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대한 의 해석과 표현

영화이야기

<PSYCHO, 1960>에 대한 <psycho, 1998>의 해석과 표현








1960 : 알프레드 히치콕, 버나드 허만, 존 L. 러셀, 앤소니 퍼킨스, 자넷 리
1998 : 구스 반 산트,     버나드 허만,  두가풍,     빈스 본,         앤 헤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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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싸이코>를 보지 못해서, 아니 보고싶지 않았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원작(1960)과 비교하는 영상이 있어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구스 반 산트가 원작의 의도를 명백히 따르는 모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원작을 재해석하는 리메이크작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구스 반 산트는 원작의 해석은 물론이고 그 표현에 있어서 제대로 베끼지도 못한거 같습니다.

구스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사실 모든 쇼트들이 재앙에 가깝지만, 그의 아무 생각없는 조명설계에 있습니다.

이로써 모든 장면이 처음 시작부터 망가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문제는 감독이 그걸 전혀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유튜브 비교 영상을 다보고나니, 어쩌면 구스 감독은 히치콕에 대한 오마쥬가 아니라, 패러디를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0:18
히치콕의 첫 시퀀스는 공중촬영의 맑고 투명한 하늘에서부터 호텔의 창문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이때 두 쇼트 간의 강렬한 햇빛의 외부와 강렬한 어둠의 내부의 상관관계는 편집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분명히 가르는 프레임 속 또하나의 프레임으로서의 기능일 것입니다.
실내의 검은 방 안은, 미국사회의 60년대초라는 프레임과 그 내밀한 욕망 및 일탈의 프레임의 직접적인 비유일 것입니다
또한 이 검은 방은, 자넷리의 범행과 일탈,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퍼킨스의 정신병를 상징하는 영화적 장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구스는 첫 시퀀스부터원작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를 드러냅니다.
로케이션의 날씨를 잘못선택하였으니 하늘은 옅은 구름으로 가득차 뿌옇고,

창문으로 들어가는 쇼트의 초점마저 흐리멍텅하여 원작의 분명한 명암대비를 이용한 미쟝센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창문 속 남녀는 정사가 끝나고 골아떨어진 모습으로 실내를 다 보여주는것은,
여주인공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밀회를 갖는 것으로서 서사적으로 말이 안되는 장면인건 그렇다쳐도,
히치콕이 검은 실내라는 상징을 통해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연출 마저 사라져버리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할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구스의 실내 쇼트들은 당연히, 원작의 주제나 당시의 공기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를 한층 더 강화합니다.
히치콕 실내 쇼트는 당시의 보수적인 미국사회에서 밀회를 갖는 연인들의 어떤 불안이나 일탈을 미쟝센으로서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공중촬영에서부터 시작된 명암대비는 실내에서의 두 연인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반쯤 닫힌 창문의 블라인드로 새어오는 그림자와, 가구들과 소품들의 그림자, 그리고 꽉 막히 좁은 방안의 구도까지,

연출과 씬의 목적 및 편집의 연속성 역시 정교하게 유지됩니다. 이러한 구도와 미쟝센을 통해, 특히 분명한 명암대비를 통해,

히치콕은 60년대초 미국사회의 보수적인 도덕이 짓누르는 건조한 공기와 자넷리의 불안한 정서를 유감없이 보여주려 했을것입니다.

그에 반해 구스는, 앵글과 구도 등 원작 베끼기의 실패를 차치하고서라도, 조명을 시작으로 미쟝센의 모든것에서 차이를 드러냅니다.
실은 구스가 60년대초 미국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그 전 쇼트인 창문을 통해 보이는 장면에서 둘은 완전히 골아떨어진 모습이었다가,
바로 이어지는 쇼트에서는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맞대며 애무하는 장면은 맥락상 연결이 안된다는것은 그렇다 쳐도,
부감으로 두 인물의 빅클로즈업으로 잡은 프레임 오른쪽에서 강렬한 빛이 들어오는 것은 원작을 제대로 봤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더구나 오른쪽으로 빛이 들어오는것은 조명의 원인이 없는 연속편집의 위반인건 또 차치하더라도,

어디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 한 하이키 조명으로 둘의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원작의 주제나 연기마저 오도한 대단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원작의 페쇄성이나 건조함은 온데간데 없고, 여배우의 볼은 상기된 마냥 묘사되고 두 배우는 에로틱한 연기로 일관하는데,

카메라마저 롱렌즈의 클로즈업을 남발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또한 쇼트와 쇼트의 일관성에는 관심없다는 듯 창문은 어느새 활짝 열려있고,
실내 및 그 안의 사물들과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평면적 조명으로서 나태하고 깊이감 없는 동시에 선정적이고 저렴한 연출에는 아무 꺼리낌이 없습니다.

