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들의 군주 (Lord of the Flies 1963)

영화감상평

파리들의 군주 (Lord of the Flies 1963)

12 리시츠키 6 395 1 0
결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파리들의 군주>가 <파리대왕>보다 훨 나은 제목이라는데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학교생활과 영국, 전쟁의 멋진 흑백 몽타쥬로 영화를 시작하더니,
수십명의 아이들과 잭, 랄프, 피기, 사이먼의 주요인물들이 모두 모여 두목을 정하는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여러명의 인물들이 나와니, 촬영이나 편집도 어려울테지만, 그런데 이 시퀀스는 뭔가 좀 이상합니다.
시선을 일부러 어긋나게 하거나, 정면 평각의 투샷에서 측면 앙각의 투샷으로 바로 붙이는 기이한 점프컷이라던지,180도가상선은 가볍게 무시해주면서도,
프레임 안에 인물을 배치하는 솜씨나, 원샷 투샷 스리샷 다인샷의 숏과 숏을 잇는 독특한 배치, 그러면서도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게하는 기이한 마술.
유치하기 이를데없는 1990년작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허리우드식 편집의 설정샷 그리고 풀샷 그리고 샷 쪼개기쪼개기쪼개기-
역시 1963오리지날이 걸작인 이유를 유감없이 처음부터 드러내더군요.

영화는 이렇게 90분 내내, 끝내주는 로케이션과 흑백의 콘트라스트 대조가 너무나도 멋진 촬영과 편집,
그리고 간과하기 쉽겠지만, 극적인 장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간결하고 힘있는 기이한 그러면서도 그 효과면에서 경탄을 금치 못 할 사운드이펙트. 정말 영화 내내 감탄하면서 보았습니다.
어떤면에서는 영화가 오리지날 <혹성탈출> 1편을 연상시키더군요.


아무튼 이 훌룡한 영화, 그 중에서도 이 모두의 종합판이라 할 만할,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정말 압권입니다.
혼자살아남은 랄프는 보초에게 식량을 얻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페이드아웃됩니다.
그리고 정글에서 잠든 랄프의 모습에서 페이드인합니다. 각종 새소리와 사냥꾼들의 대화소리 "불을 지를거야/ 창을 가져와",
혼란스런 정글의 앰비언스가 청각으로만 전해지고 랄프는 겁에 질린 채 잠에서 깹니다.
랄프는 정글을 헤집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망치면, 카메라도 같이 트래킹하고,
이때 압권인 랄프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의 신호소리 '아바바바바바', '우웅우우우우우ㅜㅇ우'역시 외화면에서 계속해서 그를 추격합니다.
그리고 파리소리가 갑자기 피치를 점점 올리더니 (아마도 신디사이져로 만들었을) 이 기이한 사운드가 마치 창처럼 공격적으로 랄프의/ 관객의 청각을 찌를듯이 커집니다.

이때다시 랄프가 도망가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방향이 왼쪽/ 오른쪽/ 정면으로 왔다갔다 혼란스럽게 하더니 연기 자욱한 정글한가운데 랄프가 멈춰섭니다.
이때 추격자들의 신호, 비명소리들이 다시 랄프의 귀를 찌르고 다시 랄프가 도망갑니다.
외화면에서만 존재하는 시각적 미쟝센과 역시 외화면에서만 존재하는의 비사실적인 그리고 공격적인 청각적미장센은,역시 걸작은 다르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면입니다.

사냥꾼들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고(가까이 다가왔다는), 정글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나고, 그리고 찌를듯한 파리소리가 프레임 정면의 랄프를 화면가득 가둬버립니다.
다시 랄프는 도망칩니다. 연기 자욱한 정글에 랄프가 프레임 인하더니 다시 연기 속으로 사라집니다. 외화면의 사냥꾼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돼지를 죽여라", 랄프를 더욱 조여옵니다.
거친 핸드헬드로 도망치는 랄프를 측면에서 쫓더니(풀샷),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랄프의 뒷모습을 잇습니다(클로즈업).

그리고 다음씬은 마치 프레임을 거꾸로 돌린듯이 -보통의 장면이라면 랄프가 카메라 앞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후경-중경-전경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단순한 숏일텐데-
카메라앞으로 달려오는 랄프를 툭툭끊어지는 4개의 쇼트들로 쪼갰는데,놀라운건 그걸 거꾸로 배치하여 전경에
"이미" 도망친 랄프(클로즈업)/ 중경에 도망치는 랄프(바스트샷)/ 다시 중경에 도망치는 랄프(니샷)/ 후경에 도망치는 랄프(풀샷)의 기이한 되감기 점프컷으로 만들어 버렸다는겁니다.
또한 쇼트의 길이 또한 처음쇼트는 1초짜리에서 점점짧아지더니 네번째 쇼트에서는 급격히 짧은 쇼트길이로 편집해버립니다.
랄프가 도망치지만 결국은 한 치 앞도 내달릴수 없게 만드는. 마치 달릴수록 도망칠수록 정글 안쪽으로 더욱 보내버리는, 기이한 영화적 마술을 만들어버립니다.

