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바다 (2021)

드라마 이야기

얼어붙은 바다 (2021)

2 칼도 2 422 0

The North Water (2021)
https://www.imdb.com/title/tt7660970/

얼어붙은 바다 (2021)
https://www.coupangplay.com/content/d6236b07-3569-49fc-b755-07335e500f77

원작은

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열린책들 2017-12-30원제: The North Water (2016년)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9853425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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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인간 드라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라는 것이 이데올로기라고,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콜린 파렐이 징글맞게 생생하게 구현한 드랙스라는 악당이 그 어떤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인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인간의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제일 좋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사는지, 그 활동들에 인간들이 어떻게 얽혀있고 어떻게 그 활동들을 개선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 와중에 서로 간에 어떤 갈등을 벌이고 어떤 유혹을 받는지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The North Water 는 북극해로 출항한 포경선 선원들의 이야기이다. 고래만 잡지는 않고 부업으로 바다표범도 잡는다. 고래와 바다표범을 교묘하고 잔인무도하게 살상하고 해체하는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고래와 바다표범도 자신들의 먹잇감을 나름대로 교묘하고 잔인무도하게 사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인간의 그런 사냥만 역겹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기술의 힘으로 인해 인간의 그 사냥의 교묘함과 잔인무도함은 다른 동물들의 그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빠져나갈 구멍이 거의 없는, 거의 천라지망같은 작살과 총을 발사한다. 사냥감에게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은 제일 가는 잔인함이다.

주인공은 아편제에 매달려 사는 의사이다. 인도의 세포이 반란 당시 영국 주둔군 군의관이었다. 출세욕이 있어 상관에게 부추김을 당해 부정한 짓에 가담했다가 희망대로 일이 안 풀리고 배신당하고 불명예 전역을 당했다. 자신을 도왔던 인도 소년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이 몹시 괴롭다. 그 외 양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선주와 최소한의 양심과 선장으로서의 기본적인 판단력은 갖췄지만 '자기보존'을 위해 그 선주의 음모에 동참하는 선장을 비롯해서 다양한 선원들이 등장한다. 제법 신앙이 두텁고 성경 교양이 있는 편인 늙스그레한 선원도 있고 약하디 약해서 희생자가 되기에 적합한 소년 선원도 있다.

대다수의 선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즐기는 것이 가능할 때는 한껏 즐기고 딱히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적당히 속악한 인물들이지만 드랙스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기 말마따나 생각을 잘 안 한다. 생각은 제동장치이고 장기적 기획의 도구이니 생각을 잘 안 한다는 것은 내키는 대로 산다는 것이다. 내키는 대로 산다는 것은 도덕과 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상대로 자신의 힘을 마음껏 구사한다는 것이다. 드랙스는 도덕과 법에 구애받고 사는 것이 자신처럼 사는 것보다 더 낫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살 때 얻을 수 있는 자기만족이 대단해서 그리 살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드랙스는 상대주의자이자 원초적 능력주의자이다. 자신이 붙잡혀 재판당하고 사형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저 그가 자신과는 다른 만족을 추구하는 이들보다 능력이 못 하기 때문일 뿐이다. 실제로 드랙스의 능력은 대단하지 않다. 생각의 도움을 받으면 더 오래 내키는 대로 살 수 있지만 드랙스는 거의 막무가내로 앞뒤 재지 않고 행동한다. 드랙스는 악하지만 교활하고 조직적이기 그지 없게 악하지는 않다. 그는 강렬한 복수심을 품은 우리의 의사 선생의 상대가 결국은 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징그러운 선주도 그와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최후의 승자인 것은 아니다. 그를 꼬드기고 버린 [기성]사회와 타락과 무고한 죽음의 기억을 간직한 자신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가장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문명이 자연에 대한 폭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얼어 죽고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눈보라가 몰아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공격하지도 않는 곰을 집요하게 추적해 마침내 쏘아 죽이고 곰의 뱃속에서 자신의 몸을 덥힘으로써 살아남는다. 이 장면은 가감없이 생생하게 묘사된 바다표범과 고래의 살상 장면의 연속선상에 있다. 선주로부터 뺏은 돈으로 베를린에서 어엿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그가 근사한 신사 옷차림을 했지만 침울한 표정으로 동물원에서 앙상하게 마른 곰을 쳐다보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으로 이 드라마는 인간들 간의 좁은 갈등/대결 드라마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더 깊은 울림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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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화에서 주인공인 섬너와 드랙스 간의 대화:

후회하지 않나요?
죄책감은요?

그날 거기서
당신도 죽일 거라고 생각했나?
선장처럼 머리를 갈라서 말이야

그럼 무슨 생각이었습니까?

난 생각을 잘 안 해
그냥 저지르지, 생각은 안 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양심은 전혀 없는 겁니까?
당신은
윤리적인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가요?

뭔 일이 생기면
그다음 일도 생기는 법이지
그 전 일이 다음 일보다
더 중요할 건 또 뭐지?
또 그다음 일은 어떻고?

그건, 모든 행동들은
각각 별개의 일이고
분명 다른 일이니까요
어떤 행동은 선하고
어떤 행동은 악하죠

말만 번지르르하군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그럴 능력이 있어서야
그러고 싶어서지
그들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라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권위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군요
당신의 욕구를 넘은
옳고 그름은 없는 건가요?

당신 같은 작자들의 질문은
자기만족을 위한 거지
다른 놈들보다 더 깨끗하고
똑똑하다고 느끼고 싶으니까
하지만 아냐

당신과 다를 것 없다 이겁니까?
어떻게요?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나도 유혈 사태는 넘치게 봤어
사람 죽인 게
나뿐만은 아닐 거라는 거지

나도 평범한 사람이야
뭐, 어느 정도는

아뇨
그건 동의 못 하겠네요

좋을 대로 생각해
나도 그럴 테니까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거부하기 마련이지
법이라는 게
특정 부류의 입맛에 맞게
만든 거에 불과해

드랙스 씨와는 말을 못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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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M 再會  
헐~~~ 얼마만에 오신 건지요...?
14일에 다시 글 올리신걸 모르고 드라마게시판에 올린 보고 깜놀했습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2 칼도  
제 닉네임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고맙습니다! 그치만 님과 시네스트가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직간접적으로 시네스트 덕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늘 반가워해야 할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