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디터

영화이야기

글래디에디터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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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의 티 - 말 등자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기병과 승마 장면이 꽤 많이 나옵니다. 이때부터 유심히 보았는데, 그것은 말에 등자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등자는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듯이 안장에 달린 발받침대인데, 로마시대 당시 서양에는 등자가 없었습니다.

유럽에 등자가 발명된 것은 훨씬 후인 중세때 일로 이때 당시 기병들은 등자없이 그냥 안장에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등자가 없기 때문에 말을 탄 사람들은 허리는 세우고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말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여서 자세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말을 다루는 데에만 무척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고, 앉아 있는 모습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좀 어쩐지 어색해 보인다고 할까요? 중장비를 휘두를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 기병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익숙해질 수 없으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특기 중의 특기였으며, 이러한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을 수 있는 부를 가진 귀족만이 기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기병을 보면 그래서 모두 경기병이죠. 등자가 발명된 이후에 서양의 기병들은 중장갑을 한 기병으로 바뀝니다. 참고로, 로마의 귀족 자제들은 모두 기병으로서 전쟁에 참전하여 군사경험을 쌓고, 이후에 장교로 진출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부분이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으나, 서부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안정된 승마자세들이어서 그냥 등자를 사용한 것 같군요. 특히 첫 장면에서 게르만족에 사자로 파견된 한 기병이 목은 없어지고 몸통만 말안장에 달린 채 돌아오는 장면이 보이는데, 잘은 몰라도 튼튼하게 사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등자없이 과연 그런 자세가 나올 수 있을지.

아무튼 이 부분은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옥의 티2 - 빨간 망토
보통 로마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군인들이 빨간 망토를 휘날리는 모습입니다. 특히 기병과 근위대로 나오는 군인들은 대부분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죠. 그러나, 이건 순 거짓말입니다. 당시 빨간 천은 굉장히 비싼 염색천이었다고 합니다. 귀족들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천이었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빨간 망토를 두를 수 있는 사람은 최고사령관 정도였습니다. 이걸 글라디에이터에서도 기병 전체가 다 두르고 있더군요. 다행히 근위대까지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근위대는 거의 '삼총사'에서 볼 수 있는 프랑스 군인들 같은 복장을 하고 있더군요.

거꾸로 글라디에이터에서 최고사령관 막시무스는 아무 망토를 걸치지 않았더군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빨간 망토는 최고사령관의 권위의 표시이며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을 걸치지 않다니. 전투 시에는 이 붉은 깃발을 진영의 한복판에 높이 세우는 것으로 전투개시명령을 대신합니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붉은 천인데, 저렇게 기병 전원에게 빨간 망토를 두르게 하면서도 정작 최고 사령관은 아무 망토를 걸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코모두스가 청색 망토를 걸치고 있고, 이후 장면에서도 아들 코모두스가 계속 청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는 청색을 대단히 좋아해서 옷부터 시작해서 청색을 무척 많이 사용하였습니다만, 로마제국이 프랑스가 아닙니다.

황제도 평시에는 원로원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흰색 토가를 걸치고, 전시에 전선에 나와 있으면 군복과 갑옷을 입었거나, 여전히 흰색 토가를 두르는 것이 기본입니다. 전투 후의 군막에서 장면도 그렇고, 마치 유럽 중세의 왕실을 보는 것처럼 의상을 갖추었더군요.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군막 자체도 프랑스 왕가의 군막같더군요.


# 옥의 티3 - 전투장면
전투장면에서도 옥의 티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전투대형입니다.

당시 로마군의 주력은 중무장보병으로서, 하스탈리, 프린키페스, 트레알리로 불리는 연령에 따라 구성됩니다. 하스탈리는 전투경험은 적으나 체력은 왕성한 17세 이상의 젊은이로 구성되며 병력 수는 군단별로 2400명 가량합니다. 프린키페스는 절정의 핵심 전력으로서 2열에 섭니다. 역시 2400명. 트레알리는 노장들로 체력은 떨어져도 전투경험으로만 따지면 역전의 노장들이죠. 이들이 제일 후위에 서서 전선의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다시 120명 단위(하스탈리와 프린키페스)의 소대와 60명 단위의 소대(트리알리)로 구성되고, 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됩니다. 또 한 소대 내에서도 상호간에 한 사람씩 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전열이 무너지게 되면 뒤로 후퇴하는데, 후퇴와 공격이 서로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병력 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듯합니다. 앞서 언급한 병력 수는 시오노 나나미가 포에니 전쟁을 기술한 부분에 언급된 숫자이며, 에드워드 기본이 쓴 '로마제국쇠망사'의 1권에 보면 1000명 단위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영화에서는 로마군 특유의 진형이 무시되어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식의 팔랑스(Phalax)를 보는 듯한 대형으로 게르만군으로 진격해 들어갑니다. 서로 찰싹 달라붙어서 말입니다. 아니, 17~19세기 까지 유럽 육군의 전형적인 소총부대 보병이 전진하는 형태에 가까워 보입니다. 아마 감독이 17~8세기 전투를 다룬 영화를 많이 본 듯합니다.

