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평

노예 12년 - 제도와 인간, 끊이지 않는 악연의 드라마

S 박용화 2 48 0 0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어디까지 파괴될 수 있는지를 정말 처참하게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이 너무도 '평범한 인간' 이라는 점은 내게 더욱 많은 의문을 남긴다.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 존재도 아니요, 악에 순응하여 결국 자신도 그것을 닮아가는 변절자적 존재도 아닌 그저 그런 인간. 적당히 반항하고 적당히 순응하는, 불편한 '우리'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잔인한(?) 영화.

 

  그와 더불어 영화가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다시 한번 흥미를 돋운다. 스스로 '최소한의 양심'은 가지고 있다는 포드, 개차반처럼 살아가는 앱스, 솔로몬을 구해주는 파커와 베스, 그저 숨쉬며 살아가기 위해 입...과 귀를 닫고 살아가는 팻시, 그리고 솔로몬 본인까지. 

 과연 이 수많은 인간들의 전형 중에, 어디까지가 선한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악한 인간일까? 분류를 보다 세분화시켜 보자면, 어디까지가 선하지는 않은 인간이고, 악하지는 않은 인간일까? 까지 더할 수 있겠지. 그리고 이렇게 파생된 질문들은 당연히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이유도 없이 매를 맞던 솔로몬이 '반항했다'는 사실만으로 잃을 뻔한 목숨을 살려준 포드는, 솔로몬 이외에도 또 다른 수많은 노예를 부렸고, 부리며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선한 인간인가? 그도 결국 불의에 순응하며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는 나쁜 인간이 아닌가.

 

 개차반으로 살며 매일매일 구타와 강간을 밥 먹듯이 일삼는 앱스는, 단지 그의 가치관에 따르면 그런 행위들이 '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뿐이며,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뿐임에도 우리는 그를 악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어서, 만약 그러한 악행들이 순전히 행위 및 판단 주체의 '무지'에 따라 벌어진 일종의 '사고'라면, 그에게 돌을 던지는 일은 마냥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닐 것이다.

 

노예선 위, 목숨까지 내걸고 백인들과 싸우며 '인간'이길 주창하던(심지어 동조하지 않는 흑인들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았지) 클레멘스도 결국 자신을 구하러 선박장까지 친히 강림하신 자비로운 주(인)님을 뵌 뒤로 솔로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마차에 올랐다. 아마도 그의 기억 속에서 솔로몬은 한 때의 나쁜 기억 속 주인공 쯤으로 잊혀갔겠지.

 

 그들의 선악을 가리는 일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우리 모두의 '거울'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을 우리의 삶의 영역에 더욱 확장시켜 보자. 과연 '자유'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개념일까? 자유를 누릴 권리는 어디에서 근거하는가?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윤리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매일 우리의 야식을 위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무고한 닭'들은 윤리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까?

 

 나아가, 설명될 수 있는 논리는 정당한가? 앱스가 가지고 있던 다소 변질된 종교 논리도 적절한 논거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먹어치운 수많은 닭이 죽어가는 그 장면 앞에서도 부른 배를 쓰담으며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괜히 불편해진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인간이 참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survive)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묶인 솔로몬은 살아가기(live)를 포기하며 연명하지만, 그도 결국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총구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총구 앞에선 더이상 주님의 심판 조차 '천국의 얘기'로 치부될 수 밖에 없었으며, 그곳엔 인간이길 포기한 한 존재만이 열심히 채찍질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나약한 인간 개체가 과연 제도를 이길 수 있을까? 변호인 같은 영화를 보면서, '그래 불의에 항거해야 진정한 민주시민 아니겠나!' 하며 지적 정의감을 100% 충전한 사람들에게 정말 추천 해주고 싶은 영화. 더불어 어떤 제도가 설명될 논리를 갖고 정당화되는 순간, 그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개인들은 그저 튕겨나갈 뿐이라는 슬픈 진리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앱스의 무지'와 '포드의 침묵'이 결국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생각하기와 비판하기는 더이상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일 만은 아닐텐데. 우리 사회는 왜이리도 그 두 가지에 인색한지 모르겠다. 그토록 공감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왜 '소수의 아픔'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문득, 한국의 집단주의는 변질된 이기주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짜피 나 말고는 가족도 못 믿는 세상, 우리 편이라도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생존 확률을 높이겠다는 건가. 대통령, 국회의원 알기는 개보다도 못하게 여기면서 욕하기를 서슴지 않는 분들이 왜이리도 자신들 주변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에는 인색한지. '앱스'적 존재, '솔로몬'적 존재같은 소위 아웃라이어들은 제껴두고, 최소한 '포드'나 '베스'정도는 되려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자기 집단에 따르지 않으면 그저 '이기적 존재'로 몰아가고, 헐뜯기 바쁜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내가 이렇게 감정이 매마른 사람인 줄 몰랐다. 이런 영화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다니. 맨 처음 적었듯이 여지껏 이토록 '인간의 자유가' 처참하고, 적나라하게 부정된 작품이 있었나 싶다. 역시 믿고 보는 스티브 맥퀸, 그리고 브래드 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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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2 D295  
눈물까진 아니여도 이렇게 고뇌한다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감정의 사람은 아닌 듯.
이 게시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참고로 저는 아직 영화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네요. 아, 정확히 살면서 아직 눈물 흘린 적이 없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