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상황에서 뭣이 더 중한디?

영화감상평

<아이 인 더 스카이> : 지금 이 상황에서 뭣이 더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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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분이 올려주신 자막으로 손에 땀을 쥐며 감상했습니다)

 

 

 

상황은 이렇다. 케냐 나이로비에 훌라후프 돌리기를 좋아하는 해맑은 소녀 '알리아'가 있다. 그녀는 엄마가 구운 빵을 담벼락 아래 가판에 펼쳐 놓고 판다. 문제는 그 담벼락 너머 집에 미국 대통령의 '동아프리카 지명수배 명단' 2, 4, 5위의 테러단체 '알샤바브' 수배자들이 모여 폭탄 테러를 자행하기 위한 모의를 하고 있다는 것. 첩보를 입수한 영국 국무조정 상황실 '코브라'는 미국-케냐 정부와 합동 작전을 펼친다. 딱정벌레 드론 '링고'를 접선지 가옥 안으로 잠입시켜 주요 테러리스트 세 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들을 생포하는 것이 작전의 목적이다. 작전이 성공했냐고? 세상에 그렇게 싱겁게 끝날 영화는 없다. 가옥이 위치한 곳은 무장단체 관할 구역이라 생포가 불가능한 상황. 그런데 (당연한 일이겠지만) 문제가 생긴다. 딱정벌레 드론이 비춘 화면에 다량의 폭탄과 자살 테러용 조끼 두 벌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상황은 순식간에 급변한다.

 

 

 런던의 합동 사령부에서 일명 '왜가리' 작전을 지휘하는 현장 실무자 캐서린 파월 대령(헬렌 미렌)은 6년째 서방 테러의 배후 인물 수잔 헬렌 댄포드를 쫓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주요 테러 용의자들과 함께 눈앞에 있다. 게다가 그들이 모인 집안엔 다량의 폭탄이 있고 그들은 이제 자살테러를 감행하기 직전이다. 그들이 자살테러용 조끼를 착용하고 흩어질 경우 도심에서의 대량 살상 테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다급해진 파월 대령은 생포에서 사살로 작전을 변경하려 한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사살 작전의 법적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부른 법무병은 상부에 이 상황을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파월 대령은 국무조정 상황실의 벤슨 장군(앨런 릭먼)에게 즉시 사살 명령 허가를 요청한다. 국무조정 상황실 '코브라'엔 작전 총책임자 벤슨 장군과 국무장관 그리고 법무장관이 이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장관들은 군사적 상황보다 정치적 후폭풍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에겐 현장의 다급한 상황보다 사살 작전이 법적 절차에 하자가 없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테러 용의자 둘은 영국 국적을, 나머지 한 명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법적 절차에 대한 격렬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파월 대령과 벤슨 장군은 감시 및 요격용 비행 드론 '리퍼'에 탑재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타깃들을 타격하자고 주장한다. 장관들은 타국 케냐에서 벌어질 이 무력 군사 작전이 몰고 올 정치적 후폭풍 때문에 작전 허가를 주저한다. 테러리스트들이 은신하고 있는 가옥 근처엔 민간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전 수행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더라도 가옥 근처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 파월 대령과 벤슨 장군은 민간인 피해를 무릅쓰고라도 더 큰 희생을 초래할 폭탄 테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작전의 빠른 승인을 요청한다. 결국 법무장관은 작전을 승인하지만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처지에 놓인 국무장관은 외무장관의 재가가 필요하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때, 외무장관은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점심에 먹은 새우 때문에 배탈이 난 채 변기 위에 앉아 있다. 코브라에서 긴급 상황 보고를 받은 외무장관은 사살 대상 중에 미국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은 미국인에 대한 사살 권한은 없다며 미국 국무장관을 찾는다. 그 시간 미국 국무장관은 북경에서 중국 탁구대표팀과 함께 탁구를 치고 있다. 연락을 받은 국무장관은 어이없다는 듯 알샤바브 대원인 미국인을 즉시 사살하라고 승인한다. 법적 절차에 대한 승인과 책임 회피를 위한 '폭탄 돌리기'가 진행되는 동안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간다.  