드디어 정글을 벗어난 랄프는 해변가에서 넘어지고, 외화면의 사냥꾼들이 소리로만 계속해서 끈질기게 쫓아오고, 랄프는 필사적으로 기어서 기어서 도망갑니다,
마치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돼지처럼. 기어서 기어서 기어서 도망가다가 흰구두 흰양말의 거인의 발 앞에 멈춰서고, 드디어 외화면의 사냥꾼들의 추격소리도 멈춥니다.

이 4분가량의 놀라운 라스트 시퀀스에서는, '오직' 랄프 혼자만이 공포에 질려 정글에서 도망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서스펜스와 공포, 혼란감은 역설적이게도 단 한장면도 안 나오는 추격대에 의해서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 광기에 찬 사냥꾼들의 구호소리가 화면 밖에서 오직 청각으로만 랄프를 추격하고 랄프를 프레임에 가두고 찌르고,
그리고 과장되고 기이한 파리소리의 사운드 이펙트는 그 공격을 배가 시킨다. 이런 창조적인 시청각적 공격에 서스펜스는 더욱 고조됩니다.

그리고 어른 한 놈을 틸트업하고, 멀리 정글 야자수들이 불타는 모습과 그 속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멀리서 보면 귀엽기도 한) 쇼트들의 몇 개.
마치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는듯 합니다. 랄프가 울고, 군가같은 행진곡이 나오며 영화는 끝이납니다.



정말 영화는 뭐 하나 흠잡을데없이 훌룡하지만, 다만 내용면에서는 조금 아쉽네요.
문명과 야만, 광기와 공포, 독재자와 소시민들, 민주주의, 공동체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는거야 흥미롭지만,
원작의 권위가 너무 거대해서인지, 영화가 원작 그대로 설정한 이분법적 작위성에는 좀 나른합니다.

그리고 랄프와 아이들이 구조되는 대신, 랄프가 끝내 못 도망치는, 섬을 탈출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결말로 끝마치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 영화 오프닝 몽타쥬에서 보여준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한 씬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랄프와 아이들이 영국어른놈들에게 구조되는 것 역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을거라는 감독의 명백한 전언이기도 할 것입니다.
랄프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래서 반어적으로 해석할수도 있을테구요. 키리에 엘레이손~ 키리에 엘레이손~~


*LMDb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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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3 o지온o  
잘 읽었습니다.

중간 부분부터 영화의 결말부 내용이 그대로 묘사되는 듯 해서
그곳 부터는 읽지 않았습니다만.. 그래서 아래 내용은 모르지만..

내용이 스포일러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스포일러] 라고 적어두는 것도
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방법일 것 같아요.
12 리시츠키  
넵!!^^
3 소서러  
리시츠키님 말씀대로 <파리들의 군주>가 더 나은 제목이라고 생각되고 이야기 속의 잠재된 어두운 에너지를 더 강렬히 느끼게 하는 뼈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되네요. 코폴라 감독의 영원불변 걸작 <지옥의 묵시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70년대 전성기 시절에 있어서 더 높은 고평가를 받는 <대부> 시리즈가 아니라 묵시록과
컨버세이션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입장^^)  그래도, 유사하게 찝찝하고 간담이 서늘한 그 정취와 스토리가 이를 더 부각시키는 흑백을 바탕으로 청소년 세계를 형상화시키니 소설이나 영화 둘 다
다가가기가 쉽지 않지만 언젠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지게 분석해주신 사운드와 촬영기법에 대한 영리함와 치밀함이 그 시대의 영화제작자들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12 리시츠키  
<파리들의 군주>제목은 제가 지은게 아니라, 어떤 훌룡하신 영화번역가님의 의견입니다.
소서러님이 제목을 아주 잘 풀어주셔서 더더욱 동의하게 되네요^^

언급하신 코폴라 영화들 저역시 다 좋아합니다. 그 중 저는 <대부2>와 <도청>이 가장 좋네요.
저역시 미국영화는 그때가 가장 좋았던거 같습니다. 이러니 맨날 옛날영화나 봐야죠 저희들은ㅎㅎ

저야말로 <지옥의 묵시록>을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파리들의 군주>와 내용면에서 어떤 작은 유사점도 있고,
마지막에 열대숲을 불지르는 장면에서는 <지옥 묵시록>이 생각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어서 언급한것입니다.
스틸샷도 일부러 비슷하다 생각되어서 걸어놓은것이였지요~
(근데 영화 막상 보면, 좋아하시는 <지옥의 묵시록>에 비해 싱거워서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라스트시퀀스는 어떤 모던함과 대단히 영리하고 효과적인한 연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파리들의 군주>은 절대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내용보다 감독의 미쟝센과 편집이 훌룡해서 더 감탄해서 보았습니다.
보실영화들 산더미 같겠지만 우선순위를 땡겨서 보시기를 강력히 권해드립니다~~ㅎㅎ
8 Harrum  
90년대 나온 영화를 보고 감독미 미워짐.
어린 나이임에도 미워짐. ㅋㅋ
원작 도서 번역은 엉망에다가 영화까지 엉망.
그렇게 잊고 살다가 다시 파리대왕과 마주치네요.
책을 읽으며 파리가 그 파리 맞아? 프랑스 파리야? 섬 이름이야? 하며 읽은 기억.
쓰신 글 읽으니 다시 도전해볼까 생각중.
12 리시츠키  
괜히 제가 바람만 넣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90년 영화가 실망이었다면 63년작을 한 번 보시기를 권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