이로써 구스는 원작의 씬과 씬구성에서 보이는 폐쇄성과 긴장을 남김없이 증발시켜버립니다.





1:31
돈을 횡령하여 운전하다가 횡단보도에서 사장을 만나는 쇼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작의 자넷리의 얼굴에는 눈 위로 반쯤 그림자가 졌고 표정마저 경직되어 있습니다.

긴장으로 감정마저 굳은 것입니다. 운전대를 잡은 양손에서도 불안을 연기합니다.
모작의 경우는 어떤가요. 마치 피크닉가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에,

조명의 경계는 거의 없고 오히려 부분적으로 하이라이트 조명 세레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쇼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왕복2차선 도로의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롱샷의 자동차 장면에서,
히치콕은 치밀하게 계산된 미쟝센을 통해 단 하나의 쇼트로서도 많은 함의를 보여줍니다.
카메라의 높이는 약간 낮은곳에 위치해 있고 렌즈는 비교적 깊은 심도를 드러냅니다.
로케이션 도로의 끝은 약간 언덕길이고, 대기는 말그대로의 트와일라이트 (twilight) 타임으로서, 일몰의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줍니다.

이로써 자넷리는 불안한 마음을 갖고, 빛과 어둠의 경계를 마치 빨려들어가듯 사라져버립니다.


모작은 반대로, 카메라의 위치는 높고 렌즈의 심도도 얕고 로케이션의 도로 끝도 밑으로 경사졌습니다.

하늘은 흐리멍텅하기 그지없기에, 차는 그저 깊이감 없이 도로를 훑듯 지나쳐갈 뿐입니다.




3:17
엉망인 숏들이 부지기수지만, 이 쇼트에서의 심각성은 그 후과가 영화 후반부 내내 이어진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자넷리가 살해되는 주 무대이자 또다른 주인공인 퍼킨스의 심리적 주 무대인 이곳은,
극의 플롯을 전환하는 중요한 플롯포인트이자 이후의 서사를 시작하는 설정쇼트입니다.

원작은 부분조명의 베이츠 모텔과 그 뒤에 배경으로 위치한 부분조명의 2층 저택을 보여줍니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퍼킨스의 자아를 상징하는 2층저택은,

그가 외부인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베이츠 모텔의 심리적 거리만큼 멀리 배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저택은 당연히 외부에 가려진 퍼킨스의 은밀한 내면처럼 어둠 속에 가려져 있고요.

그러나 모작은 이러한 설정들을 아랑곳 않습니다.

베이츠 모텔은 마치 놀이동산의 화려한 점포처럼 초록의 네온사인과 분홍의 조명등으로 너무나도 투명하고 밝게 전체를 비춥니다.
또 렌즈의 잘못된 선택으로 베이츠모텔과 2층저택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운것도 모자라,

그곳으로 가는 계단은 물론이고 2층저택의 외관은 조명으로서 모든것을 다 드러냅니다.

히치콕이 영화 오프닝에서도 보여줬던, 실내의 검은 방,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보이는 것을 비유하는 세련된 연출은 역시나 모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한, 원작에서는 베이츠 모텔과 2층저택의 구도를 사각앵글로 기우뚱하게 촬영하여 공간이 주는 불길함과 음침함을 프레임에 잘 담아냈다면,

모작은 모텔도 2층저택도 자동차도 모든것이 너무나도 반듯한 앵글로 촬영되었습니다.

이처럼 모작은, 조명도 구도도 미쟝센도 완벽하게 실패한 설정샷으로 시작합니다.


이러하니, 모작의 이어지는 쇼트들 역시 우스꽝스런, 어쩌면 초현실적인, NG샷들의 연속입니다.
원작의 사무실 안쪽의 방은 완전 블랙인데 반해, 모작에서는 내부가 다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또 자넷리가 퍼킨스를 찾으러 모텔 방들을 옆에 두고 걷는 장면은 부분조명에 의해 자넷리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모작의 여주인공은 그저 환한 조명아래를 어떤 불안도 긴장도 없이 그저 걸어갈 뿐입니다.




