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여인(La signora di tutti) (1934) 막스 오필스 연출

자막자료실

만인의 여인(La signora di tutti) (1934) 막스 오필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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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라이>에 이어지는 여인 수난사(?)네요. 

이번에는 이태리가 배경이고 언어도 이태리어입니다.

영어로 번역한 걸 다시 번역했습니다.


역시 막스 오필스 영화답게 

촬영이 유려하네요.

<리벨라이>만큼은 아니지만

마음이 아파지는 영화입니다.


오페라 음악이 중요한 모티프이고

밀라노의 라스칼라좌가 나옵니다만

오페라 제목을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은 꼭 알려 주세요.

라스칼라는 꼭 한 번 앉아서 오페라를 감상하고픈 곳인데

역시 여자는 이뻐야 하나 봅니다,

주인공 가비는 턱 하니 좋은 좌석에 앉아서 보네요.:)


'미인박명'이라는 우리 옛말이 떠오르는

막스 오필스 초기작입니다.


이태리어 원제는 La Signora di Tut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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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GIVE 100 MP 34 HAL12
수고 많으셨습니다~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35 Grushenka
고맙습니다.
14 푸른눈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잘 보겠습니다~~
S MacCyber
수고가 많으십니다.
GIVE 50 MP S 줄리아노
너무 감사합니다!!^^
외람되지만, 두줄 쓰기로
가독력이 좋아져, 읽기가 많이 편해졌어요!
다시 한번 감사를! 
24 umma55
외람되다니요,
자막 초짜인데 많이 가르쳐 주세요.
개선할 점이 있으면 언제든 일러 주십시오.
6 범쇠
항상 존경하고 감사드립니다.
24 umma55
어이쿠,  댓글보시에 제가 감사합니다.
22 시간의항해
어린 시절 절 펑펑 울게 만들었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의 막스 오퓔스의 작품이네요.
귀한 자막 감사합니다.
29 불량아이
고맙습니다.
11 시절인연2
고맙습니다
4 돌짱짱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12. 18. 감상

단 평 : 카메라는 외롭다

존재론적으로 질문하자면 외로움의 주체는 누구인가는 곧 어떻게보다는 왜와 더불어 등식화된다.
이는 곧 본편의 카메라가 그토록 요동쳐야하는 이유와 관련되는데, 이를 위의 어떻게와 연관함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기실 본편은 카메라가 주체이며 서사나 인물 따위는 일종의
하수인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인물이 머리가 빙빙돈다고 말하자 곧 카메라가 실제로
360도 회전하고 그 자리에 되돌아올 때 여기에는 어떤 시공간적인 변형아 내포되지 않는다. 오직
카메라 그 자체가 인물로부터 별개의 산물로 주체화되어 자신의 변경이 어디인가를 진술할 뿐이다.

이같은 사례는 본편에서 무수히 많다. 두 인물이 각기 수면 위의 작은 보트와 길 위의 자동차로
구분되면서 대화할 때의 촬영은 그 대화의 밀도나 누구의 시선인가보다는 어떤 지점에서 어디를
향해있는가가 더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결말부에 인물의 얼굴 클로즈업이나 포스터
등이 인쇄 프레임에서 관객은 자못 당황하게된다. 거대한 얼굴의 확대가 왜 허락되어야하는가의
질문은 뒤집자면 카메라가 비로소 잠시라도 고정되고 피사체를 담보하는 죽음에의 예언과도 같다.

초반부에 인물을 찾아가는 관계자의 트레킹 숏은 노골적으로 스튜디오의 칸막이를 보여주면서
이전 화면에서 침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운드와도 같은 방향성을 부각시키지만 끝내 그가
발견하는 것은 죽음이다. 기실 죽음에의 무의식이라고 할 수면 상태에서의 플래쉬백은 아직 완전히
감독의 그것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없지만, 통제될 수 없는 SM적인 열병으로서의 사랑의 통로로서
적정하다. 여배우보다 더 중요한 카메라가 외로운 것은 인물이 만인에게서 사랑받지만 그 너머의
죽음에의 강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표면적인 서사보다는 그토록 요동쳐 포착하려해도 결국에는
중지되는 영화의 한계, 즉 실재와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보는 것이 보여지는 것보다 더 고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