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의 이해할 수 없는 허술함
영화 비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내가 닉네임으로 쓰는 '하스미 시계있고'는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를 장난스럽게 변형한 것이다.
(프로필 사진 또한 그분의 얼굴!)
그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어떤 책에서 샹탈 아커만의 다큐 <국경 저편에서>(2002)의 허술한 연출을 비판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한 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드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의 마을의 모습을 담담하게 찍은 작품이다.
영화 장면 중에는 샹탈 애커만이 멕시코 노파를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는데, 노파는 생사를 모르는 자신의 아들을 그리워하다 눈물을 닦으려고 가슴이 북받쳐 손수건을 꺼낸다.
그런데 그만 가슴에 달아놓은 핀마이크를 건드리는 바람에 마이크가 울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아마추어 수준의 연출이라고 비판하는데, 핀마이크는 TV에서나 사용하는 것이지 영화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특유의 흥분한 어투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다가 우연히 정성일 감독의 <천당의 밤과 안개>(2015) 이후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 시간에 정감독의 일화를 듣고 이해가 되었다.
정감독은 왕빙의 다큐를 찍으면서 핀마이크로 깨끗하게 소리를 따내려고 했는데 촬영 3일만에 핀마이크를 부셔먹고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이 존경하는) 왕빙 감독처럼 카메라에 달린 마이크 하나에 의지해서 촬영을 마쳤다고 스쳐가듯이 이야기를 전했다.
이 에피소드를 하스미 시게히코에 대입시켜 보면, 현장음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깨끗한 음질에 연연하는 것 자체가 현장의 진실을 담는 다큐멘터리의 기본을 모르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일게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벌새>의 허술함은 다큐멘터리의 정신과는 무관하다. 그저 좋은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허술함'의 사례로 보면 좋을 듯 싶다.
<벌새>는 국내 정식 개봉도 하기 전에 해외에서 스물 일곱개의 상을 받았다는 전적에서 알 수 있듯이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차곡차곡 쌓아가며 감정을 흔드는 연출, 찰랑이는 소녀의 머리카락과 그 위에 부서지는 빛을 잡는 카메라, 감정을 내뱉기 보다는 안으로 삼키며 억제하는 주연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허술한 연출이 눈을 놀라게 만든다.
학원 한문 선생 영지(김새벽)이 칠판에 쓰는 한자는 누가 봐도 한문을 공부한 사람의 글씨가 아니다.
글씨가 삐뚠 것을 넘어서 한자 한자 쓸 때마다 영지 선생은 한문 책을 보면서 글을 쓴다.
한자의 획순도 틀렸을 뿐더러 놈 자(者)자 같은 기본 한자도 白를日로 잘못 쓴다.
이 장면에서는 연출도 우스운데 영지 선생이 칠판에 쓴 한자가 다음 쇼트에서는 다른 문장으로 바뀌어져 있다.
다른 장면을 한번 보자.
은희(박지후)가 수술을 위해 병원 대합실에 아빠(정인기)랑 앉아 있는데 화만 잘내고 무정한 아빠가 갑자기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하는 씬이 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포커스는 우는 아빠 쪽에 두거나 아니면 딥 포커스로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앞 쪽에 있는 은희에게 맞추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희한한 쇼트가 만들어진다.
짐작컨대 김보라 감독은 허우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의 80년대 영화들을 많이 본 사람이다.
그들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연출의 밀도가 상당한 장면에서는 구현이 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다.
티에 옥이 있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옥에 티가 있으면 두드러진다.
나는 이 감독이 앞으로 더 높이 나는 벌새가 되었으면 싶다.
영화를 전공한 감독의 이력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겠네요.
한문 관련한 부분은 한문을 배우지 않은 세대여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문을 배우지 않고, 배운다 해도 마치 제2외국어처럼 익히는 요즘 세대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듯합니다.
제작진들도 몰라서 컨트롤하지 못한 거 같네요. 그러니 획순 틀리는 걸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겠죠.
시사회를 본 기자들도 그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없습니다. 그들도 한문은 거의 모르는 세대일 겁니다.
독립영화니까 일정 부분은 눈감아주고 넘어가게 됩니다.
다른 장소도 아닌 '한문학원' 장면인데 말이죠.
숲이 좋으면 나무의 흠결이 묻히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평론가들의 극찬하는 벌새는 '극찬'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무의 흠결도 영화의 엄연한 한 부분이니까요. 신인감독의 가능성 있는 수작을 '불후의 걸작'처럼 빨아댈 이유는 없겠죠.
그게 신인 감독에 대한 격려 차원일 수는 있겠지만. 벌새는 준수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영화는 아니라고 보여지고
군데군데 헛점이 보였지요. 그게 독립영화의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감독의 꼼꼼하지 못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유까지 관객이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죠. 그냥 지적할 것 지적하면 끝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위 맨발여행님의 방어는 불필요해 보이는군요.
지적한 부분은 스크립터 선에서 쉽게 발견해야 하는 점인데 그야말로 '기본'의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한문세대임이에도 그런 장면의 허점을 발견 못한 저의 무심한 감상도 문제네요.
"티에 옥이 있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옥에 티가 있으면 두드러진다. 나는 이 감독이 앞으로 더 높이 나는 벌새가 되었으면 싶다. "
위 문장으로 살펴볼때 무조건적으로 까는 것이 아닌 해댱 영화에 애정으로 지적하신걸로 보이는데...
모든 회원들이 이런식으로 대응을 하시면 그 어느 누구도 글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쓴글에 누군가가 "지나가는 개가 웃습니다." 라고 말하면 저라도 그리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고요...
당연 그 댓글에 대한 반응이 차분할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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