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1987>에서의 장준환의 진짜 목소리.

28 율Elsa 3 1242 3 0

영화는 역사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내는가.

평점 ★★★★☆

 

- <1987>의 형식.

 

 <1987>은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 유독 독특한 영화다. 들으면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대부분 자기 역할만 끝내고 등장하지 않는다. 한 배우가 자신의 역할에 시동을 걸고 전개가 한창 이어질 때쯤 자연스럽게 퇴장한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관객은 그 배우가 중간에 홀연히 사라진 것도 잊어버린다. 공안부장(하정우)로 시작해서 윤상삼 기자(이희준)으로 이어지고, 연달아 조 반장(박희순), 한병용(유해진), 연희(김태리), 김정남(설경구), 이한열(강동원)으로 이어진다. 모두 균등한 비중을 차지해서 사실상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대담한 형식은 영화가 어떻게 관객을 선동시키는지를 보여준다. <1987>은 일종의 영웅 서사다. 거대한 악의 축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박 처장 - 김윤석)이 있고 선으로 대표되는 주인공은 거기에 맞선다. 주인공이 많을 뿐 서사 형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건 <어벤져스>와는 다른 양상을 띈다. <어벤져스>가 캐릭터들이 동시에 나타나 캐릭터들의 합을 연속시키는 팀워크의 서사라면 <1987>은 릴레이 형식으로 이어지는 개인 플레이의 서사다. 

 

 <1987>에서는 두 가지의 양상이 존재한다. 하나는 개인이 거대 악에 맞서는 미시적 양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체가 거대 악에 맞서는 거시적인 양상이다. 전자가 모여서 후자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장준환 감독이 장면마다 주목하는 것은 명명백백하게 개인이다. 개인에게 이야기를 부여하고 릴레이하여 느와르, 서스펜스, 로맨스, 액션, 드라마 등 장르를 변주한다. 개인의 이야기를 빼곡하게 연결시키며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다. 개인이 모여 전체가 되는 과정을 형식으로서 드러낸다.

 

 - 역사의 목소리.

 이러한 형식은 중립적이지는 않다. 사실 이건 영화가 가지는 한계이기도 한데 역사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리된다. 역사란 다양한 이야기와 기록, 사관들의 해석이 모여 도출된 입체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영화 안에 담긴 역사도 아무리 고증이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시선으로 해석된 역사의 재현’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영화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의 특성이 있다. (그래서 위대한 영화 감독들은 역사를 온전히 재현하기 위해 관객과 역사와의 거리 두기를 시도했다.) <1987>이 가장 뛰어난 것은 시대를 잘 고증했고 객관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을 잘 선동했기 때문이다.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 서사 형식은 현실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편협하다. 하지만 관객을 이해시키기 아주 좋은, 경제적이고 효과적이고 상업영화다운 설정이다. <1987>의 세부 장르에서도 위력은 강력하다. 이른바 통속이기도 하다. 권선징악의 교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릴레이 형식은 관객이 그들 사이에 끼어 시대를 바라보게 만드는 프로파간다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이 효과를 갖는 이유도 선악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선량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정권의 편에 서려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민중들의 사이로 끼어드는 카메라는 자연스레 관객을 민중들 편에 서게 만든다. 팩트보다는 해석이나 평가에 가깝게 되는 카메라는 자연스레 (객관적) 역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1987>이 미덕을 갖는 것은 형식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편향된 시선, 좋게 말하면 역사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1987>은 상업영화로서의 프로파간다에 있어서 숨기지 않고 솔직하며, 그걸 표방함으로서 단순하지만 동시에 대담한 형식의 미학을 추구한다. 장준환의 진짜 목소리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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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S cutie  
오늘 처음으로 매우 진지하게 율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전 영화보다 먼저
율님의 잘게 쪼갠 분석과 그 쪼갠 조각을 멋지게 맞추어 내는 퍼즐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평론가로서의 자질이 너무 멋져 보여요^^
자료가 있으면서도 선뜻 플레이 시키지 못 하는 겁쟁이인 저에게 용기를 주셨으니
저도 감독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__)
28 율Elsa  
감사합니다!
S 블루와인  
그래서 오히려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요... 역사적인 면에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욕심이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