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개막작 '아버지의 길'과 약자가족의 수난 영화들

영화이야기

전주영화제 개막작 '아버지의 길'과 약자가족의 수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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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영화제엔 별 관심없는 사람인데 그 이유는 어차피 영화제에서 괜찮은 평을 받은 영화들은 다 개봉하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영화제까지 쫓아가서 볼 이유를 전혀 못 느끼거든요.  그리고 원래 영화보는 성향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에 영화제 시간에 맞추어 보는 것도 성향이 안맞고. 그리고 무슨 특별전이다 회고전이다 라고 상영하는 행사를 봐도 흔하디 흔한 영화 투성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거의 없다는 것도 이유고.(그 외에도 한 10가지 이상의 이유가 더 있습니다. )

그런데 올해 전주영화제 개막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전주까지 가서 본 건 당연히 아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온오프라인 겸용으로 진행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라이브 채널을 이용하기도 하는 웨이브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서비스가 진행되었고, 관람권을 받게 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뭘 볼까 웨이브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전주영화제 상영작 142편 중에서 고르다가 라브 디아즈 감독의 '지너스 판'과 개막작인 '아버지의 길' 이 최종 후보 2편으로 압축되었는데 2시간 반의 '지너스 판'의 러닝타임에 대한 부담으로 '아버지의 길'이 낙점되었습니다.

개막작에 걸맞는 정말 굉장한 수작이더군요. 영화 자체가 꽤 좋았고, 판타지나 극적인 부분이 없는 건조하고 묵묵한 내용도 좋았지만 제가 요즘 '약자 가족의 수난'을 다룬 영화에 많이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에 더욱 잘 몰입이 된 느낌입니다.  

약자 가족의 수난을 다룬 영화는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를 탄 소년' 같은 영화가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이런 소재가 요즘 참 마음에 듭니다. '아버지의 길'은 제목 그대로 빼앗긴 아들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외롭고 힘겨운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실직한 이후 일용직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죠.  아내는 그 회사에 찾아가 남편의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내놓으라며 분신을 시도하고(다행히 주위 사람들이 재빠르게 불을 꺼서 치명적 상황은 아니었고) 그로 인하여 양육이 불가능한 무능가장이라고 판단되어 당국에서 아이들을 빼앗아가서 위탁가정에 맡깁니다. 그렇게 빼앗긴 아들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외로운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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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한 편에 제가 나름 좋게 평가하는 '약자 가족의 수난'과 관련한 여러 영화들이 다 담겨있는 느낌입니다.  그들 영화와 주인공의 시점과 관점만 다를 뿐.

우선 이 영화처럼 복지국에 의하여 아이들을 빼앗긴 아버지의 눈물겨운 투쟁을 다룬 '사랑하는 내 아들아(After The Promise, 87)' 와 소재가 아주 비슷합니다.  그 영화의 아버지가 굉장히 적극적인 투쟁을 벌인다면 '아버지의 길' 에서는 꽤 소박한 투쟁을 벌이지요.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과 비교하면 곧 데려가겠다는 아버지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아들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죠.  그 영화가 아들과 위탁모역할을 하는 여성의 관점이라면 '아버지의 길'은 오로지 아버지의 관점이지요.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 무모한 긴 여정을 떠나는 점은 필립 노이스의 '토끼 울타리'와 동일합니다.  '토끼 울타리'가 세 아이들의 1,000마일 도보여정이라면, '아버지의 길'은 어른 남자의 나홀로 300km 도보여정이지요.

올해 본 영화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나이팅게일'과 비교하면 약자의 투쟁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 영화도 여정을 다루고 있지요. '나이팅게일'이 복수를 목적으로 하는 여정이라면 '아버지의 길'은 아들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지요. 두 영화 모두 지극히 사실주의적이라서 영화적 판타지가 없고, 끝내 관객이 기대할만한 통쾌한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더 와닿는 부분이며 수많은 '판타지적 결말'과 대조적이지요. 영화시작할 때 약자는 그냥 영화 끝날때도 약자인게 정상입니다.

