죽음을!'. 마치 비극은 예정된 것처럼 진행된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제 그런식의 방법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있다. 비극 앞에 망연자실하지 말고 이 상처를 어떻게 끌어안고 뉴욕을 재건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도입부에 카메라가 낮은 공중 촬영을 하면서도 '링컨 예술 센터'가 지어질 장소라는 팻말을 보여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며,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까지 뉴욕의 낡은 건물들을 보여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스필버그는 신의 문제를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 위치가 사람의 키높이 보다 낮은 데 있는 것이 많은 것은 이전 작품이나 최근작이나 마찬가지다. 지면 아래를 파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물들이 춤추는 장면을 앙감으로 찍은 것이지만 차이점은 61년작이 로우 앵글 화면으로 보이는 배경으로 빨래줄에 걸린 빨래의 높이와 간격이 인공적인데 비해 스필버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흐트러져 있다. 카메라의 높이 외에도 거리의 문제에서도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인물에 근접하거나 클로즈업 투 샷을 찍은 장면이 많다. 남녀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61년판에서 카메라는 멀찌기 서서 노래와 춤에 더 치중하려 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표정을 카메라는 포착하려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스필버그가 화면에 담으려는 것은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댄스를 담고 싶은 것이고 스필버그의 뮤지컬은 감정의 뮤지컬이라고.


원작의 정형화된 캐릭터는 서브 스토리를 구축함으로써 사실적으로 변했다. 이번 영화를 보면 토니가 왜 샤크파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지, 치코의 총은 어디서 나왔는지 등이 설명됨으로써 설득력을 갖추었다.

특히 원작에서는 남자였던 약국 주인을 여자로 설정한 부분도 눈에 띈다. 발렌티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성을 연기하는 인물은 1961년판에서 아니타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리타 모레노다. 발렌티나는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에 태어난 혼혈으로 인종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 현장에 모여있던 무리들이 흩어질 때 발렌티나의 모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살인을 저지른 치노를 감싸안는다. 이에 비해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에서는 살인 사건 후 사람들이 흩어지고 치노가 경찰에 잡혀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장면 역시 와이즈가 피할 수 없는 결말을 강조한다면, 스필버그는 용서와 화해에 더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용서와 화해라는 문제는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도 이어진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올라오는 '아버지에게'라는 스필버그의 마음을 담은 문구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알다시피 스필버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을 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스필버그는 부모 손에 이끌려 봤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고 그즉시 뮤지컬에 나온 모든 노래를 지금까지 부르고 불렀다고 한다. 그 시절 영화를 다시 만들면서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슴이 뭉클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제 희미해지는 영화의 존재론적 문제를 다시 환기시키는 걸작이다. 영화가 뮤지컬(연극)과 어떻게 다르며, 우리가 안고있는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갈까를 고민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을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훌륭한 뮤지컬'이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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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S 컷과송  
오랫만의 영화글이 반갑습니다.  덧붙일 말이 모자라지만, 짧게 몇 지점을 추가합니다.
1.  자막입니다. - 이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반대편에 본편이 있음을 지정합니다.
2.  링컨입니다. - 이 링크는 당연하게도 스필버그의 <링컨>이면서 동시에 존 포드의 <링컨>이며 일종의 <쥬라기 공원>과 <우주 전쟁>의 그 거대한 키일 것입니다.
3.  첫 만남입니다 - 원작의 특수효과적 처리에서 두 인물을 제외한 주변이 아웃된다면, 본편에서는 두 인물이 이동합니다. 그 곳이 관중석의 계단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맥락에서, 1961년 원작과 본편은 서사적으로든 주체적으로든 형식적으로는 상당히 상이한 영화입니다.
회원들 모두 감지하실 대목이라, 시계있고님은 생략하셨는데, 괜한 수선을 떨었습니다. 여튼 글과 영화사적 해설 언제나처럼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13 소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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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Cannabiss  
시계없고님은 .. 아녜요
17 바앙패  
스필버그는 하구싶은거 다하시네요 ㅎㅎㅎ
6 정우성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