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마이너스 원

영화감상평

고질라 마이너스 원

22 Rabun 4 183 1

이 영화에 관해선 할 말이 많다. 우선 나도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싫고 신사참배에 대해 회의적이다. 카미카제 폭격을 혐오하는 건 당연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한국에 들여오지 않은 건 다소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본 작품이 그려내는 카미카제 특공대원은 자살 공격에 동참하지 않고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작중 내내 고통받지만 나중엔 죽음이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래서 더 악착같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는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된다. 더욱이 막바지에는 한 교수의 입을 빌어 '이 나라는 젊은이들의 목숨을 너무 함부로 해왔어요' 하고 쐐기를 박는데 솔직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는 10여년 전 일본 영화계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탠스이기 때문.

물론 세대와 정계의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당대 사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모습은 보인다. 아무래도 패전 직후의 시대상을 그렸는데 불과 몇년 전 조상들의 사상과 이념이 틀렸다고 일갈을 날리기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과오를 드러내는 방식이 손에 잡힐 듯 명쾌하진 않지만 그래도 '남자들의 야마토'나 '마이 웨이', '더 울버린'처럼 국수적이거나 편파적이지 않고 그간의 관성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음은 높이 산다. 과연 인류의 존속과 상생을 다룬 영화 기생수 파트 1, 2를 맡은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의 작품인가.

더군다나 고지라라는 캐릭터가 2차대전을 끝맺은 원인(그들에겐 원흉)인 원자폭탄에 의해 탄생한 존재인 걸 생각해볼 때 작품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상당히 중립적이고 오히려 호감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오죽하면 작중에서 주인공이 미국과 일본이 바다에 뿌려놓은 기뢰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면 그 돈으로 미군 분유를 살 수 있다고 좋아하는지ㅋㅋㅋ '백투처 퓨처'에서 1950년대의 브라운 박사가 '일제니까 이 모양 이 꼴이지'라고 한 걸 생각하면 (물론 이후에 마티가 '일제가 왜요? 최곤데요?'라는 말로 받아치기는 한다.) 본 작품은 국가감정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일본에 대한 자아성찰, 자기보기에 힘을 쏟은 것 같다. 오죽하면 '이 나라는 변하지 않는구만. 그게 정부의 주특기지.'라는 대사까지 치니 말 다했다.

정리하자면 분명 민감한 시대상과 주제를 다루긴 했으나 그를 통해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진 않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눈치를 보긴 했으나 그래도 자기비판과 반성의 모습은 비췄다 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반성은 자국민에 대한 반성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당시 일본 정부의 국가운영이나 사회상이 바람직하진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고지라는 어디까지나 괴수물이다. 작중에서 다른 나라를 욕한 것도, 황국을 찬양한 것도 아닌데 너무 엄격한 정치적 잣대를 들이밀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서론이 너무너무 길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로 들어가 보겠다. 우선 이 작품은 고지라의 기원을 다뤘다는 점에서 고지라 70주년 기념작으로서의 본분을 톡톡히 해냈다. 50년대에 제작된 최초의 고지라가 당시 고고학계의 최신 학설에 기반해 꼿꼿이 서서 꼬리를 질질 끄는 구형 티라노사우루스같은 이미지로 만들어졌다면 본 작품속 최초이자 미성숙체인 고지라는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같은 색채가 짙어졌다. (심지어 발도 고지라 전매특허 코끼리 발이 아니라 사뭇 티라노스러운 수각류의 발로 변모했다) 뭐 그게 헐리우드의 고질라(Godzilla)를 떠올리게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아무튼 작은만큼 재빠르고 보다 히트 앤 런에 능한 고지라의 모습은 보통 신선한 아웃풋이 아니었다.

