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랑의 1945년작 <진홍의 거리>가 동일 원작을 모태로 함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와 이주자로서의 감독의 정체성이 얽혀 관객을 내재화시키는 도식의 선명성이 확연했다.
원작으로부터 예술-현실의 상호침투와 정쟁을 매혹적으로 영화의
자리에까지 스며들게한 작법은 두 편이 대동소이하다.
본편을 표면적으로 프리츠 랑의 작품과 구분되하는 지점은 단순히
각색을 통한 캐릭터의 발현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프롤로그의 인형극에서의 죽비, 오프닝에서의 카메라 앵글의 위치,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 인물과 열려진 창 그 너머의 현실 등보다
단연 주목해야할 시퀀스는 젊은 남녀의 춤이라는 행위를 포착함에 있어서의 카메라의 운용이다.
놀랍게도 이 지점에서 카메라는 고정을 포기하고 두 사람의 유사 원형적 움직에 따라
카메라 스스로 흔들림을 동반한채 기이한 프레임의 절단을 구성한다.
극 전체에서 거의 유일한 유동성으로서의 카메라는 해당 장면의 인물들에 대한 불안은 물론이고
그 장소가 예술을 거래하는 추잡한 공간임을 율동으로 지시함으로서
현실의 고정성을 기이한 안정으로 왜곡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춤이야말로 예술의 종점으로서 더할나위 없는 매혹이다.
추카추카 6 Lucky Point!
추카추카 47 Lucky Point!
고맙습니다.
그런데 임의로 자막제작자는 지우고 올리셨는데 그건 좀...
단평 : 원심력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프리츠 랑의 1945년작 <진홍의 거리>가 동일 원작을 모태로 함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와 이주자로서의 감독의 정체성이 얽혀 관객을 내재화시키는 도식의 선명성이 확연했다.
원작으로부터 예술-현실의 상호침투와 정쟁을 매혹적으로 영화의
자리에까지 스며들게한 작법은 두 편이 대동소이하다.
본편을 표면적으로 프리츠 랑의 작품과 구분되하는 지점은 단순히
각색을 통한 캐릭터의 발현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프롤로그의 인형극에서의 죽비, 오프닝에서의 카메라 앵글의 위치,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 인물과 열려진 창 그 너머의 현실 등보다
단연 주목해야할 시퀀스는 젊은 남녀의 춤이라는 행위를 포착함에 있어서의 카메라의 운용이다.
놀랍게도 이 지점에서 카메라는 고정을 포기하고 두 사람의 유사 원형적 움직에 따라
카메라 스스로 흔들림을 동반한채 기이한 프레임의 절단을 구성한다.
극 전체에서 거의 유일한 유동성으로서의 카메라는 해당 장면의 인물들에 대한 불안은 물론이고
그 장소가 예술을 거래하는 추잡한 공간임을 율동으로 지시함으로서
현실의 고정성을 기이한 안정으로 왜곡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춤이야말로 예술의 종점으로서 더할나위 없는 매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