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ki Bouki (1973)

영화감상평

Touki Bouki (1973)

12 이쁘니6 0 556 1 0




영화는 꽤나 무서운 질문의 미스테리로 시작합니다.
소떼를 몰고 내려오는 소년, 소도살장면. 그리고 우체부는 넋나간듯 빈민가를 걸어내려오다 프레임하단에 멈춰섭니다. 우체부의 시점샷으로 판자촌을 천천히 패닝하고,

('알라는 위대하다'는 라디오방송과 함께) 좌판에서 장사하는 안타의 엄마는 "프랑스로 간 아들의 연락이 끊겼다며 걱정"을 합니다.

우체부는 안타의 엄마의 눈치를 보고는 그냥 지나칩니다. 이어서 우체부는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길을 건너기 위해 섭니다(후경에는 '액숀모빌'의 거대한 공장이 보입니다).

판자촌 마당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안타의 모솝과, 물을 두고 싸움하는 아낙들,

지프차의 잘 차려입은 대학생 무리들이 마치 소잡듯이 모리를 로프로 낚아채는 장면들이 병행편집되어 시퀀스를 만듭니다.

감독은, 영화 초반에 제시한, 프랑스로 간 아들의 소식(혹은 생사)에 대한 질문의 답을 말하진 않습니다.

(물론 영화 시작에서 "소도살"장면과 "우체부"의 장면이 있습니다. 당연히 의도하고 넣은 장면이지요)

대신, 역시 프랑스로의 탈출을 꿈꾸는 모리와 안타의 세네갈에서의 여정을 제시할뿐입니다.

그리고 결말에, 안타는 배를 타고 떠나고 모리만이 세네갈에 남는데,

이때 다시 "우체부"가 귀신인듯 등장하여 모리를 가로질러가는 장면을 통해 그 답을 유추하게 합니다.

(결국 우체부는, 영화시작 전 안타 엄마의 아들을 만났고, 영화 시작후 안타를 만났고, 영화결말에서 모리를 만납니다)


감독은, 모리와 안타의 여정을, 영화 내내, 아프리카영화의 뉴웨이브라 불러도 좋을, 매우 불친절한 편집과 연출로서 보여줍니다.

이는 세네갈판 <네멋대로해라(고다르)>로 봐도 좋은데, 고다르가 <네멋>에서 미국영화의 반기를 들고 새로운 영화문법을 실험했다면,
오히려 맘베티감독은 고다르(및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배웠을)의 점프컷(의 정치성 포함)과 소비에트몽타쥬, 실험영화적 편집이라는 단호하고 무정한 칼로써 프랑스 제국주의를 도살합니다.

프랑스 제국주의가 세네갈 민중을 도살했듯이.

이 문법은 대단히 거칠고 잔혹하고 혼란스럽고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초기)고다르의 실험을 애들 장난으로 만들어버릴,

영화의 거의 모든 씬에서의 점프컷과 설정샷의 생략, 시/공간의 의도적인 무시, 시선과 행동의 노골적인 불일치, 느닷없는 장면전환,

극단적인 앵글, 에이젠슈타인, 쿨레쇼프 몽타쥬를 통해서 말이죠.
이는, 불가시편집의 정치성에 대한 반발이자, 형식실험의 상상력을 무기로서의 감독의 선택인듯 보입니다.

즉 영화적 형식조차 정치적 저항인 셈인것이죠(고다르에게 잘 배운듯).

(다만, 개인적으로, 소도살 장면의 몽타쥬는 다소 기계적인 은유로 보여집니다. 세네갈의 상황과 주인공 모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겠지만, 맥락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마저도 영화 텍스트에 대한 점프컷이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감독에게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겠지만, 이는 너무나 조작적인 경향이 짙습니다.

그럼에도, 이 점이 작품의 질을 퇴색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드골 기념관 건립을 위한 씨름 시퀀스"인거 같습니다.

세네갈의 정치상황은 지금 프랑스의 식민지에 다름아니라는 것이죠. 감독의 놀라운 연출과 편집으로 만들어진 이 시퀀스는 :

세네갈 고위층의 관전과 응원하는 세네갈 민중들, 세네갈의 씨름 선수 둘, 프랑스로 보낼 돈상자를 지키는 세네갈 경찰,

이 상자를 홈쳐 도망가는 세네갈의 청년 모리와 안타의 장면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때, 홈쳐달아나는, 모리의 오토바이 앞에 걸린 소뿔의 클로즈업과 택시 루프에 실은 돈상자의 화면가득한 거대한 클로즈업은,

프랑스와 세네갈의 정치상황에 대한 감독의 전복적인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이 행동으로서의 도둑질을 통해 체제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프랑스/꿈/탈출/세네갈/소/도살이라는 기호를, 마치 점프컷하듯, 극단적인 상징으로 드러냅니다.

돈상자인줄 알고 열어봤는데, 그곳에는 돈 대신 "해골(시체)"이 들어있습니다.


이는, 주인공들의 꿈이자 기회의 공간인 파리=죽음의 공간이고,

동시에 드골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결국 세네갈 민중의 시체(피와 죽음, 착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드골과 세네갈의 지배층은, 세네갈의 민중을 도살하는 도살자라는 노골적인 은유입니다.
또한 영화 초기 질문의 답인, 프랑스로 유학간 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결국 모리는 세네갈에 남고, 안타는 프랑스로 떠납니다.

배 위의 어느 프랑스중산층의 대화를 통해 감독은 68혁명을 비꼬기도 합니다.

과연 안타의 프랑스에서의 삶은 어떻게될까요? 모리는 우체부를 통해 안타의 소식을 접할수 있을까요?(영화이후의 상황이 되겠죠)


그리고 소떼를 몰고 내려오는 소년(모리)의 프리즈프레임샷으로 영화는 종료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 첫장면과 같은 장면의 반복이지만, 전혀 다른 해석을 남깁니다.
영화 내내 프랑스와 세네갈 식민지 정치체제 하에서 도살되던 소떼(민중)에서,

평화로운 자연과 공동체로서의 세네갈 민중으로서의 소떼(민중)로의 전환을 감독은 주장하는 것이겠죠.
 



<투키 부키>는 점프컷과 몽타쥬를 위한 영화이고, 자유로운 상상과 상징을 통해,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세네갈 정치영화의 걸작입니다.

(엄마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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