켄 로치의 영화들이 가장 많이 연상되는데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등 입니다.  양육불가 판정을 받고 아이를 빼앗긴다는 내용은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가 가장 유사할 수 있는데 좀 다르죠. '레이디...'는 정말 민폐엄마를 다루고 있지만 '아버지의 길'에서의 주인공은 단지 가난한 뿐, 매우 순박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젊은 여자 혼자서 극심한 가난으로 아이를 키우는 내용이 등장하고, '미안해요, 리키'는 택배배달원 가족의 애환과 수난을 다루고 있지요.

한국영화에서도 좀 유사성을 찾는다면, 한국영화는 주로 부자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인이 아이를 빼앗기는 내용을 다룬게 좀 있었죠.  60년대 엄청난 대흥행을 거둔 문희 주연의 '미워도 다시한번' 그리고 정윤희 주연의 1981년 신파극 '사랑하는 사람아' 그런데 이 두편과의 공통요소는 상당히 적습니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이 사회적 약자의 수난을 대상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두 한국 영화는 통속 멜러물로서 여인의 수난을 다루는게 더 중점이니까요. 다만 아이를 빼앗긴 주인공의 절규라는 점에서만 유사합니다.

'아버지의 길'이 좋았던 것은 영화가 단지 아버지의 여정만을 다룬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300km 여정이 가장 길게 다루어진 부분이지만, 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첫 단락, 여정을 이어가는 두번째 단락, 목적지에 도착하여 겪는 세번째 단락,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에 맞닥드리는 네번째 단락에서 모두 의미있는 내용들이 각각 등장하고 있지요. 단지 가난할 뿐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정말 큰 죄로 취급받는 세태를 잘 다루고 있지요.

2021년 전주영화제 개막작은 이렇게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자전거 탄 소년' '사랑하는 내 아들아' '토끼 울타리' '나이팅게일' 등 제가 좋아하는 여러 영화들을 모두 다 떠올리게 하는 의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이 연출한 동유럽권 영화지요.  유고가 여러갈래의 나라로 분리되어 그 감독이 지금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는데 영화의 배경을 세르비아입니다. 구 유고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를 차지한게 세르비아지요.  그 나라의 생황수준이 어느 지경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볼 수 없는 브라운관형태의 TV와 구식 휴대전화 등을 볼때 우리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뭐 가난으로 인하여 서러운 문제는 우리나라나 그쪽이나 똑같겠지만.

이런 나홀로 도보여행하는 내용은 촬영과 편집을 통해서 지루함을 없애야 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영화가 딱 그렇더군요.  저는 오히려 꽉 찬 두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도로, 터널, 숲, 벌판, 도시 등 여정에서 배경이 되는 다른 장소를 각각 적절하게 잘 활용했지요. 백그라운드 음악도 없이 건조한 영화를 꽤 몰입하게 만듭니다.

영화제에 관심없는 사람이 영화제 개막작에 이렇게 빠져들게 되는 날이 왔네요.  올해 본 영화중 '나이팅게일' 이후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아버지의 길' 이고 전주영화제 이후 우리나라 개봉은 7월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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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1 달새울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되었는데도 며칠 영화제 소식이 올라오지 않아 약간 아쉽던 차에 좋은 글 올려주셨네요...
비록 전주가 아닌 온라인으로 감상한 영화이지만요 ^^ 저도 요즘 영화는 온라인만 애용하는지라...
S 토마스모어  
코로나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영화제들도 모두 악영향을 받았을텐데
온라인 상영을 겸하는 건 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덕에 영화제에 일절 관심이 없던 저도 찾아보게 되었으니까요.
저도 보고 싶은 작품이 몇 편 있었는데, 제가 확인했을 때는 이미 예매가 종료되었네요. 영화제는 항상 제게 기대와 아쉬움을 교차하게 만듭니다.
S 토마스모어  
어떤 작품이 끌리던가요? 저는 웨이브로 몇 편 더 볼 수 있으니
<아웃사이더 노이즈>(테드 펜트), <THE THE>(리훙치), <멋진 세계>(니시카와 미와),  <아타라비와 미켈라츠>(유진 그린), <지너스 판>(라브 디아즈), <공중보건>(드니 코테), <숨겨진>(자파르 파나히), <10월의 울림>(아피찻퐁 위라세타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