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우 김윤석이 찍은 <미성년> 보셨나요?
작년에 나온 한국 영화는 지난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울합니다.
<기생충>의 돌풍에 다른 영화들은 모두 침묵해야 했으니까요.
다른 영화들이 평가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유독 <벌새>가 그나마 평가가 좋았는데 이것도 사실 외국 영화제에서 먼저 알아줘서 국내 상영에 도움이 되었죠,
요며칠 사이 두 편의 한국 영화를 봤습니다.
하나는 작년에 흥행 몰이를 한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였고 다른 하나는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이었습니다.
<엑시트>는 정말 한심했습니다.
청년층의 취업난을 독가스 살포라는 재난과 연계시켜 추락의 공포를 환기시키는 설정은 높이 살만합니다.
하지만 그 좋은 소재를 두고 감독은 클로즈업과 쇼트 분할이라는 기본기가 안되어 있더군요.
화면을 보고 있으면 이 감독은 할 줄 아는게 없구나라는게 절로 느껴집니다.
<미성년>은 배우 출신의 김윤석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해서 처음부터 의심스러웠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훌륭한 배우 겸 감독이 있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잠깐의 객기로 마무리 되니까요.
<미성년>은 불륜 남녀의 딸들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학교의 여고생인 두 아이는 각자의 엄마와 아빠가 서로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미성년인 아이들이 어른스러워 보이고 부모들이 철없는 아이들처럼 느껴지지요.
영화가 시작되고 10분동 안되어서 이 영화에 반했습니다.
스토리나 배우의 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물론 이것도 훌륭하죠).
김윤석은 쇼트를 찍을 줄 아는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화면 구도, 쇼트의 길이, 쇼트와 쇼트의 연결이 모두 탁월합니다.
정말 놀랬던 것은 바람난 남자의 아내(염정아)가 불륜녀(김소진)를 찾아 그녀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왔을 때의 장면입니다.
염정아가 가게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댓돌에 의자를 벗는데 그 장면을 신발만 클로즈업으로 보여줍니다.
'저 쇼트를 왜 넣지?'라고 다소 꺄우뚱하는 장면이지요.
몇 쇼트가 지난 뒤, 김소진이 주문 받으러 등장할 때 염정화의 신발 곁에 나란히 신을 벗습니다.
그걸 똑같은 구도에서 클로즈업으로 보여줄 때, 이 감독은 정말 쇼트를 찍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게 느껴졌습니다.
김소진의 등장을 그냥 보여줬다면 얼마나 밋밋했을까요?
그것을 신발을 통해 두 사람의 충돌을 예고하듯이 찍었습니다.
몇몇의 씬들이 약간 거슬리기는 했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합니다.
김윤석 감독이 앞으로 영화를 많이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정말 영화를 제대로 찍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