진형이란 측면에서 또 보아야 할 것이 궁병입니다. 궁병을 이용한 사전 공격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궁병 뒤에 중무장 보병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이런 배치는 원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군에서 핵심 전력은 중무장보병이어서 이들이 늘 앞장서서 배치되며, 궁병과 투석병 등을 비롯한 이른바 경무장 보병은 외곽이나 후방에 배치되어 중무장 보병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기병은 상황과 지형에 따라 달라지지요. 궁병 뒤에 중무장 보병이 배치되었는지 여부는 저도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만,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병간에 근접전 장면도 문제가 있습니다. 대개 중무장보병들이 격돌하게 되면, 중무장보병들은 일단 먼저 들고 있던 투창을 던집니다. 투창을 집중적으로 적진으로 던진 뒤에 장검을 빼어들고, 마지막엔 앞서 언급한 Gladius를 사용하는 근접전을 펼치는게 기원전 3세기 이후 로마군의 전통적인 전법입니다. 진형도 진형이지만 투창 던지는 장면은 어디론가 팔아먹었더군요.

그 외에 사전 전투장면 각종 투석기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로마군이 이런 장비들을 공성전(攻城戰)이 아닌 전투에서 사용한 것은 로마의 군사력이 약화되어 가던 시점에서인 걸로 아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영화에서 A.D. 180년이라고 했는데(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은 해도 AD180년입니다), 그 시점에선 아직 그럴만한 시기는 아닌 걸로 아는데…… 이걸 옥의 티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글을 올렸을때 어떤 후배가 &quot;겨울철에 전쟁을 했나요?&quot;라고 물어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로마군은 겨울철에는 숙영지에서 푹 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이걸 굳이 옥의 티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게르만족들이 로마군의 휴식기간을 고려해서 전쟁을 펼칠 이유는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이죠.

옥의 티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숙영지 장면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숙영지 장면은 상당히 잘 그린 것은 틀림없습니다. 로마시와 콜로세움을 재현하고, 검투흥행상인(?) 프록시모까지 재현한 선수들이 제작한 것이니 만큼 뭐 틀림없겠지요. 로마군 숙영지는 기록에 의하면 요새도시였다더군요. 저녁이 되면 무조건 사각형의 대형 숙영지를 만드는데, 전투 중에도 이 숙영지만은 꼭 만든다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군단 전체가 공병대로 바뀌는 겁니다. 다만, 영화에서 묘사된 숙영지에는 동서남북으로 뻗어진 넓은 중앙도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마군의 숙영지는 정방형으로 가운데에 총사령관의 막사가 있고, 그 주변에 장교들의 막사가 설치됩니다. 그리고 총사령관의 막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뚫린 넓은 도로가 설치된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빠져 있더군요. 아마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작업에 지쳤었나 봅니다.

숙영지 건설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지금 유럽의 도시는 이들 로마 군단병들이 퇴역하면서 건설한 곳이 많습니다. 독일의 쾰른이나 영국의 바스같은 곳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당시 로마는 퇴역하는 군단병을 그대로 원래 주둔지 근처에 집단으로 거주시켰습니다. 대부분 기존 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에 군복무시절 익힌 건설 및 토목공사 기술을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퇴역 군단병을 한 군데 집단거주시키면서 얻는 이점은 몇 가지 있습니다. 군복무시절에는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 퇴역 군단병들이 현지 여자들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융합을 달성한다는 점(로마인은 혼혈이나 민족 출신 등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오늘날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그리고 한국인들의 인종차별도), 미개척지에 거주함으로써 개척지를 늘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이 될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투교범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FM이라고 호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Filed Manaul의 약자입니다). 이 전투교범을 만들어 철저하게 이용한 최초의 군대가 로마군입니다.