 

 드디어 모든 재가가 떨어지고 파월 대령(헬렌 미렌)은 리퍼 조종사 스티브 왓츠 중위(아론 폴)에게 헬파이어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비행 드론 리퍼 조종사인 왓츠 중위는 미사일 발사를 위해 타깃을 확인하다가 목표물인 집 담벼락 아래서 빵을 팔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고 머뭇거린다. 접선지 가옥을 감시하던 중 옆집에서 천진난만하게 훌라후프를 돌리던 그녀를 이미 본 적 있는 왓츠 중위는 고민 끝에 결국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고 상황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달라며 합동 사령부 파월 대령(헬렌 미렌)의 명령에 불복종한다. 국무조정 상황실에서는 전보다 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

 

 

 

 "케냐의 무고한 어린 소녀의 목숨과, 테러리스트들의 자살 폭탄 테러로 죽게 될지도 모를 80여 명의 목숨 중에 어느 것이 더 중한 것이냐?"

 

 

 

 영화는 결국 이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기 위해 먼 길을 돌아서 극의 절정으로 달려간다. 모두에겐 각자의 입장과 당위가 있다. 그 입장과 당위가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치열하게 부딪치고 뒤섞인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관객들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묻고 있다. 눈앞에 있는 소녀의 목숨인가? 아니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는 80명의 예고된 죽음인가? 

 

 

 극적 갈등이 고조될수록 극의 서스펜스도 증가한다. 그들(영국, 미국, 케냐 작전 관계자들)이 보고 있는 드론의 화면과, 그들의 작전을 재-관찰하고 있는 우리의 (영화) 화면 속에서 케냐의 어린 소녀는 잠시 후 자기가 있는 곳에 폭탄이 떨어질지도 모르고 엄마가 구워준 빵을 팔고 있다. 작전 관계자들은 현장의 상황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역시 먼 이국의 상황실/합동사령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전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 간극 사이에서 엄청난 양의 서스펜스가 쏟아져 나온다.

 

 

 외교적이고 정치적인 수사(修辭)가 난무하는 국무조정 상황실의 극렬한 토론 중에도 딱정벌레 드론 '링고'를 가옥에 들여보내기 위해 현장에 잠입한 케냐 요원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미사일 발사 전에 아이의 빵을 모두 사서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미사일 발사대에 떨리는 손가락을 얹고 발사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드론 조종사 왓츠 중령은 아이의 빵이 다 팔리기를, 그래서 그 소녀가 얼른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빵이 하나씩 팔려나갈 때마다 화면을 보고 있는 모두-관객까지 포함-가 거친 숨을 토해낸다. 그 와중에 파월 대령은 어떻게든 미사일 발사 재가를 받기 위해 미사일 피해 확률을 50% 이하로 줄이라고 계산병에게 압력을 넣는다. 소녀가 입을 피해 확률을 조작하라고 압력을 행사한다. 적에게 발각되어 도주를 하던 케냐 현장 요원은 마을 아이에게 돈을 주며 소녀의 빵을 모두 사달라고 부탁한다. 

 

 

 딱정벌레 드론의 배터리가 방전되고 가옥 안의 상황을 알 수 없게 된 긴박한 순간에 결국 모든 재가가 떨어지고 미사일은 발사된다. 앞으로 타깃을 타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50초. 그 순간 돈을 든 소년이 빵을 사기 위해 달려온다. 소년은 남은 빵을 모두 산다. 화면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손에 땀을 쥐고 한마음으로 소녀가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그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소녀는 탁자 위의 테이블 보를 차곡차곡 개고 빵 바구니를 챙겨 천천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소녀가 담벼락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 순간, 미사일이 타깃을 명중시키며 폭발한다. 

 

 

긴박감 넘치는 전투 장면도 없다. 신나게 총질을 해대는 전투 신도 거의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손과 발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손바닥과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해진다. 그러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오금에 맥이 풀려버린다. 변변한 전투 신도 없이 이렇게 긴장감 넘치게 본 영화가 얼마 만인가. 서스펜스는 선정적인 시각적 자극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서스펜스는 심리의 영역에서 오는 정서적 반응이다.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은 우리의 정신을 옥죄어 오고, 영화 속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겪는 것만으로도 몸이 피곤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잘 짜인 각본과 편집에 따라 중층적 관찰자들-1) 영화 스토리 속에서 작전을 지켜보는 군인과 정치인들, 2) 그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겹치거나 분리되며 러닝타임 2시간 내내 감정 이입과 분리 관찰의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영화다. 전투 장면 하나 없이 전쟁의 극단적 공포를 체험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핵전략 사령부>(1964)나 <썸 오브 올 피어스>(2002)를 생각나게 한다. 

