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넷 이해 깊으신 분들께 질문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보면 닐이 잠긴 문을 따주러 헬기로 향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은 여기까지군' 이라는 말을 하는데
본인이 죽을지 어떻게 아는건가요?
아이브스는 문이 열린 시간에 기절해 있었고 닐이 자기를 대신해 총에 맞은걸 본사람은 주인공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자세한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죠.
본인이 죽게된다는건 어떻게 알게된건지 너무 궁금하네요.
11 Comments
영화 <테넷>에는 시간 여행을 통해 세상의 종말을 막으려는 조직이 있습니다. 임무의 민감성 때문에 캐릭터들은 종종 "우리는 황혼의 세계에 살고 있다. 황혼에는 친구가 없다."라는 문구를 반복합니다. 명목상이 문구는 스파이에게 비밀을 제공하지 않고 특정 영역에 대한 접근 권한을 얻기 위해 누군가가 누구의 편인지 식별하는 데 사용되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황혼"과 "황혼"이 희망과 재생을 의미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무언의 "새벽"은 절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하얀 빛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영화 초반에 자살 약을 먹고 죽음을 선택할 때 그는 "새벽"에 있으며 TENET 에이전트로 재탄생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영화의 끝과 제 3차 세계 대전을 막는 TENET으로 대표되는 "황혼"으로 이동합니다.
"친구가 없다"라는 문구는 주인공의 취급자이자 가이드인 Neil(Robert Pattinson)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황혼"으로 안내하는 주인공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결국 "새벽"에 이르러 죽습니다. 따라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미래의 진로를 바꾸고 제 3차 세계 대전을 막는 데 서로의 유령을 보게 되는 것이죠. 주인공이 "황혼"에 있을 때 닐이 죽기 때문에 워싱턴의 캐릭터는 그의 친구가 없다는 것이고요. 이 경우 이 문구는 주인공과 "황혼의 세계"를 통해 이동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낙관적인 전진을 알리는 반면 Neil은 "새벽"을 향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것은 문구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 일뿐입니다. 다른 이론적 단서는 그 반대가 실제로 사실이라고 제안합니다. 이 대안적인 해석에서 닐이 오는 미래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는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희망에서 시작하여 위기에 처한 절망으로 이동하고, Neil은 절망에서 시작하여 더 나은 시간을 향해 뒤로 이동하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황혼"과 "황혼"이 희망과 재생을 의미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무언의 "새벽"은 절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하얀 빛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영화 초반에 자살 약을 먹고 죽음을 선택할 때 그는 "새벽"에 있으며 TENET 에이전트로 재탄생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영화의 끝과 제 3차 세계 대전을 막는 TENET으로 대표되는 "황혼"으로 이동합니다.
"친구가 없다"라는 문구는 주인공의 취급자이자 가이드인 Neil(Robert Pattinson)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황혼"으로 안내하는 주인공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결국 "새벽"에 이르러 죽습니다. 따라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미래의 진로를 바꾸고 제 3차 세계 대전을 막는 데 서로의 유령을 보게 되는 것이죠. 주인공이 "황혼"에 있을 때 닐이 죽기 때문에 워싱턴의 캐릭터는 그의 친구가 없다는 것이고요. 이 경우 이 문구는 주인공과 "황혼의 세계"를 통해 이동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낙관적인 전진을 알리는 반면 Neil은 "새벽"을 향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것은 문구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 일뿐입니다. 다른 이론적 단서는 그 반대가 실제로 사실이라고 제안합니다. 이 대안적인 해석에서 닐이 오는 미래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는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희망에서 시작하여 위기에 처한 절망으로 이동하고, Neil은 절망에서 시작하여 더 나은 시간을 향해 뒤로 이동하는 것이죠.
애초에 말이 안되는 설정 위에 쌓은 스토리기 때문에 따지다보면 거의 모든 장면에서 오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깉습니다.
주먹만한 금속 덩어리 몇 개로 우주 전체의 시간을 뒤집을 수 있다는 깜찍한 설정을 던져놓고도 관객들을 그 이야기 속으로 빠뜨려 버리는 게 좋은 창작자의 힘이겠죠. ㅎㅎ
놀란 감독 영화들은 온갖 과학과 기술과 복잡한 설정들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싶을 정도의 공을 들이고 때론 본인도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플롯을 짜지만 결국 그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단 하나의 메세지를 향하게 구성하는 능력이 탈인긴급이 아닌가 싶은 작가죠. 그래서 전 스토리의 흐름을 올라타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만 구조를 탐구하고 얼른 그걸 서핑보드 삼아 감독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에 몸을 던지는 정도로 그의 영화를 즐깁니다. 그렇게 맡겨도 결코 실망시키는 일이 없는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인 게 분명하니까요.
궁금해하는 대목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주인공과 닐은 자연적 시간순으로 보면 아직 만나기 몇 년 전이고 우리가 영화에서 본 닐은 전부 본인의 자연적 타임라인에 비해 무척 과거에 와서 또 순행 역행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그 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본인도 다 기억 못할 정도겠죠.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시점에 주인공을 만나기 전인 닐은 대학교 신입생 정도일 수도 물리학 석사과정 쯤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수 년 후 하필 주인공 눈에 띄어서 인생이 꼬였거나 혹은 더 어린 닐을 주인공이 만나서 물리학 공부를 하라고 등을 떠밀었을 수도 있는 거죠.