# 박력 넘치는 기병 돌격장면
기병이 뒤로 돌아서 게르만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전술이 로마의 전술로 자리잡은 것은 영화의 시점에서 생각하면 약 400년 정도 됩니다. 기병을 활용한 공격전을 본격적으로 구사한 사람은 유명한 알렉산더대왕이고, 그 후 2차 포에니전쟁에서 이탈리아반도로 쳐들어간 한니발이 허약한 로마군 기병을 상대로 철저하게 써먹은 다음에 (그러니까 로마는 당할대로 당한 후에) 스키피오(이 사람은 나중에 '아프리카의 스키피오'라는 의미의 '아프리카누스'라는 명예 호칭을 받게 됩니다)가 고스란히 되갚아주면서 로마군의 기병전술의 기본으로 정착됩니다.

물론 현대전에도 이 '우회 침투'는 기본전술 중에 하나지요.


# 전투지역은 어디인가?
도대체 어느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을까? 팜플렛에 보면 영국의 어느 숲이라고 나와 있는데, 물론 이는 촬영지를 언급한 것뿐입니다.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로 변한 막시무스가 황제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막시무스는 자칭 '북부군 사령관'이라고 했습니다. 번역만 그런 것인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북부군 사령관'이란 표현은 아마 번역자가 소설 데프콘 - 한중전쟁' 편을 열심히 읽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만, 얼마 전에 비디오를 보면서 그 부분을 다시 들어보니까 확실히 'North Army Commandor'라고 하기는 하더군요.

역사서를 보면,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는 도나우강(또는 다뉴브강) 주변의 숙영지에서 죽었습니다. 실제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다뉴브강 유역에서 게르만족과 전쟁 도중에 사망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코모두스가 암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코모두수를 황제로 지명한 사람이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황제 자신이거든요. 단지 영화를 위한 설정정도로 생각해야 할 듯 싶습니다.

아무튼 이 두 가지 단서를 놓고 생각해보면, 영화에서는 단순히 게르만족과 전투라고만 했을 뿐 어디서 어느 부족과 싸웠는지는 자세히 언급은 없었습니다만, 다뉴브강 유역의 반달족이나 고트족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판노니아 일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속 막시무스의 직함도 '북부군 사령관'이 아니라 판노니아 사령관의 직함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판노니아는 현재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고지 게르마니아 및 저지 게르마니아 지역과 함께 전통적으로 로마 방위의 핵심지역입니다.

판노니아 일대가 게르마니아로 포함시켜도 됩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그것은 현대의 민족 분포만을 생각해서 나온 오류입니다. 지금이야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등이 모두 슬라브족이 살고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모두 게르만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독일 지역에 프랑크족, 앵글족, 작센족(앵글족과 작센족이 브리타니아 섬으로 건너가 켈트족을 축출하면서 잉글랜드를 세웁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앵글로-색슨이라 불리죠), 수에비족, 바타비족(네덜란드) 등이 살고 있었고, 지금의 발칸반도와 동유럽 일대에는 반달족, 고트족 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슬라브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각설하고, 영화의 주무대가 된 전투지역은 도나우강 일대로 추정된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 옥의 티4 - 코모두스의 개선식 장면
코모두스가 개선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로마의 개선식은 제일 먼저 노획한 전리품들이 먼저 행진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이 행진을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을 지휘한 장군이 백마 4필이 이끄는 전차를 몰고 들어옵니다. 제정에 접어든 이후에 황제가 전선에 다녀온 경우라면, 황제가 이 개선마차를 몰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순서가 뒤바뀌어 개선마차가 제일 먼저 들어오는 군요. 그것도 백마 4필이 아니더군요. 코모두스가 개선마차를 몰고 들어오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이 개선마차에 탈 수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여자가 군인이었던 적도 없었을 뿐더러 군대를 지휘한 적도 없습니다. 근데 영화에 보면 누나 루실라가 같이 개선마차에 타고 들어오더군요. 이것도 옥의 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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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3 에스카  
후아~~  폭넓은 지식에 감탄...!! 
1 김성준  
우와..새로운 느낌이 팍팍 오네요.좋은 정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