3:42
원작의 사무실에서 자넷리와 퍼킨스의 투샷은 평각의 타이트한 웨이스트 샷이지만,
모작은 부감의 거의 니 샷 정도의 사이즈로서 독자의 이입을 중화시켜 버립니다.
더구나 자넷리를 비추는 거울도 없고, 프레임 정중앙을 가르는 두 인물의 구도도 어긋나 있습니다.




3:57
원작은 두 인물들의 긴 그림자, 얼굴에 입체적으로 드리우는 명암을 통해 처음만난 두 남녀의 긴장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내의 사물들인 체크무늬의 커튼과 꽃잎문양의 벽지, 의자 등받이의 패턴 등을 통해,
50년대 소박한 모텔을 성실하게 재현함으로써 이후 닥쳐올 잔인한 살인사건과 대조를 이루고 그 의미를 반복변형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비다.

모작은 오프닝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인물들은 여전히 평면적 심도에 놓여져있고,

실내 사물들의 모양과 무늬는 너무나도 단조롭고, 색깔은 모노톤의 단색이며, 조명의 톤 또한 따뜻한 온도의 오렌지빛 입니다.

이러한 미쟝센은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담아내는데는 역부족입니다.


이어지는 자넷리가 창문너머 저택을 바라보는 시점샷은, 앞서 잔깐 설명했듯 퍼킨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저택의 모습입니다.
원작의 저택은 위악적인 앙각의 모습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건물의 외관은 2/3쯤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고 2층의 엄마 방만이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는 퍼킨스가 죽은엄마의 유령에 완전히 장악되어있다는 의미의 탁월한 미쟝센입니다.
그러나 모작의 연출은 이쯤되면 너무 심각합니다. 건물 전체 외관이 아무 꺼리김없이 다 보일뿐아니라, 1층은 물론 2층 창문 모두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이는 원작에 대한 심각한 훼손입니다.




4:44
히치콕은, 퍼킨스가 구멍으로 자넷리를 홈쳐보는 시점샷을 통해 서스펜스의 대가 다운 심리적 불안을 창조해 냅니다.
전경에는 자넷리가 샤워를 위해 태연하게 옷을 벗고 있고,
중경에는 그녀의 오른편 벽에 새가 그려진 액자 두 개가 걸려있고,
(모작에서는 이 액자의 유무를 통해 옥의 티를 만들어냅니다)
후경에는 그녀가 곧 죽게될 욕실 벽의 타일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후경 너머의 심도에는 퍼킨스의 죽은 어머니의 시선이 있고,
전경 앞의 심도에는 퍼킨스 자신의 시선이 있습니다.
또 디제시스 밖의 심도에는 감독 및 독자의 시선이 있습니다.
이처럼 히치콕은 6개의 심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여 독자를 살인행위에 연루시키고,
프레임 밖 그리고 디제시스 밖을 오가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즉 히치콕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시작된 검은 방의 실체를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작은 이 위대한 샷을 그냥 깡그리 무시합니다.
롱렌즈로써 모든 경(景)을 압축하여 심도들의 풍부한 맥락을 모조리 평면화 시켜버립니다.
더구나 여체를 어떻게든 강조하기위해 상의를 탈의 시키고 조명을 그녀의 몸에 다 때려박습니다.
이는 포르노그라피 입니다. 감독은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모작의 모든 장면이 옥의 티이지만, 7:19의 이 쇼트는 명백한 옥의 티 입니다. 모작의 4:44에서의 시점샷에는 액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태연히 불성실한 베끼기를 계속해야 했기에, 남자가 벽에 기대자 그 전 쇼트에는 없던-혹은 안보이던- 액자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이제는 이정도의 일관성 결여는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5:01
원작 <싸이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일 "샤워실 살해 씬"은,
구스반산트 감독 + 두가풍 촬영 + 여배우 = 삼자조합의 완벽한 코믹 패러디 장면으로 재해석됩니다.

원작의 앙각의 실루엣 살인마는, 모작에서 평각의 알록달록 잠옷을 입은 살인마로 외양이 다 드러납니다.
원작의 비수같이 날렵한 빠른 커팅은, 모작에서 쓸데없는 줌인과 잘못된 사이즈로서 그 효과를 배로 저하시킵니다.

여배우는 살해당하는 와중에 샤워물줄기로 가글을 하고,
쉬마려운 표정을 애써 참으며 죽기 전 커튼을 부여잡더니
급기야 욕조 턱에 배를깔고 다리를 벌리고 엎드려 절을 하는지 실례를 하는지 모를 모습으로 죽습니다.