제 요점은 아무리 길고 복잡한 영화라도 시나리오에 담지 않은 바깥 이야기를 생각하면 우리가 본 것은 매우 작은 단편적 사건 중에도 카메라가 비춘 지점과 각도의 토막들 뿐이기 때문에 그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각자의 상상의 영역이 된다는 뭐 그런 얘기입니다. 사토르가 죽기 직전에 한 말 중 '경험 바깥은 믿음의 영역'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앞서 말한 서핑의 예를 이어간다면 울트라햏님은 감독이 휘저어놓은 파도를 타다가 잠시 파도에 마음을 뺏겨 중심 잃고 물에 빠지신 뭐 그런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감독이 관객을 파도에 휩쓸리게 만들고 그걸 무척이나 즐기는 고약한 취향인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얼른 보드 잡고 다시 즐길 파도가 넘쳐나는 초대형 파도풀장 주인이기도 하죠. 그게 놀런의 영화를 즐기는 재미이기도 하구요.
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쓰느라 횡설수설이지만 제 요지는 대충 적은 것 같고... 영화는 논문이 아니므로 즐기고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고 전부다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책상으로 와서 오타 수정하면서 보탭니다....
닐이 지하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을 수도 있고 그저 문을 열어주러 가야한다고만 생각했을 수도 있고... 탈린 전투 중에만도 닐이 몇 명이 돌아다닌 건지 지금 생각해보니 저 두 옵션 이외의 것도 상상해봐야하나 싶기도 하고...덕분에 꽈배기 풀기 놀이 좀 해보게 생겼습니다. ㅋㅋ
아이브스의 경우는 닐의 자기 말고 누가 문 열어주겠냐는 말을 듣고서 수많은 인버전 경험 덕에 대충 그렇게 된 거로군 하고 알아챘다고 보면 될 것 같고요.
그럼 즐감.
주먹만한 금속 덩어리 몇 개로 우주 전체의 시간을 뒤집을 수 있다는 깜찍한 설정을 던져놓고도 관객들을 그 이야기 속으로 빠뜨려 버리는 게 좋은 창작자의 힘이겠죠. ㅎㅎ
놀란 감독 영화들은 온갖 과학과 기술과 복잡한 설정들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싶을 정도의 공을 들이고 때론 본인도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플롯을 짜지만 결국 그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단 하나의 메세지를 향하게 구성하는 능력이 탈인긴급이 아닌가 싶은 작가죠. 그래서 전 스토리의 흐름을 올라타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만 구조를 탐구하고 얼른 그걸 서핑보드 삼아 감독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에 몸을 던지는 정도로 그의 영화를 즐깁니다. 그렇게 맡겨도 결코 실망시키는 일이 없는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인 게 분명하니까요.
궁금해하는 대목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주인공과 닐은 자연적 시간순으로 보면 아직 만나기 몇 년 전이고 우리가 영화에서 본 닐은 전부 본인의 자연적 타임라인에 비해 무척 과거에 와서 또 순행 역행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그 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본인도 다 기억 못할 정도겠죠.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시점에 주인공을 만나기 전인 닐은 대학교 신입생 정도일 수도 물리학 석사과정 쯤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수 년 후 하필 주인공 눈에 띄어서 인생이 꼬였거나 혹은 더 어린 닐을 주인공이 만나서 물리학 공부를 하라고 등을 떠밀었을 수도 있는 거죠.
제 요점은 아무리 길고 복잡한 영화라도 시나리오에 담지 않은 바깥 이야기를 생각하면 우리가 본 것은 매우 작은 단편적 사건 중에도 카메라가 비춘 지점과 각도의 토막들 뿐이기 때문에 그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각자의 상상의 영역이 된다는 뭐 그런 얘기입니다. 사토르가 죽기 직전에 한 말 중 '경험 바깥은 믿음의 영역'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앞서 말한 서핑의 예를 이어간다면 울트라햏님은 감독이 휘저어놓은 파도를 타다가 잠시 파도에 마음을 뺏겨 중심 잃고 물에 빠지신 뭐 그런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감독이 관객을 파도에 휩쓸리게 만들고 그걸 무척이나 즐기는 고약한 취향인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얼른 보드 잡고 다시 즐길 파도가 넘쳐나는 초대형 파도풀장 주인이기도 하죠. 그게 놀런의 영화를 즐기는 재미이기도 하구요.
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쓰느라 횡설수설이지만 제 요지는 대충 적은 것 같고... 영화는 논문이 아니므로 즐기고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고 전부다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책상으로 와서 오타 수정하면서 보탭니다....
닐이 지하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을 수도 있고 그저 문을 열어주러 가야한다고만 생각했을 수도 있고... 탈린 전투 중에만도 닐이 몇 명이 돌아다닌 건지 지금 생각해보니 저 두 옵션 이외의 것도 상상해봐야하나 싶기도 하고...덕분에 꽈배기 풀기 놀이 좀 해보게 생겼습니다. ㅋㅋ
아이브스의 경우는 닐의 자기 말고 누가 문 열어주겠냐는 말을 듣고서 수많은 인버전 경험 덕에 대충 그렇게 된 거로군 하고 알아챘다고 보면 될 것 같고요.
그럼 즐감.
추카추카 11 Lucky 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