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The Fountainhead, 1949)

자막자료실

마천루 (The Fountainhead,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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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The Fountainhead, 1949)


킹 비더


자막제작 Paul Young님.


씨네스트에 이미나에게로님이 올려주신 자막을 조정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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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2 시간의항해
감사합니다.
23 다솜땅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고맙습니다.
11 시절인연2
고맙습니다
11 낙화유수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2. 8. 감상

단 평 : 교환이라는 경제

전작 <군중>의 서사는 카프라는 물론이고 근래 개봉한 애니 <소울>의 정반대편으로 지정될 수 있다.
그것은 가히 실체적 발견으로서 자괴감의 근거리로서 영화의 좌표를 언급하였다면 본편은 이제 이에
대한 직간접적인 강압과 동의를 첨가한다. 본편에서 수회에 걸쳐 '군중'이 대사로 언급되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본편은 군중이 왜 군중일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근거로서 플라톤의 철인론이라는 낡은
사유와 황색 저널리즘을 결합시켜 우중정치에 대한 공포감으로 전후 미국과 냉전의 시초를 반영한다.

이에 가미되는 바는 노골적인 남근으로서의 고립된 영웅성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매혹되는 순간의
촬영에서 앙각화된 숏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관계는 남근의 건설기계를 통해 역전으로 예정된다.
기실 남근적 기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성을 초월하는 품성이 인물들을 무화시킨다.
결말에서 게리 쿠퍼의 면모는 카프라에서의 재연으로 장황하고 지루한 미국식 개인주의의 반복이지만
둘 사이의 간극은 군중이라는 존재의 불신이 일성의 강도로 인해 순식간에 동의로 변경된다는 점이다.

거대 빌딩의 모더니즘은 고전 양식 건축으로 대변되는 보수와 퇴행에 대한 의지적 자기 선언이면서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의 예술성에 대한 단호한 응집이 된다. 엔딩에서 승강기로 수직이동하는 인물이
응시하지 못하는 건물 꼭대기의 남근은 마치 필름의 순환을 연상시킨다. 두 남녀 사이 갈라진 나무
몸체 사이로 황색 언론 자본을 배치하는 등의 프레임을 반복함으로서 서사적 소멸은 예증된다.
이는 인물이 첫 등장하는 오프닝의 몇몇 숏에서 등의 후면으로만 제시되다가 자신의 이름을 처음
발성할 때 비로소 전면이 드러나는 어법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자극적인 이데올로기 선전물로서
본편은 결국 군중라는 이름의 최소한의 집단 지성과의 교묘한 거래를 통한 체제를 우회상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