원작의 반시계방향으로 매우 빠르게 빨려들어가는 핏물줄기는,
모작에서는, 욕조 바닥을 휘감는 핏물줄기는 마치 딸기시럽을 푼 듯 달달해보이는데,
그것마저 수채구멍이 막혀있어 거품을 토해내고 넘쳐나고 있습니다.


 


9:56
형사가 저택에 탐문하러 와서 살해당하는 장면 역시 모작에서는 원작과 달리 새로운 해석을 내놓습니다.
다만 이 비교영상에는 유튜버가 너무 짧게 처리해 안나왔지만, 이 살해장면의 98년 버전을 다른 유튜브 클립을 통해 전 씬을 감상하였습니다.
60년 원작은 줌인-트랙아웃으로 형사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집니다. 역시 히치콕은 아찔한 살해씬으로서 독자의 혼을 쏙 빼놓습니다.
그러나 98년 모작은 스크린 프로세스를 통해 형사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집니다. 어설픔에 웃음까지 나옵니다.

또한 맥락없는 인서트 숏 두 컷을 삽입하여 구스반산트만의 재해석 씬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앞서 "샤워실 살해장면" 만큼이나 이해불가 황당한 해석일 뿐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몇몇 쇼트들은 원작 캐릭터의 해석에 심각한 오류들을 보여줍니다.
원작에서는 퍼킨스가 창문의 꽃무늬 커튼을 젖히며 경계를 하는데, 모작에서는 위아래로 잡아당기는 블라인드로서 경계를 합니다.
원작의 화려한 장식과 물건들로 채워진 엄마의 화장대는, 심플하고 검소한 화장대로 바뀝니다.
원작에서는 퍼킨스가 즐겨듣던 베토번의 '에로이카' 비닐이, 모작에서는 컨츄리 뮤직의 비닐로 바뀝니다.
원작의 퍼킨스의 내밀한 일기장은, 모작에서 성인잡지로 둔갑합니다.
이같이 인물과 관계된 사물들은, 그의 심리를 추정하는 중요한 동기이자 모티프이지만, 모작에서는 그저 스테레오타입의 설정들로 대체될 뿐입니다.

위 언급된 원작에서의 소품들은, 퍼킨스가 엄마에게 의존적인 대단히 나약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여성적이기도하고

동시에 일기를 쓰며 내적인 자기분열의 고통을 겪고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일기장은 퍼킨스에게 다층의 심도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 입니다.
그러나 모작은 일기장이 사라지고 그저 성인잡지나 보는 그저그런 평면적인 사이코킬러로 격하시켜 버립니다.




13:09
원작에서 퍼킨스는 나약하게 제압당하며 광기어린 울부짖음과 함께 포박당합니다.
이때 히치콕은 퍼킨스의 오른손에 든 식칼을 트랙인하여 클로즈업하고,
다음컷에서는 가발이 벗겨지는 퍼킨스 얼굴의 클로즈업에서 트랙아웃 합니다.
다음컷에서는 가발을 클로즈업되고,
다음컷에서는 엄마의 해골을 클로즈업하며 씬을 끝냅니다.
이러한 히치콕의 연출은, 정체성 사이에서 분열하는 퍼킨스의 내적 모습을 식칼과 가발로써 외화시켜 단 몇 쇼트의 클로즈업만으로 효과적으로 연출됩니다.
이처럼 원작이 여자를 살해하려는건지, 퍼킨스 자신을 살해하려는건지, 엄마를 살해하려는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하고 불가해한 퍼킨스의 심리를 식칼의 클로즈업과 가발의 클로즈업으로서 시각화시켰다면,


모작은 가발 쓴 힘좋은 돼지가 쉽사리 제압당하지도 않으면서,
카메라를 흔들고 괜히 유리로된 장식장을 깨부수며 액션을 강조합니다. 구스 감독은 원작을 그저그런 삼류영화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13:54
마지막 장면. 체포된 퍼킨스는 모포를 어깨에 걸치고 유치장에 앉아있습니다.
평각의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향해 점점 트랙인하여 들어갑니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조명이 양 측면에서 눈과 코 이마 입주변에 분명한 음영을 드리우며

그의 불안과 음울함, 동시에 소름끼치는 그의 분열증을 다시한번 보여줍니다.
오직 퍼킨스의 메쏘드와 히치콕의 트랙인만으로 1분여의 롱테이크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원작 <싸이코>는 러닝타임 내내 명장면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 이 결말의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 중의 명장면일 것입니다.
결국 히치콕의 <싸이코>는, 첫시퀀스의 실내 검은 방의 실체를, 중간,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60년대초 미국사회에 대한 히치콕식의 장르적 스릴러로서의 질문일 것입니다.

