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6점] 아가씨(2015)

영화감상평

[리뷰: 6점] 아가씨(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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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성주의 섹슈얼 페미니즘?

평점 ★★★

 

 <아가씨>.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중영화 감독이라는 별명에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감독 둘, 봉준호 감독과 바로 박찬욱 감독이다. 그 이름 석자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완성도를 보장하는 것 같기고 하고 신작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작년 6월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의 크랭크 인 소식이 들려오자 단연코 대중들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올해 칸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기까지 하여 기대감은 한층 더 높아졌다. (‘벌칸상이라는 기술부문상도 수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었다. “<곡성>에 이은 한국영화의 또다른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하는 흥분과 두려움으로 극장 좌석에 앉았다.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나는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다. 책의 소개글로는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고 소개되어 있긴 한데 <아가씨>의 각색된 내용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원작과 영화의 시놉시스를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각색되면서 달라진 것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서 한국의 일제 강점기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들려오는 얘기로는 원작의 젠틀먼캐릭터가 악인 그 자체로 묘사되었던 것에 비해 영화에서는 풍자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외의 플롯과 반전은 삭제되거나 압축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 <아가씨>는 구조의 스릴러 영화다. 영화는 총 3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장마다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조립한다. 1장은 ‘숙희’(김태리)의 시선을 담고 있고 2장은 ‘히데코’(김민희)의 시선을 담고 있으며 3장은 전지적인 시점을 표방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1장과 2장의 이중나선적인 구조다. 영화는 이야기를 2번 순회시키면서 점차 이야기를 폭넓게 확장시키는데 두 개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서로 맞붙게 되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변주시킨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블랙코미디마저 재미를 불어넣는 요소 중 하나다.)

 

이것은 추리 영화의 전형적인 플롯의 변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추리 영화는 정보의 제한에서 정보의 공개로 향해가는 관객의 욕망을 다룬다.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호기심을 기반으로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만들어가며 관객이 궁금해했던 실체가 드러나면서 갈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리 영화는 정보의 제한을 벗어나려는 과정’, 즉 미스터리가 중요시되는 장르다.

 

하지만 <아가씨>는 반전을 설치함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를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 1장의 마지막의 충격을 2장에 들어서서는 ‘히데코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전개시키며 정보를 일방적으로 공개한다. 1장에서 설명되었던 수많은 복선들이 2장에 와서는 맞아떨어지기도 하는데 (‘숙희의 시선이 대입되고 설명되어)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반전들을 연쇄시키면서 긴장감을 구축한다. 이것은 긴장감을 구축하는 데 있어 독특한 방법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말한 서프라이즈(Surprise)’서스펜스(Suspence)’ 개념의 조합 형식에 가깝다.(<아가씨>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예시로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가 있겠다. 또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킬링>처럼 동일한 사건을 인물 중심으로 나열한 형식이 모티브일 수도 있다.)


 ‘서스펜스’라고 함은 보통 감독이 관객과의 게임에 있어 자발적으로 관객에게 정보를 더 준다. 관객은 극 중 인물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정보에 대해서 전지적인 위치에 놓여지면서 조바심이 자극되는 것이다. ‘서프라이즈’는 인물들의 특정한 시선만을 다루면서 연출이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한하면서 이른바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거나 충격을 주는 것이다. <아가씨>는 1장에서는 ‘서프라이즈‘를 목표로 진행되다가 2장에 들어서서는 (이미 관객은 기초적인 정보는 알기 때문에) ’서스펜스‘ 형식으로 변주된다. 다시 말해서 플롯의 간극을 각각 내세우고 그것을 하나의 스토리로 좁혀나가는 형식이다. 어쩌면 플롯 단위의 교차 편집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1장은 2장을 위한 배경 또는 상황 설명일 가능성이 있다. 본격적인 긴장감은 2장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긴장감의 구축에 있어서는 1장의 반전과 설명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숙희'의 시선으로 보여진) 1장을 (’히데코‘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2장에서 다르게 반복하면서 점차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완성해가고 ’명확한 반전‘을 토대로 서스펜스를 쌓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서스펜스는 두 여인의 감정선으로 대입된다. 원작의 수많은 반전을 삭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각 장으로 나누어진 시선에 개인의 드라마를 담아내면서 서로 느끼는 감정의 일치를 관객에게 내보이고 두 여인의 교감과 연결을 보이려고 한다. 이러한 1장(숙희)와 2장(히데코)의 유기적인 조합은 서스펜스와 더불어 미묘한 감정선을 입체적으로 구현시키는데 두 여인의 연대와 탈주의 드라마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결국 <아가씨>는 두 명의 내러티브를 둔 일종의 집단 서사로서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박찬욱 감독은 (사랑으로 맺어진) ‘여성들의 연대’를 내세운다.(이 얘기는 아래에서 또다시 다루어질 예정이다.)

