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장국영의 靈
영화 <아비정전>의 기억은 흰 '난닝구'를 입은 장국영이 'Maria Elena'의 리듬에 맞춰 맘보춤을 추는 장면에 붙들린다. 영원 같던 그 장면은 아비와 수리진이 함께 했던 1960년 4월 16일의 1분 만큼이나 짧은 순간(러닝타임 25분 06초부터 25분 40초까지 34초 동안)이다. 그 한 장면으로 영화는 이미 끝났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 장숙평의 미술 작업, 시간을 잘라 먹어치우는 편집 기법, 세기말 홍콩의 몽환적인 공기, 끝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와 조악한 트랜지스터라디오의 모노톤 사운드 이미지 등은 덤이다. 홍콩은 내게 1년 내내 습한 비가 내리는 축축한 곳으로 각인됐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장국영과 장만옥의 사랑만 눈에 들어왔지만, 관람 회차가 거듭될수록(나이를 먹을수록) '미미'(유가령)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러준 엄마(반적화) 역시 수리진이나 미미처럼 아비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에게 집착하던 여자 중 하나였다. "날 실컷 미워해라, 적어도 날 잊지는 않을 테니..." 양엄마는 잊히는 게 두렵다. 아비의 미움을 받더라도 잊히는 게 두려워 아비의 생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그녀는 망각 대신에 원망을 선택한다. 제비족들이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걸 알면서도, 그 나이에 진짜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한테 잘해주면 좋고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자신을 속인다. 그녀는 미미의 미래다. 수리진은 자기를 새까맣게 소진하고 나서야 불같은 사랑(집착)을 마음에서 놓는다. 폭풍처럼 격하게 휘몰아치든 산들바람처럼 서서히 젖어들든, 사랑과 상처는 누구에게나 찾아와 청춘의 시간을 지독하게 채우고 흘러 지나간다. 아비의 행방을 쫓아 양모를 찾아간 미미가 "(사랑에 집착하는) 제가 어리석은 건가요?"라고 묻는다. 양모는 대답한다. "아니, 나도 젊었을 때 그랬으니까..." 그들의 사랑은 젊음의 것, 청춘에 바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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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은 잊히는 게 두려웠던 아비의 양모처럼 망각 대신 영원한 청춘과 죽음을 택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 모두는 수리진의 시간(1960년 4월 16일의 1분간)에 붙들려있다. 남겨진 이들은 지독하게 앓을 만큼 앓다가, 어느 날엔가의 수리진처럼 꿈속에서 아비를 만날 것이다. 해마다 4월 1일이 되면 알을 낳으러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들처럼 슬픈 눈을 한 장국영의 靈이 우리를 찾아오니까.
그런 영화들이 있는 것 같아요.
두 번 다시 볼 엄두가 안 나는...
어렸을 때 극장에서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란 영화를 보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달달한 할리우드 해피엔딩 영화만 보다가 엔딩 장면 때문에 처음 겪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거든요.
그 강렬함이 지금껏 남아서인지, 이상하게 그 영화는 다시 볼 엄두가 안 납니다.
<아비정전>은 EBS TV 등에서 종종 방영해주니까
반강제로 자꾸 보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제 같은 날 괜히 찾아 보기도 하고요. ㅎㅎ
작년 만우절 무렵에도 그렇게 영화를 다시 보고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를 잘라내고
조금 덧붙여서 올해도 재활용 했네요.
시간 나실 때 심심하시면 전문을 한 번 보시라고... ^__^
https://blog.naver.com/nicemonk/221506754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