그 싸이코는 지금도 변하지않은 21세기 미국사회를 내면이기도 할 것입니다.

모작은 어떻습니까. 부감의 카메라가 어설픈 베끼기를 시도하면,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배우가 파리에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조명은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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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11 달새울음  
1/3 정도 읽다가 낼 다시 정독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접어둔 채 좋아요 꾸~욱 누르고 갑니다.
저 역시 구스 반 산트의 싸이코는 보지 않았는데(못한게 아니라) 재해석이 아닌 모작이라는 평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스 반 산트와 히치콕의 싸이코를 다시 봐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드는 글입니다 ^^;;;;
12 리시츠키  
유튜브 영상 15분이,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제법 요약을 잘해놔서 궂이 영화들을 다시볼필요는 없을거 같습니다~~
차라리 유튜브 비교영상을 한번더 보심을 추천!!ㅎㅎ

제 글의 요지는, 98년 모작이 조명설계를 잘못해서 아주 그냥 돌이킬수없는 실패작이다 ... 뭐 이정도입니다.
똑같은 얘기 반복적으로 쓴 거라.... 제 글도 궂이 다 안 읽어도뭐ㅋㅋ
11 달새울음  
유툽 영상을 두세번 봤더니 다행이도 구스 반 산트의 사이코는 안봐도 되겠구나 싶어졌습니다.
두 비교 영상을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고 카메라 앵글도 조금씩 다른데 최신께 더 후지구나라는 느낌...
흑백으로 명암대비를 살린 스릴감이 컬러에선 전혀 발현되지 못하고 있구나 정도의 느낌 정도만 들었는데...
리시츠키님이 그 차이들을 디테일하게 설명하신 글을 마저 읽으니 제가 느꼈던 위화감에 대한 해답을 주신거 같네요.
글도 두세번 다시 잘 읽었습니다. ^^
12 리시츠키  
글죠. 원작의 흑백화면에서 히치콕이 치밀하게 구성한
빛과 그림자의 그 미스테리하고 정신병적인 기운과,
인물들의 불안과 긴장들이 장면 장면마다 담겨있는데,

모작은 분홍색 등의 컬러풀한 톤이라던지, 너무 밝은 조명들로 인해,
원작의 미스테리함과 긴장을 완전히 죽여버리는거 같더라구요.
글고, 제가 원래 배우들 욕은 잘 안하는데, 모작의 주연 남여 배우들은 .... 정말이지 좀...ㅎㅎ

그나저나 제가 원작만 다서여섯번 본거 같은데,
이번에 비교영상으로 짧게나마 원작을 다시 보니,
새삼 안소니 퍼킨스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네요.
암튼, 부족한 글 재미나게 읽어주시니 저야말로 캄사합니다~~^^
11 달새울음  
앤 헤이시도 문제지만 그건 연기자 탓이라고 하고...
문제는 노먼 베이츠역의 빈스 본 같아요...
싸이코는 심약한 느낌의 싸이코인데 프로필 보니 빈스 본의 키가 198이네요.
마이클 마이어스 같은 싸이코로 해석한건지 ㅋㅋㅋㅋ
12 리시츠키  
제 말이요~ 노먼 베이츠는 그런 캐릭터가 아닌데 거참,
액션 배우가, 심약하고 내면 연기까지 있는 그런 배역을 무리하게 연기한듯 합니다.

마이클 마이어스 연기도 엄청난데, 그 역할도 힘들듯합니다~ ㅎㅎ
13 에릭카트먼  
구스 반 산트의 버전을 안 보셨다니...
역시 선견지명... 배우신 분^^ ㅋㅋ
대놓고 컨닝하다가 한 줄도 아니고 두 세줄씩 밀려쓴 것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ㅋㅋ
하지만 걸작을 모방하겠다는 깡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그래도 시간나시면 한 번 보시는걸 추천드려요
시원하게 욕 박을 수 있거든요 ㅋㅋㅋ
아니면 진짜 취저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ㅋㅋ
저 믿고 한 번 보시죠? ㅋㅋ
12 리시츠키  
베끼기도 실패해서리....
그리고 주연배우들~ 아 심각합니다 ㅋㅋ
그리고 촬영에 크리스토퍼 도일이라.... 우씌!!ㅎㅎ

못믿겠습니다~ㅎㅎ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