 

 2)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작품이지만 최초의 시대극이다. 시대극은 시간과 공간의 재현에 있어 미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르 중 하나이다. 영화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아가씨>는 그 당대 시대의 느낌에서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고증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대저택이라는 공간은 동양의 고풍미와 서양의 우아함이 공존하고 있는 퓨전적인 건축미를 뽐낸다. 각 방마다 다른 매력의 개성을 뿜어내는 다채로움(인물마다 상징될 수 있는 공간이 서로 다르고 양식이나 분위기도 다르다)을 가미하는 미술과 공간감이 신비로운 느낌을 선사하는데 영화는 이러한 신비감을 판타지로 활용하지 않으려 한다.

 

이 영화를 이루는 가장 큰 정서는 바로 사실감이다. 되려 미술이 고립된 판타지로 머물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절제된 촬영에 있다, 컷을 나누지 않고 유려한 카메라 워킹으로 인물 간의 관계과 감정선의 간격을 보이려 것도 보이는데 이러한 카메라 움직임은 기괴하고 뒤틀린 느낌이 아니라 현실적인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공간의 재현은 어떠한 전이로 이루어진다. 전체적으로 <아가씨>는 오손 웰즈 감독의 <악의 손길>(1958)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어두운 톤으로 촬영되어 있는데 이러한 느와르 영화 풍의 어둠은 바로 대저택으로 대표되는 공간의 공포를 가져온다.

 

영화는 이러한 공간의 공포를 변주시켜 내놓는다. 1장으로 되돌아가보면, ‘숙희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대저택의 모습은 음산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다. 하지만 2장으로 접어들면서, ‘히데코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대저택은 상당히 익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공포스럽게 그려지는 이유는 바로 여성의 시선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염두를 두어야 할 것은 이 영화에서 남성은 보조적이라는 것이다. 모두 시선은 공통적으로 히데코와 숙희, 여성들의 시선에 투영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전이되는 공포의 주체는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에 대한 성적 도착으로 드러난다. 어린 시절부터 성적으로 강요를 받아온 ‘히데코의 사연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많은 장면과 미술에 어떠한 상징이 부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하다. 남성의 성기로 상징되는 뱀의 형상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가학을 나타내는 구슬이라던가. 결국 <아가씨>가 내세우는 것은 바로 여성성이다. 박찬욱 감독은 두 여성의 연대를 내세우며 남성성에 속박된 여성성의 탈주를 요구한다.(그리고 하정우가 연기한 백작캐릭터는 남성주의에 대한 풍자적인 캐릭터다) 서로 사랑하는 두 여인이 영화의 마지막 성애 장면에서 구슬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삼아 남성성을 조롱하면서 말이다. (이 영화의 3장은 모든 사건들이 종결되고 기계적인 전개에 가까운데 스토리를 마무리 짓으면서 남성 우월주의의 성적 착취와 억압을 처벌하고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일종의 요약적인 마침표라고 볼 수 있다.)

 

 3) 하지만 아직도 의미심장한 것은 이 영화가 남성의 입장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에서 페미니즘을 외친다. 하지만 과연 여배우들의 과도한 노출 수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과연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대한 이 영화의 해결책은 옳은가? 많은 사람들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애초에 사랑의 감정을 직시하려 한 영화고 그 감정의 굴곡선을 나타내기 위해 섹스 씬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반면에 <아가씨>는 여성들이 서로 느끼는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사랑으로 이으려한다. 하지만 과연 여성성의 연대를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발전시켜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영화에는 명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 사랑이라는 설정에 설득력이 없다. 명분이 없는 섹스 씬은 일종의 포르노에서 주로 보이는 묘사다. 결국 과도한 노출 수위는 이 영화의 메시지와 충돌하기에 이르며 그러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쾌락은 (이 영화에서처럼) 주로 남성에게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남성의 입장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물론 김민희와 김태리의 열연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로 인해 여성상은 또다시 소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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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S 컷과송  
여성 동성애 장면의 필요성, 남성의 시선 등이 불편하셨군요. 나머지 여성 연대 등은 원작에서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여성 연대가 꼭 동성애로 변이되어야하는가에 대한 지적은 꼽씹을만한 부분이네요.