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이웃 푸치오 씨네 가족 사업

영화감상평

<클랜> : 평범한 이웃 푸치오 씨네 가족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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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게 작업해서 자막 올려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귀한 영화 잘 봤습니다. '감성 전 알아두면 좋을 것들' 꼼꼼하게 읽고 재미나게 봤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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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집 건너편에 친절하고 상냥한 이웃이 산다(고 가정해보자). 가장인 아르키메데스 푸치오 씨는 전직 공무원이었고 날마다 집 앞의 거리를 비로 쓴다. 그의 다정다감한 아내 에피파냐 푸치오는 교사이자 평범한 가정주부다. 쾌활하고 사교성 좋은 장남 알렉스는 럭비 국가대표 선수이며 둘째 마길라와 막내 길레르모 역시 럭비 선수다. 실비아와 아드리 두 딸은 아버지 아르키메데스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고 가족들 모두 그런 아버지를 돕는다. 누군들 이런 이웃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평범하고 화목해 보이는 푸치오 가족에겐 남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비밀이 있다.



 언제나 가장 섬뜩한 공포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에서 비롯된다. 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평범한 가족이 세상 사람들을 놀래켰다. 친절한 이웃이자 화목한 가족이 알고 보니 사실은 (특정한 이유로 관련을 갖는) 씨족 범죄 집단(clan)이었다는 반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크나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체인 가족이 납치·공갈을 모의·방조한 소규모 범죄 집단이었다는 실화는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설정이지 않은가. 그 비현실성이 (그러나 실화라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영화 <클랜>(El Clan, The Clan, 2015)의 가장 공포스러운 비급이다.   


 영화 <클랜>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실화이다. 영화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을 (정치적 격동기의 TV 뉴스 화면들을 통해) 끊임없이 환기시켜 주지만, 그러한 사실(fact)을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허구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실화의 주인공들이 드러내는 감정의 파고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강력한 공포는 납치·살인을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방관하는 가족들의 위선과, 그들의 무감각과 윤리의식의 마비를 암시하는 모순된 장면들의 대비로부터 비롯된다. 

 뭉친 어깨와 학교 업무에 대해 투덜거리며 에피파냐가 접시에 음식을 담는 장면은 두건을 쓴 채 감금되어 공포에 질린 인질의 식사 장면으로 이어진다. 친한 친구를 납치하는 일에 가담하고도 럭비 경기를 하고 우승 파티를 즐기는 알렉스는 또래 아이들처럼 쾌활하기만 하다. 둘째 아들 마길라는 죄의식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패밀리 비지니스'를 계속한다. 첫째 딸 실비아는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가족들을 위한 일이라며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오빠를 설득한다. 그들은 지하실에 가두어 놓은 인질이 내지르는 비명을 라디오의 음악 소리로 덮은 채 여느 평범한 가족들처럼 저녁 만찬을 즐기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길거리 공중전화에서 인질 가족들에게 협박 전화를 걸거나 돈을 챙긴 후 후환을 없애기 위해 비정하게 인질들을 죽이는 아르키메데스는 한편으로 매일 집 앞을 깨끗이 비질하고 딸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는 평범하고 자애로운 아비의 모습을 연출한다. 

 반복되는 납치와 폭행과 구금 장면 위로 오버랩되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공기를 관통하는 음악은 경쾌하고 발랄하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서의 경쾌한 아이러니는 <클랜>을 '가족의 비밀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 피폐해져 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한 심리극, 전통적인 사회 드라마'의 모습이 두루두루 공존하는 절묘한 블랙코미디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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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이 겹겹의 파이와 같은 <클랜>의 중층 서사를 통해 한 엽기 가족의 이야기를 그 기저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심연으로 확장시킨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이야기가 뿌리를 대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심연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1983년, (영국과의) 포틀랜드 전쟁에서 패한 아르헨티나에는 그 여파로 7년 간의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문민정부가 들어선다. 더불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린다. 국가 정보부 소속이었던 아르키메데스(길예르모 프란셀라)는 군사정권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 '용인된 범법행위'를 일삼던 인물이다. 당시 군부에서 행하던 납치, 감금을 통한 갈취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행위였으며 심지어 애국적 행위로까지 미화되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수십 년 간 군부독재 치하에 있었으며, 푸치오 가족 그리고 그들의 범죄 대상이었던 부유층 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부패한 독재정권의 수혜자들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은 반체제 인사 및 그 가족들을 납치해서 살해하거나 심지어 몸값을 받고 가족에게 되팔아넘기는 짓을 공공연하게 일삼아 왔다고 한다. 