성체가 된 이후에도 신박한 요소들은 계속해서 나온다. 우선 이게 파충류인가 포유류인가 싶은 한 가운데 모인 콧구멍과 현무암같은 피부 질감은 그대로 재연하되 디테일에서 차별점을 줬는데 일단 포효 소리가 바뀌었다. 고지라 하면 딱 떠오르는 사운드가 있어 이 점은 다소 아쉽게 다가오지만 헐리우드 몬스터버스의 고질라의 육중하고 강렬한 포효 사운드가 벌써 10년째 블럭버스터계를 지배하고 있으니 이건 정상참작이 가능한 부분. 다음은 방사열선인데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파괴력과 스케일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졌다. 플러스 알파로 빔을 쏘기 전에 예열할 땐 골판이 하나씩 장착(?)되는 연출을 보여주는데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상당히 긴장감 있고 쫄깃한 인상을 받았다. 더 대단한 건 무슨 울버린도 아니고 방사열선을 쏜 이후에 그 주변부가 녹아내려 재생(회복)을 하는 컨셉까지 추가됐다는 거! 그 말인즉슨 고지라도 파괴광선 한번 쏘려면 위장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감내한다는 건데... 어차피 죽지도 않는 무적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런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이 가능하다는 게 참 발칙하니 마음에 들었다ㅋㅋㅋ


이제 전개 및 연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나도 글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ㅋㅋ 일단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10분도 안돼 고지라가 튀어나오는 전략은 아주 좋았다. 대개 괴수물은 예산분배 차원에서 처음엔 떡밥만 흘리거나 서서히 괴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초반에 얼굴 도장을 꽝 찍어버리니 이후의 전개는 다소 루즈하더라도 일단 임팩트를 받고 시작했기 때문에 그 잔상이 꽤 오래 갔다.

그런데 그 직후 뜬금 날아드는 설정은 좀 이해가 안되긴 했다. 아무리 전시라고 해도 뜬금 '만비키 카조쿠(어떤 가족)'처럼 휘뚜루마뚜루 가정을 이루고 또 그 가정이 플라토닉의 극치라니ㅋㅋㅋ 몇년간 같이 살면서 수양딸에게 호부호모(呼父呼母)도 금하고 남녀가 한번도 정을 통하지 않는다는 건 성진국 입장에서... 쿨럭쿨럭. 아무튼! 무슨 종교인도 아니고 극의 드라마성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가족을 구성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막판 반전(이라고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인데 앞부분에 너무 밑밥을 많이 깔아놔서 바로 예측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젊은이들의 목숨에 대한 경시, 자국민에 대한 반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 뻔한 인상을 제공한 모양. 그냥 뜸들이는 일 없이 스무스하게 진행했으면 책잡힐 일도 없었을텐데... 너무 불필요하게 힘을 많이 준 것 같다ㅋㅋ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만족했다. 내가 영화 한편을 이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해 리뷰한 것도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괴수물에 진심인 것도 있지만 혹시라도 작품 외적인 요인 때문에 영화가 평가절하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보기 전에 색안경은 끼지 말자, 까더라도 보고 까자 이런 마인드가 아닐까? ㅋㅋ 혹자는 내가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고 심지어 변호, 비호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나도 일본의 만행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릴 줄 알고 이 영화는 결코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을 미화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정식 개봉을 하지 않았다고 쉬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블럭버스터를, 괴수물을, 더 나아가 특촬물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역사 코드 하나가 걸려서 시청을 포기해 버린다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모양새가 될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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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22 zzang76  
결국엔 고지라는 신이더라구요. 죽지도 않고...재생기능도 있고...
22 Rabun  
그러게요. 역시 세계관속 일본인들에게 애증의 대상인 타이탄인 듯 합니다
37 하늘사탕  
섬나라 일본인들에겐 저런 절대적인 위치의 생명체를 동경 하는것 같습니다. 섬의 폐쇄적인 사고도 한몫 하겠죠
22 Rabun  
공감합니다. 괜히 한국의 귀신은 한(恨), 오니는 증(憎)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게 아니겠죠. 흡사 코스믹 호러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