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로 접어든 감독의 작법은 알려진 후기작들의 정숙과 단아와 같은 정서와 거리가 있다.
우스개로 말하자면, 한국 영화의 신파적 공식인 전반부의 웃음과 후반부의 감동 관습이
상기될만큼 친숙하거니와, 어머니=대지라는 등식이 폭포/역사/이야기/모성의 기호가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인간주의에서의 인간이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30대 감독의 응답이다.
그것은 일종의 순환이며, 그 순환 하에서 폭포의 면모에 얼굴을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서 얼굴이란 타자와의 동행을 넘어선 합숙을 지시하는데, '같이 지냄'의 속내에는 능히
자신의 과거를 순환하는 타자에 대한 드러내지 않는 이해라는 역지사지보다 한단계 위의
포용이 있다. 이 포용은 단순한 감내가 아니라, 언제든지 방자함을 훈계할 수 있는 권위가 된다.
미망인이 하인을 동원하여 자신의 새 남편이자 목사를 허공에 들도록 하는 수직 운동은 이같은
맥락 하에서 꽤나 코믹하고 적절한 행위다. 그것은 흡사 오프닝에서 폭포 강하의 반대편이다.
또다른 수직으로서 추락의 부상이 있고, 이것은 전반부의 은폐가 축조했던 긴장감을 파훼한다.
비록 초반부 이후 곧바로 폐기했지만, 성경에 지우친 문자주의 강독에 대해 본편의 낯선(?)
서사는 보이지 않는 종교성으로서의 인간의 시간을 엔딩에서 끝내 십자가 형상으로 제시한다.
미망인의 목적이자 거의 유일한 실체적 발언인 '살아왔던대로 살아가겠다'의 유지야말로
본편에서 인물이 주인됨의 자리를 보존해야하는 이유다. 거기에 결혼과 장례의 의식이 있다.
단 평 : 그 집에는 안밖의 주인이 있다.
30대로 접어든 감독의 작법은 알려진 후기작들의 정숙과 단아와 같은 정서와 거리가 있다.
우스개로 말하자면, 한국 영화의 신파적 공식인 전반부의 웃음과 후반부의 감동 관습이
상기될만큼 친숙하거니와, 어머니=대지라는 등식이 폭포/역사/이야기/모성의 기호가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인간주의에서의 인간이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30대 감독의 응답이다.
그것은 일종의 순환이며, 그 순환 하에서 폭포의 면모에 얼굴을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서 얼굴이란 타자와의 동행을 넘어선 합숙을 지시하는데, '같이 지냄'의 속내에는 능히
자신의 과거를 순환하는 타자에 대한 드러내지 않는 이해라는 역지사지보다 한단계 위의
포용이 있다. 이 포용은 단순한 감내가 아니라, 언제든지 방자함을 훈계할 수 있는 권위가 된다.
미망인이 하인을 동원하여 자신의 새 남편이자 목사를 허공에 들도록 하는 수직 운동은 이같은
맥락 하에서 꽤나 코믹하고 적절한 행위다. 그것은 흡사 오프닝에서 폭포 강하의 반대편이다.
또다른 수직으로서 추락의 부상이 있고, 이것은 전반부의 은폐가 축조했던 긴장감을 파훼한다.
비록 초반부 이후 곧바로 폐기했지만, 성경에 지우친 문자주의 강독에 대해 본편의 낯선(?)
서사는 보이지 않는 종교성으로서의 인간의 시간을 엔딩에서 끝내 십자가 형상으로 제시한다.
미망인의 목적이자 거의 유일한 실체적 발언인 '살아왔던대로 살아가겠다'의 유지야말로
본편에서 인물이 주인됨의 자리를 보존해야하는 이유다. 거기에 결혼과 장례의 의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