 공권력을 가장한 파렴치 범죄가 판을 치던 시절에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의 녹을 먹으며 납치, 감금 등을 일삼았던 이들 중 한 명이 아르키메데스였다. 그러니 그에게 죄의식 같은 것은 이미 씨가 말랐다. 실업자가 된 그에게 납치 기술은 이제 밥벌이의 수단이 된다.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은 '가족을 위한다'라는 새로운 시대의 대의명분으로 대체된다. 그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기득권층 인사를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고는 인질들을 죽여버린다. 자기 자식에게 그 일을 '가족 사업'으로 강요하거나 나머지 가족들에게 암묵적 동의를 얻어 낸다. 납치나 살인은 비즈니스란 측면으로 철저하게 객관화하고 분업화 한 협업이 된다. 아들 알렉스는 잠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범죄 행위가 발각되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경제적 이권, 럭비 국가대표로서의 사회적 지위-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거액의 사업 자금을 알렉스에게 건넸을 때, 알렉스는 탐욕과 죄의식을 손쉽게 맞바꾼다. 범죄가 발각돼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에도 아르키메데스의 낯빛은 평온하다. 그는 여전히 사회의 기득권층이고 정부 요직 곳곳에 든든한 연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치오 씨네 가족사업은 뻔뻔하리만치 단순하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대낮 주택가에서 납치하고 길거리 공중전화에서 태연히 ('민족해방전선'이란 엉터리 단체를 사칭한) 협박전화를 건다. 인질들이 비명을 지르건 말건 그 흔한 마취제 따위는 쓸 생각도 하지 않고 역시 백주대낮에 납치한 사람들을 자기 집 지하실로 운반, 감금한다. 그 모든 대담성은 자기 행위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설령 걸리더라도 문제없이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는 창의적인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라는 시스템에 의해 학습한 대로 '비즈니스'를 이행하는 '생계형 납치범'이라는 데 이 영화(이자 실화)의 실감 나는 공포가 있다.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관용구를 몸소 실천한 일개 가장일 뿐이고 푸치오 씨네 가족사업은 가족의 상위 개념으로서의 국가가 학습시킨 '용인된 범법 행위'일 뿐이다. <클랜>이 섬뜩하게 드러내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사회병리 현상은 특별하다. 푸치오 씨네 가족 범죄는 일반적 범죄의 유형-가난, 소외 등 반사회성으로 무장한 소외계층 및 빈곤층 범죄-에서 벗어나 부유층이자 기득권층인 이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이는 특이 사례라는 점에서 유별나다. 부패나 비리 등 지능형 범죄가 아니라 (납치, 구금 등 폭력적이고 육체적 형태의) 생계형 범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먹고살기 급급해서가 아니라 금고에 달러를 쌓아두고도 날마다 계속해야 하는 일처럼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납치를 일삼았다는 것 등은 이 실화이자 영화의 소재로서 푸치오 가족 사건을 더욱 특이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플래시 백으로 진행되는 극 전체의 리듬과 편집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은 이 희대의 실화를 빛나는 드라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작고 큰 두 개의 반전과 다소 쇼킹한 엔딩은 본편의 두둑한 별책부록이라 할 만 하다. 특히나 파시스트 가장이자 자애로운 아버지의 아수라를 연기하며 동시에 냉혈한인 범죄자라는 세 개의 모순을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묘사한 길예르모 프란셀라의 열연에 찬사를 보낸다. 희극배우들이 연기하는 정극 캐릭터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으로 언제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오달수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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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47 iratemotor  
뻔뻔함보단 체득된 일상화가 주는 심심하지만 묵직한 공포(?)에 초점을 둔 감독의 의도가 저 역시 보이더군요.
경쾌한 음악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데 일조하고 있고요.
엔딩에 밤탱이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선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가요.
12 스눞  
늘 제가 더 감사하지요. iratemotor 님이 아니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영화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소개해 주셔서 그 선택을 믿고 봤는데 역시나...! ㅎ
그러게요. 아들 친구를 납치하고 구금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그저 직업으로서의 일과 같이 무덤덤한 일상이라는 사실이 가장 공포스러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감독은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연출한 것 같고요.

감상 전 팁으로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해주셔서 유심히 보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더군요. 경쾌한 리듬과 어두운 화면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는 웃기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모자란 글까지 꼼꼼하게 읽어주셔서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