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있었다 (父ありき, There Was A Father,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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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있었다 (父ありき, There Was A Father,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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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있었다 (父ありき, There Was A Father, 1942)


오즈 야스지로


CM릴 2장짜리 합쳐서 릴에 맞게 조정만 했습니다.


과거에 많은 영화들을 릴하고 한글화를 하였던 CM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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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S 컷과송
2022. 11. 20. 재감상


단 평 : 분리불안 혹은 흐르도록 해야한다는 것


불쾌하지만, 여기에는 남성 동성사회의 꿈이 전쟁과 더불어 도사린다. 거의 부재화된 여성이 말미에

어색하고 급속하게 덧붙여지지만, 이같은 시대의 억압 환타지를 감량시킬 수는 없다. 굳이 부정하자면,

말미에서 아들이 군복무 등으로 삭발한 면모가 제시된 이후 인물이 죽음에 이른다는 지점에 있겠다.

어떤 국가-외부적 억압으로부터의 휴가가 하필 그 시기에 부여되었다는 지점은 얼핏 허가의 황망함이

정지/지속을 오가는 재회 단락으로 구성된 본편을 무력하게 한다. 다시 만나기는 왜 그 때 중지되는가?


시작 장면에서 다리 위 전등 기둥이 정지점이고 그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합일이다. 하지만, 이윽고

그나마 프레임으로 전부 다 보여지지도 않았던 다리의 우측 반쪽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이동한다.

더더욱 슬픈 것은 둘로 시작한 이동 인력이 이후 한 명씩 3회로 줄어들면서 빈도가 잦아진다는 점이다.

본편 서사는 이 오프닝의 논지에 대한 부연이다. 만나기 위한 헤어짐이든 또는 헤어지기 위해 만남이든

그 어느 쪽이라도 중요한 것은 그 각각이 연속됨에 있다면 본편은 부자의 존재감으로 이를 윤리화한다.


아들은 거의 분리불안을 보일 정도로 아버지와의 결합을 희구하는데, 이는 오프닝의 또다른 사건과의

연관에서 비롯된다. 동경은 역시 사진 촬영 이후의 죽음으로 이별을 강제 종용하는 장소다. 부자가 다시

별거하게 되는 시점 역시 인물의 동경으로의 이주 때문인데, 아들은 결코 동경에 정착하지 않는다.

인물의 죽음이 제자들과의 동창회 자리에서의 과거 사건에의 언급 이후라는 점은 신호적 장치로서

기능하는데, 이 때 저리에 먼저 드러눕는 동작을 취하는 이는 아들이라는 점은 순환적 반복을 예비한다.

아버지의 수학이 아들의 화학이 되어 변형반복되지만, 그 규칙만큼 뼈저린 것은 회자정리의 엄혹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