 

 

 

* 뱀다리

 

 

 

 

1) 모든 전쟁은 드론을 원격 조정하는 미국 네바다 주 공군기지 조종실 계기판과 모니터 화면, 그리고 런던의 합동사령부와 국무조정 상활실의 대형 모니터와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무실 의자와 모니터가 전쟁터가 되는 미래 전쟁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볼 수 있어서 섬뜩했다. 미사일을 탑재한 지상 감시/공격용 비행 드론 '리퍼'와, 새 모양의 감시 드론, 그리고 딱정벌레 드론 '링고'는 미래의 전투 무기들이다. 

 

2) 영화의 첫 장면에서 벤슨 장군(앨런 릭먼)은 딸에게 부탁받은 '베이비 무브' 대신에 '타임 슬립' 인형을 산 것 때문에 난감해한다.. 선물할 인형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그가 사람의 목숨이 걸린 군사작전을 지휘하며 순간순간 정확한 상황 판단과 선택을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두 개의 시퀀스는 대구/대조를 위해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편집한 게 틀림없다. 무고한 소녀의 목숨을 버리는 대신 일어날지도 모를 80명의 목숨을 선택한 벤슨 장군 역시 아이를 위해 인형을 사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비정하다. 작전을 끝까지 반대하던 여성 장관이 이 모든 수치스러운 일이 당신의 편안한 의자에서 이루어졌다고 비꼬자, 벤슨 장군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지금 땅바닥에 널려있는 시체들의 몸에 있던 자살 테러 폭탄의 직접적 여파를 주목했던 겁니다. 커피와 비스킷을 들며 당신이 오늘 목격한 것-폭격으로 무고한 소녀가 죽은 일-은 끔찍했습니다. 그러나 이자들이 하려고 했던 것-폭탄 테러-은 훨씬 더 끔찍했습니다. 절대로 군인에게 전쟁의 대가를 모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라고. 

 

3) 영화가 끝나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기 전,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배우 앨런 릭맨에게 바치는 짧은 추모사가 뜬다. 나는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찍었던 <시와 점심>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4) 헬렌 미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야전 사령관 파월 대령을 연기한다.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배역이다. 

 

5) 반면, 비행 드론을 조종하던 왓츠 중령과 센서 오퍼레이터인 캐리 거쉰 일병은 소녀의 죽음을 어떻게든 피하려 하거나 소녀의 죽음 앞에서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작전이 모두 끝나고 눈물을 흘리던 여성 장관(모니카 돌란)과 함께 감상적인 캐릭터의 한 축을 이루는데, 전쟁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들 나름의 당위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6) 2005년의 <갱스터 초치> 이후 할리우드로 스카우트 돼 조금씩 망가졌던 개빈 후드 감독은 <엔더스 게임>(2013년)부터 조금 살아난 기미를 보이더니 <아이 인 더 스카이>로 확실히 자기 영역을 구축한 것 같다. 

 

 

 

 

7) 카지노 천장에 매달려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카메라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로 유명한 제목이다. 영화의 내용과 노래의 가사가 겹쳐지며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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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2 스눞  
엇! 이상하네요. 멋진 분이 작업해 올려주신 자막으로 감상했다는 글을 서두에 썼는데 영문 닉네임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네요. ㅠㅜ 아무튼 감사합니다. 글 수정을 어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댓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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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naiman  
저도 참 재미있게 봤어요...반갑습니다.
12 스눞  
넵. 반갑습니다. 너무 재밌게 본 영화라 리뷰를 올려봤습니다. ㅎ
26 naiman  
네.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자주 오세요.
12 스눞  
넵. 자주 뵙겠습니다. :0)
47 iratemotor  
글 수정은 하단부 보면 '수정'이라고 보일 겁니다.
사진이 안 보여서 아쉽네요. 컴퓨터에 있는 사진들 불러오기 하셔서 잘 배치하시면 될 듯합니다.
좋은 글들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감사해요.^^
자막자료실과 영화감상평 게시판이 함께 가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제 닉 언급은 빼주시면 고맙겠고요.
12 스눞  
아 넵.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ㅠㅜ 얼른 수정하겠습니다. 사진 올리기도 좀 더 궁리를 해보겠습니다. ㅎ
12 스눞  
수정 버튼 찾았습니다. 저 아래 있는 걸 모르고 어리버리하게....ㅋ 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29 써니04™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훌라우프하는 아이의 미소도 기억에 남앗네요.
12 스눞  
훌라우프 장면이 마지막에 슬로 모션으로 다시 리와인드 될 때, 울컥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