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Strike , 1925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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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Strike , 1925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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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Strike , 1925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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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5 Barba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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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구름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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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이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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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푸른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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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컷과송
2019. 4. 8. 감상


단평 : 그 필름 사이에 가고싶다.


영화와는 그다지 관련 없는 과거지사 한 자락.
1995년 영화 백주년을 맞이해서 부산의 모 대학 영화연구회에서는
당시 활동 중이던 평론가 몇명을 초청하여 강연을 기획했다.
그 때 이효인, 정성일의 강의가 있었지만,
가장 충격을 준 이는 지금은 절필한 이정하의 강의였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몽타쥬 이론>을 청중들이 미리 읽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의 시작도 하지 않고 강의를 곧바로 접었다.
대단히 황당한 경험이었지만, 다른 강의들보다 오히려 신선했다.
말하자면, 영화 이론에 대한 공부에 처음으로 눈뜬 시간이었다.
( 그는 들뢰즈의 <시네마>를 번역한 이후로 거의 사라졌다.)​

Sergei M. Eisenstein은 지금도 각 포털들이 표기가 다르지만,
국내에 영화 서적이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된 책들을 제외하면
영화책이 거의 50권이 되지 않았던 90년대초반에도 감독 이름이 서로 다르게
표기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책이 3권이나 발간되었다.

그 중 한권이 위에 언급한 1990년 이정하 저술의 <몽타쥬 이론>
나머지 두 권이 1990년 <이미지의 모험>, 1991년 <감독 노트>이다.
영화사의 다른 감독들에 비해 에이젠슈타인에 대한 이같은 환대는
역시 80년대 학생 운동과 소련 사회주의와 연관해서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몽타쥬 이론>이 미학적으로 엄밀한지 의문이고,
마치 누벨바그의 작가주의만큼이나 그 이론적 근거가 진중함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튼, 여기까지는 80년대 꼰대 영화광의 추억담이었다.
20년도 전에 악랄한 화질의 비디오로 본 이후 두번째 접한
본편은 완전히 다른 영화로 다가왔다.

필름의 두 조각 사이에 침입하여 단순한 배열 너머의 의미를
획득 혹은 발견하기 위한 투쟁은 시간의 억압 하에 습관화되었다.
기표와 기표 사이에서 보여지지 않는 혹은 보여질 수 없는 기의를
착안해내는 관객의 자리 그리고 영화의 저력은 어느새 노년화되었다.

알려진 바대로, 본편에서 자본가는 전형화된 캐릭터로 배출된다면
이에 반해 노동자들은 가끔 생활 내 미시성마저 동반한 채 자연주의적 맥락 하에 놓인다.
이것은 당연히 차별화된 감독의 시선이 양산한 현명한 결과다.
하지만, 이 두 부류 사이에 놓인 스파이라 호칭되는 인물들이야말로
오히려 본편의 몽따주가 가장 주목하는 사례로서
그들은 양 진영 사이에서 이론적 육체화의 증거로서 거론될 수 있다.

동시에, 조르주 프랑주가 <짐승의 피>를 발표하기 20여년전에
감독 자신이 개인적으로 영화에 진입하게 된 사유가 반영된
가학성은 몽따쥬와 더불어 본편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한다.
더불어, 초반부 경이로운 시간-운동의 가역성 기법과 뒤집어진
지반 이미지를 통한 혁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격한 제언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초점으로 작용한다.
KINO-EYE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장면과 클로즈업된 얼굴의 배열은
공장의 롱 숏과 대구를 이루며 민중/기계의 간극을 노정한다.

중반부 파업을 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소화전 물줄기는 본편을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백남기 님의 피살을 연상시키며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는 엔딩의 도살되는 소와 학살된 민중이 중첩되는 것 이상으로
당대 촛불들에게 기이한 시간의 기입이 된다.
오프닝의 자본가 안면에서 엔딩의 학살된 민중들로의 전복은
애석하게도 아주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예언으로 전이된다.
S rayphie
고맙습니다.
11 아라태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